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에 붙여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매년 여름이면 코펜하겐과 그린란드, 그 사이의 바다와 빙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피서지로 택한다. 바깥은 한증막을 방불케 하는 여름이지만, 빙판 위로 발걸음을 떼듯 신경을 집중해 이 소설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남극의 공기가 방안을 채운 듯한 서늘함을 느낀다.
많은 추리소설처럼 이야기는 ‘한 소년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에서 시작된다. 소년의 윗집에 살며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던 스밀라는 사건 현장에서 눈 위에 찍힌 아이의 발자국을 보고 사고사라는 경찰의 주장에 의혹을 품게 된다. 아무도 진실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스스로 탐정이 되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600페이지에 이르는 대장정을 떠난다.
보통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가 반전의 묘미,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의 카타르시스에 있다면, 범인을 이미 알고 있는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숨가쁘게 진범을 쫓아가는 여타 작품과 달리 이 책은 진실을 추구하는 스밀라의 태도를 눈의 결정처럼 아름답고 명징하게 그린다. 그 태도는 어떤 면에서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의 조건과 닮았다. 하나의 주제를 파고드는 깊은 사유, 자신의 가장 감추고 싶은 부분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용기, 난관에 봉착해 두루뭉술 넘기고 싶은 게으른 마음을 이기는 성실함. 이누이트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눈과 얼음에 대해 본능적인 감각을 지닌 스밀라의 시선을 따라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동안 내 감각과 세계가 확장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작가가 치열하게 만들어낸 캐릭터와 이를 둘러싼 세계는 스스로 생명력을 갖고 읽는 이를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작은 동네에서 자랐고 하루빨리 그곳을 벗어나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동네를 떠난 뒤에도 항상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꿨지만, 현실에 매인 내가 할 수 있는 대안은 독서밖에 없었다. 책만큼 완벽한 안전을 보장하면서 나를 완전히 뒤흔드는 여행이 있을까. 타인이라는 미스터리 속으로 뛰어들어 은밀한 내면을 샅샅이 관찰하는 이토록 무해한 스릴을 또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드라마 ‘나의 아저씨’,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서도 보여주듯 ‘타인의 삶’을 엿보는 것은 강한 중독성을 띠며, 왈칵 사랑에 빠져버릴 위험도 도사린다. 그의 세계 속으로 떨어져 그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느끼게 된달까. 내게 좋은 글이란 그렇게 나를 다른 세계로 데리고 가 흠뻑 빠지게 만드는 글이다. 나는 그런 글들이 있어 단 한 번의 생에 천 번, 만 번 살 수 있다.
모든 사랑도, 모든 사람도, 나 자신조차도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미스터리이기에 글을 쓴다는 것은 언제나 그 답을 찾으려는 애달픈 시도이다. 그 모든 시도가 성공으로 끝맺지 못할지라도 그것은 분명 아름다운 실패일 것이다. 그러니 나는 더 이상 그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언젠가 나의 글이 당신을 나라는 미스터리 속으로 초대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