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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들기 보단 청소가 마음이 편하군요

출판사 퇴사를 결심한 순간

자전거 뒷바퀴가 펑크나서 교체하러 동네 자전거 가게에 들렀다. 아저씨는 가래떡 뽑듯 리듬감 있게 타이어를 교체하고 체인에 기름을 먹였다. 내 키를 슬쩍 가늠하더니 안장 높이를 조정하고 여기저기 살폈다. “혹시 브레이크 잡을 때 어때요?” 묻더니 대답도 전에 바구니를 뗀 뒤 브레이크 선 위치를 조정했다. 타보니 내 자전거가 맞나 싶게 자세도 편하고 브레이크도 부드러워서 만오천 원은 너무 헐값이 아닌가 조금 켕길 정도였다.. 

막연하게 나도 이런 직업을 갖고 싶단 생각을 품고 있었다. 정확한 도수로 눈을 밝혀주는 안경사, 깔끔한 박음질로 옷테를 살려주는 수선사, 엔진 소리만으로 문제를 파악하는 귀 밝은 자동차 수리공도 좋겠다. 셜록 홈즈가 “걸음걸이, 손의 굳은 살, 옷깃에 묻은 기름 얼룩을 보니 당신은 자전거 수리공이 틀림없군!” 하고 추리할 만큼 몸에 인이 박힌 숙련공의 삶을 동경했다. 물론 모든 직업에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하다 보면 내 기술이 나아지리란 확신을 가질 수 있고, 나를 찾아온 이에게 적절한 만족을 줄 수 있다면 적어도 잠 설칠 일은 없겠지.  

나는 15년 가까이 출판편집자로 일했다. 책을 만든다고 하지만 글 만지는 일은 업무의 10퍼센트 미만이다. 일의 시작은 1년 뒤에 잘 팔릴 책을 예측해, 전문가를 물색하고 설득해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것이다. 집필 과정에는 작가의 ‘자존감 지킴이’와 ‘마감 고리대금업자’ 사이를 오가며 칭찬과 협박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원고를 받아내야 한다. 5년 간 술잔을 기울이며 의기투합했지만 끝내 원고를 주지 않은 이도 여럿이므로 계약이 꼭 출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몇 날 며칠 사전을 뒤져가며 수정한 교정지를 보내도 수고했다는 말은 커녕 ‘이것은 나의 글이 아니야!’라는 작가의 비난을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 나무에게 미안해지는 수천 장 교정지를 오가며 ‘OK교’를 쥐기 무섭게 이 글을 잘 팔리게 만들 단 한 문장을 제목으로 붙여야 한다. 디자이너에게 빠듯한 출간 일정을 들이밀며 “클래식하지만 트렌디하고, 심플하면서 유니크한 그런 느낌 아시죠?” 하며 표지 발주를 하려면 마카롱 정도는 뇌물로 챙겨야 한다. 물론 시안이 모두의 마음에 쏙 들리 없다. 작가, 마케터, 홍보 담당자가 한마디씩 보태고 그 장단에 춤추다 보면 표지는 산으로 바다로 떠돈다. ‘표지_진짜진짜최종3.jpg’ 파일이 나올 때쯤엔 디자이너는 내가 부모의 원수인냥 눈도 안 마주치기 일쑤다. 인쇄를 앞두고 표지를 본 대표가 지나가는 말로 ‘근데 제목이 좀 약하지 않아?’ 한 마디 던지면 모든 건 원점으로 돌아간다. 아, 사표내기 좋은 날이다. 

스스로 확신 없는 상태로 모두의 의견에 성실하게 귀 기울이는 태도는 자아의 분열을 불렀다. 오늘은 또 누구를 실망시켰을까 곱씹느라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내 인생이 오타 투성이 책이나 페이지가 마구 뒤섞인 파본처럼 엉터리로 느껴졌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으며 살고 싶었는데 나를 가장 미워하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나는 출소하는 장기 재소자의 기분으로 퇴사 인사 메일을 보냈다. ‘자신을 발견해주어 고맙다’,’ 출판사를 차리면 다시 작업해보자’는 작가들, 프리랜서 일을 소개해준다는 미운 정 든 디자이너들, 이직 제안을 주는 선배들이 있어 그 나날들이 아주 허무하지만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둘 당시에는 게스트하우스가 자리를 잡은 뒤에 프리랜서로 출판 일을 다시 할 생각이었지만,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책을 다시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서점에 가거나 내 서재 방에 들어가는 것 조차 괴롭게 느껴졌다. 일을 제안해준 선배에게 지금 내 마음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자 슬픈 일이라고 하면서도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언제든 돌아오고 싶으면 연락하라는 격려를 받았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내 업무의 90퍼센트는 청소다. 아주 가끔 게스트의 상식적이지 못한 요구에 스트레스를 받아 좀비 아포칼립스를 꿈꿀 정도로 인류애가 사라지는 순간도 있지만, 청소는 즐기는 편이다. 들어서자 마자 바로 턴을 해서 나가고 싶은 혼돈의 카오스가 펼쳐져 있어도 어느새 몸에 익은 청소 루틴을 성실하게 따라가면 몇 시간 뒤 단정한 풍경과 포근한 섬유유연제의 향이 공간을 채운다. 인간의 마음을 얻으려는 노력은 배신 당하기 십상이지만, 청소는 정직하다. 머물고 간 게스트가 남긴 ‘그녀의 숙소는 완벽했습니다'로 시작하는 5점 만점 후기가 뜨는 순간의 짜릿함은 베스트셀러보다 중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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