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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보통의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특별한 일

5화_모래사장을 거닐며 예쁜 조개를 줍듯 서로의 안에서 반짝임을 찾는 것

Hongdae, 2010

대학생이 되어 풋풋한 연애를 시작한 나와 나의 친구들은 모두 서툴렀다. 자기 감정을 잘 표현하기는커녕 내가 느끼는 감정이 뭔지 제대로 이해조차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기에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나쁜 새끼'가 되고 '썅년'이 되고 '븅신'이 되고 '호구'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술자리에서 눈물을 쏟으며 욕을 했던 '그놈'도 그렇게 나쁜 놈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고지순한 사랑에 목을 맸던 나도 어쩌면 내가 원하는 사랑을 상대에게 강요한 것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위인의 역사가 사후에 쓰여지고 재조명 되듯 사랑에 대한 재평가도 모든 것이 끝난 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Jongro, 2010

대학 시절 친구 무리 중 누군가가 남자친구와 크게 싸우거나 이별을 하면 하나둘 연락이 와서 급술자리가 만들어졌다. 그날의 주인공이 사연을 얘기하고 나면 우리는 그놈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함께 성토하고 그런 놈에게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울부짖곤 했다. 이제 다시는 아무도 사랑하지 못할 거라고, 세상이 끝날 것처럼 마음 아파하던 많은 친구들이 새로운 사람과 처음 사랑하는 것처럼 그렇게 또 뜨거워지는 것을 목도하였다. 


무리 중 한 친구는 남자친구와 여러 번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헤어지지를 못했다. 그는 연락이 잘 안되는 일이 잦았고 바람을 피운 전적도 있었다. 다들 어설픈 연애 경험 몇 번이 전부인 우리였지만 친구가 힘들어할 때마다 곁을 지키며 위로랍시고 어디서 주워들은 말들을 던지곤 했다. 


"그런 놈한테 시간 낭비할 거 없다. 세상에 반이 남자다. 더 좋은 남자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의 대답은 "그치만 우린 좀 특별하잖아."였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이야기를 들어주던 친구들도 조금은 지쳤다. 아니, 저렇게 자길 힘들게 하는 남자를 포기하지 못하면서 그 이유가 자기들의 사랑이 특별하기 때문이라니. 그럼 남들이 하는 사랑은 뭐 무난하고 평범하고 별거 아니고? 

Tokyo, 2012

십수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나는 그녀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다시 떠올린다. 나의 남자친구와 솔직하게 이야기 나눈 결과 우리는 각자의 이상형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렇게 함께하게 된 후부터는 그가 없었던 시절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내 삶에 큰 존재가 되었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에게는 '운명'이라고 밖에는 부를 수 없는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 찰나의 기억을 일종의 신앙처럼 품고 상대에게 평생을 받치기도 한다. 


나란 사람은 언뜻 다정해보이지만 이런 운명론에 투신하기엔 사랑이나 관계에 대해 지극히 냉소적이었던 탓에 감히 정말 운명이라고 부를만한 상대를 만나보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들어 나의 오랜 친구를 떠올리면 결국 '우리 사랑은 특별하다'는 그녀의 믿음이 바로 사랑을 지킬 수 있게 만든 힘이었음을 깨닫는다. 세상의 반은 남자라며 뒤돌아선 친구들, 새로운 유혹에 과감하게 옛사랑을 접은 친구들, 모두 자신의 사랑을 했지만 그녀 역시 자신의 방식으로 사랑을 한 것이다. 


내 친구는 후에 남자친구가 유학을 떠나면서 이별하기도 했지만 다시 만난 그들은 결국 결혼을 했다.   

Tokyo, 2012

얼마전 이효리씨가 방송에 나와 결혼에 대한 말을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제가 깨달은 진리는... 그놈이 그놈이다. 이 남자는 특별할 거라는 기대를 버리면 결혼 생활이 편해요. 남자에 대한 환상이 없어요" 

하지만 그녀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말이 결코 그놈이 그놈이니 재지말고 적당히 아무나 만나서 결혼하라는 뜻이 아니라는 걸 알 수있다. 

 

어쩌면 사람은 모두 평범하다. 적당히 약하고 강하고 선하고 악하고 각자의 일과 능력과 취향으로 버무려진 존재. 그런데 이렇게 평범한 두 사람이 만나서 특별해지는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나의 평범함을 두루뭉실하게 정의 내리지 않고 물끄러미 들여다봐줄 사람. 앞으로도 나란 존재를 끊임없이 재발견해줄 사람.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던 내가 세상에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더이상 특별한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칠 필요도 상대에게 대단한 사랑의 표현을 갈구할 필요도 없음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함께 있을 때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이니까, 그것으로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생기는 기분. 그런 감정을 느끼는 요즘이다.


예전에는 사랑이 다이아몬드 같은 특별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모래사장을 거닐며 예쁜 조개를 줍듯 서로의 안에서 반짝이는 것들을 발견해가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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