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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Mar 01. 2022

워킹맘 4주간 유예기간

흔들흔들 워킹맘 밸런스 육아

워킹맘이라는 또 다른 부캐를 가지고 몸, 마음 그리고 회사의 분위기까지 적당히 적응된 4주가 지났다. 


어떤 사건(법적인 등) 등을 이야기할 때  '유예기간'이라는 말이 많이 한다. 예를 들어 '적응할 때까지 유예기간을 둔다.'와 같이 쓰이는 말인데,  유예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일을 행하는 데 있어서 날짜나 시간을 미룸. 또는 그런 기간을 의미한다. 유예기간이라는 단어는 미국의 심리학자 E. H. 에릭슨이 '청소년은 자기 정체성을 획득할 때까지의 유예기간'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면서부터 비롯되었다. 


유예기간의 의미는 우리 삶에 많이 사용된다. 집행유예처럼 유죄의 형(刑)을 선고하면서 이를 즉시 집행하지 않고 일정 기간 그 형의 집행을 미루어 주면서 그 기간이 경과할 경우 형 선고의 효력을 상실하게 하여 형의 집행을 하지 않는 제도도 있고, 병원에서 진료를 볼 때도 예를 들면  '치질 수술 한 달 후에 경과를 다시 보겠습니다.'처럼 질병의 회복을 판단할 때에도 일정의 유예 기간이 있어야 전후를 비교할 수 있다. 이혼을 준비 중인 부부 사이에도 일정 시간을 두고 '입장 바꿔 생각하는 기간'을 줌으로 이혼조정 기간에 부부가 다시 마음을 합치는 사건도 있고(최근 황정음, 이영돈 부부) 더  거칠게 싸우기도 싸우는 연인도 있다. 이런 행위를 하면서 평범한 오늘을 우리는 살아간다. 




4주간 유예기간

워킹맘 생활에서도 나름의 유예기간이 있었다. 


1주째는 사람과 사무실의 적응을 위한 유예기간이었다.


육아휴직 중 비대면으로 만난 직원과 오프라인에서 처음 만나 일을 시작하기 전 알아가는 단계였고, 기존에 합을 맞췄던 몇몇 직원의 퇴사로 인해 현재 사무실에 있는 새로운 직원들과 마음을 맞출 수 있는 기간이 필요했다. 

또 넓고 조용하게 사용했던 기획팀 사무실이 아닌 부산스럽고 시끄럽고 정신없는 1층 본관 사무실로 돌아왔다. (우리 회사에서 나만큼 이사 많이 해본 사람도 없다.)

사무실 적응 기간도 필요했다. 오랜만에 모든 처음 환경인 1층 사무실, 처음 대면하는 직원들과 앞으로 생활하기 위한 적응이 필요했다. 익숙하지 않은 사무실 가운데 자리, 그리고 바퀴가 고장 난 투박하고 큰 사무실 의자에도 적응할 기간이 필요했다. 



2주째부터는 아이와 나의 궁합이다.


달라진 생활 패턴에 아이가 적응을 잘해줘야 워킹맘 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흔히 쿵짝이 잘 맞는다 즉 '합이 잘 맞는다'라는 표현을 많이 한다. 아이와 나의 잘 맞는 합을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아침 일찍 내가 먼저 출근을 하면 중문 앞에 서서 세상을 잃은 것 같은 표정으로 슬프게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 표정에 먼저 적응을 해야 했다. 회사에서 연락 오는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의 전화 (아이가 어디를 조금 부딪혀서 다쳤습니다, 아이가 열이 조금 나네요 등)에 담담하게 반응할 여유를 가져야 했다. 

그리고 그중 힘들었던 건 다른 아이들이 모두 하원을 하고 난 후 아무도 없는 어린이집에서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나의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시간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것이었다. 


워킹맘 첫날, 아이가 마지막까지 남아있을 거라는 것은 예상했지만 어린이집 신발장에 아이의 신발만 남겨져 있는 걸 보았을 때 그리고 아이가 나를 반기며 나오는 모습을 봤을 때 왈칵 차오르는 눈물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미안한 감정보다는 저 작은 아이가 이 시간까지 잘 버텨준 것에 대한 대견함과 고마움 같은 것이었다.



3주째부터는 모순의 감정이 들기 시작한다.


아이를 낳고도 일을 계속한다가 아니라 나는 그냥 일을 계속하는 사람이다. 아이 때문에 일을 못한다 혹은 하지 않는다 라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계속 성장하고 싶은 것이 요즘 엄마들의 공통된 생각들이다. 아이가 전혀 걸림돌이나 핑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또 가족을 위해서 일을 하지만 일상적인 삶의 리듬이 전과는 다르게 오르락내리락하며 불협한 리듬으로 흘러갈 때가 있다. 

나를 위해서 일을 하지만 정작 나를 위한 시간이 적고, 아이를 위해서라고 하는 이유를 붙여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주말 시간 겨우다. 모순에 황당함을 느낀다. 인생은 늘 예측 불허의 연속이고 모순의 집합이기 때문에 이런 마음에 적응할 기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이리저리 부딪히다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4주가 훅 지나가 버린다. 출근 패턴, 회사 생활, 퇴근, 퇴근 이후 쓰이는 시간까지 그나마 루틴이라고 할만한 리듬이 생기려면 최소 4주는 필요하다. 


물론 1-2주만 지나도 이렇게 하면 되겠다 하는 대략적인 감은 오지만 몸 그리고 마음이 함께 적응하기 위해서는 4주가 제일 적당하다. 오만가지의 생각이 '워킹맘 생활을 계속해야 하나, 할 수 있을까...' 하며 유혹한다. 게으름 그리고 무기력함과 싸우면서 또 때로는 그 마음에 지기도 하면서 다 포기하고 내려놓기도 했고, 정신 차려서 또 회사 퇴근, 육아 출근을 완벽히 해낸 날도 있었다. 


그러나 졌을 때도 그리고 해냈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도 딱히 내 일상이 크게 요동 쳤던 날은 없었다. 

아기는 늘 피곤해했고, 나는 출근하기 바빴고, 남편도 달라진 본인 패턴에 적응해야 했다. 



워킹맘 4주가 지나면 아기에 대한 미안함은 익숙함으로 바뀐다. 주변에서는 (금방 큰다, 다들 그렇게 큰다, 어쩔 수 없다.)와 같은 별 위로는 되지 않지만 그나마 본인의 경험에서 나온 말을 해주는데 짧게 공감하기도 한다. 그중에서 제일 고마웠던 말은 이미 워킹맘 생활에 익숙한 5살 아기가 있는 같은 회사 선생님의 말이었는데 '아기에게 나올 때 꼭 엄마가 어디에 가는지, 왜 출근하는지 알아듣지 못해도 꼭 말하고 나오세요.'라는 말이었다. 출근하면서 집에서 나올 땐 아이가 깰까 봐 후다닥 나오기도 했고 아침에 일찍 깨어있는 날은 남편에게 '빨리 나가야 하니까 나가는 거 못 보게 해'라고 말하면서 나왔다. 말을 알아듣지는 못해도 마음은 통한다. 그 이후로 매일 시간 날 때마다 '엄마가 아침 일찍 회사에 가지만 빨리 퇴근해서 너랑 열심히 놀아줄게'라고 꼭 말을 해준다. 그래도 아이의 슬픈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내 마음을 이해하는 순간이 올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꼭 필요한 시간이다. 



나의 엄마도 항상 일하는 엄마였다. (지금도 일하는 엄마다.) 엄마랑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어린 나에게 엄마는 '다녀와서 열심히 놀아줄게'라는 말 대신 몰래 후다닥 집을 빠져나가기 바빴다. 그렇게 말없이 나간 엄마에게 늘 배신감과 상처를 받았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내 마음을 배려해서 한 행동이었을 수도 있겠다 혹은 엄마도 그때 일이 정말 바빴구나 하고 이해하고 짐작하게 된다. 다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에게는 상처가 되었으니 나는 아이에게 그렇게 하지 않아야지 다짐한다.



출산 전에는 인생의 낙 중에 하나가 회사의 일, 여러 가지 성과에 대한 스스로의 만족감 같은 것들이었는데 출산 후 복귀하고 나서는 이런 마음도 조금 내려놓아 본다. 

누군가 그랬다. 인생의 낙이 일이 되면 안 된다고. 이 말의 의미를 육아 휴직 중에 알았다. 모든 에너지를 회사에 쏟기보다는 적당히 스트레스를 조절하며 일과 나 그리고 육아, 그밖에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의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 


곧 워킹맘 생활을 앞둔 분들, 그리고 이미 워킹맘 생활을 하고 계신 분들이 내 마음에 얼마나 공감을 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워킹맘을 시작하면 이리저리 흔들릴 때가 있는데 그땐 꼭 4주간 버텨보시기를 간곡히 말씀드린다. 나 자신과 처음 겪는 모든 상황들에 꼭 유예기간을 두시라고 알려드린다. 

그럼 너무 많이 달라진 현실적인 상황들이 보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가 선명하게, 제법 굵직굵직하게 보일 것이다. 


내일부터는 워킹맘 5주 차가 시작된다. 일단 또 즐겁게 출근해보자. 흔들흔들하면서 또 그 사이에서 밸런스를 잡아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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