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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연 Sep 08. 2020

코로나 시대, 엄마의 '부캐'는 선생님

김신영은 다비 이모, 이효리는 린다 G, 유재석은 유산슬... 요즘 세상엔 '본캐(본래 캐릭터의 줄임말)' 대신 이름과 정체성을 바꾼 '부캐'가 승승장구한다.


신선한 변화를 추구하며 자발적으로 이들이 이렇게 살아가는 반면 요즘 나는 억지로 부캐 하나를 더 가동 중이다. 닉네임은 선생님.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아이 덕에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로 하던 과외를 다시 하는 느낌이다. 다른 게 있다면 그땐 돈 받았지만 지금은 아무도 돈을 안 준다는 점이다. 물론 복장은 더 터지고.


알량한 과외 경력이라도 있는 게 다행인 건지 주변에선 이 온라인 학습을 두고 양육자들의 걱정과 불만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건 알지만 어쨌거나 아이들은 '관리'가 잘 안 되는 게 사실이다.


전업주부인 나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축에 속하는 걸 알지만 그런 내게도 버거운 일은 버거운 일.


아직 1학년이라 4교시에서 5교시 수업이긴 한데 하나하나 선생님께서 만드신 자료로 수업을 듣는 것이니 받아먹는 입장에서도 성의껏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든.

 

'넌 혼자 들어라 엄마는 집안일할게' 이건 성격상 되지도 않고 솔직히 시켜보니 한두 가지씩 꼭 아이가 뭔가 놓치는 게 있어서 꼼짝없이 같이 수업을 받는다. 내가 마우스를 잡고 아이는 앞에서 시키는 걸 한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된 수업은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2시나 되어야 끝날 때가 많다. 수업 봐주며 틈틈이 쌀을 씻고 반찬을 만들어야 하는 것도 온전히 엄마인 내 몫이다.


수업태도도 좋은 편이고 얌전히 시키는 걸 잘하는 아이지만 그래도 큰 걸림돌은 있다. 그것은 바로 미술활동.


1학년은 따로 미술 수업이 없지만 색연필을 빼곤 진행이 안될 만큼 거의 모든 활동에 그림이나 만들기가 포함된다. 사람을 아직 '졸라맨'으로 그리는 우리 아들에게 그래서 수업은 어떤 면에서 두렵고 힘든 시간이다.


맘 같으면 까짓 거 내가 다 해줘 버리는 게 제일 속편 하겠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 최대한 어르고 달래서 이것저것 시켜본다.


손이 아프다고 칭얼대면 잠시 자전거 타고 집 앞을 한 바퀴 돌고 오라고 시킨다. 신나서 나간 아이가 아무도 없는 단지를 돌아 집으로 올 그 잠깐 사이 나는 쌀을 씻고 밥솥을 누르고 냉장고를 털어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


반찬 만드는 일도 한 번에 쭉 하면 쉬우련만 야채 잠깐 다듬어 놓고 또 공부방으로 들어가 시킨 건 잘하고 있는지 큰애 한번 봐주고 심심하다고 입이 댓 발 나온 둘째 달래 색칠공부라도 시켜야 한다.


멀티와 멀티를 뛰다 보면 내가 한 손에 국자를 들고 한 손에 마우스를 든 채 앉아있기도 하다. 이거 참 웃프다.


그 와중에 영어학원도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시키면서 나는 이제 영어까지 풀로 아이를 가르치게 됐다.


스펠링을 불러주는데 CD발음과 내 발음이 다른 걸 지적하는 아이 앞에서 최대한 의연하려 애쓴다.



하루 종일 온라인 수업과 숙제 뒤치다 거리를 하다 보면 빈 밥통에 당황하거나 번 아웃되어 소파에 널브러지기도 한다.


이러다 부캐가 본캐를 잡아먹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휴


처음 아이를 하나 키우다 둘이 됐을 때 감당이 안 되어 한동안 전전긍긍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툭 하고 알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능력치가 업그레이드된 적이.


그때 나는 알았다. 사람은 극한으로 가면 없던 능력이 생긴다는 것을.


지금도 나에게 그런 또 다른 극한은 아닐지. 이러다 또 예전처럼 뿅 하고 능력치가 상승하는 건 아닐지. 어쩌면 나는 일어나지 않을 기적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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