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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가 Dec 11. 2023

조언의 한 끗 차이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376쪽 '멘토르의 멘토링을 읽고


모험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텔레마코스에게 멘토르(로 변장한 아테나)는 말한다. "걱정 마라. 꼭 해야 할 말의 대부분은 네 스스로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처 못다 말한 나머지는 신들께서 도와주실 것이다. 가자, 내가 너와 함께 가겠다."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소름 돋도록 비슷한 말을 얼마 전 들었기 때문이다. 같은 성당에 다니는 지인이 고해성사 중 신부님께 들은 말씀 중 가장 힘이 됐다는 조언이 그것이다.


"신부님께서 제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앞으로 하는 일 90프로는 하느님이 하신다고 생각해 보라 하셨어요. 그리고 나는 거기에 조금만 더 보탠다고."


지인은 그 말씀을 듣고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90프로를 신께서 해주신다는데 얼마나 힘이 될 것인가? 나였더라도 어려운 일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며 엄청난 생각의 전환이라 감탄했다.


그런데 이 두 멘토(이야기 속 멘토와 신부님)는 어쩌면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이야길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멘토르의 조언엔 '해야 할 말의 대부분은 네 스스로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라 했고 신부님은 '대부분을 신이 행한다'라고 말했다. 둘 다 용기를 주는 조언이지만 방식은 사뭇 다르다. '내가 하는 것'과 '남(신도 남이니까)이 해주는 것'의 차이.  


멘토르의 조언에 어쩐지 더 끌리는 건 아무래도 신이 알아서 해주면 덜 힘들긴 하겠으나 내 능력이나 성과가 자라는 게 아닌 것 같아서일 것이다. 앞으로도 힘들 때마다 "똑똑, 저기요 하느님 부탁이 또 있습니다만" 하며 아쉬운 소리 하기 싫은 느낌이랄까. 스스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은 든든한 법이다. 나만큼 내편인 이가 또 어디 있겠는가.


나는 자주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해주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멘토르의 말을 읽다 보니 멘티의 성장을 바란다면 90프로쯤 스스로 해낼 수 있게 기다려 주고 지지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겠다. 실수하고 넘어진 뒤 바로잡을 기회를 주는 것이 진정한 멘토의 역할일 것이다. 그 '좌충우돌'의 시간을 옆에서 함께해 주는 것만으로도 10프로 이상의 힘을 실어주는 것일 테다.


아들아, 이제 수학 틀린 문제를 풀어보자. 꼭 풀어야 할 대부분의 식은 네 스스로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처 못다 푼 나머지는 답지가 도와줄 것이다. 풀어라, 나는 너와 마음을 함께하되 들어가 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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