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엔 '핼러윈' 하면 에버랜드나 이태원이 떠올랐지만 결혼 후 애가 생겨 그 애들이 좀 크고 나니 핼러윈은 그저 '서브 크리스마스' 정도로 작은 즐길거리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이걸 1차적 의미의 쿵짝쿵짝 파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남편이랑 눈이라도 진지하게 마주치는 날엔 육퇴 후 원치 않게(?) '2차'를 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정신 바짝 차리고 애들 시중에 집중해야 한다.
목표도 달라졌다. 예전의 나라면 오로지 '나'의 행복을 위해 전력질주했을 텐데 이젠 내가 즐긴다기보다는 우리 고객님(물론 애들)의 니즈에 맞춰 최대 목표를 아이들 쌍따봉 받는 걸로 하향 조정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즐길 때보다 더 뭔가 뿌듯한 게 진짜 서비스 정신 투철한 애미의 맘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올해는 핼러윈을 한 달이나 미리 앞두고 다이소와 플라잉타이거 매장을 털어 집 안을 치렁치렁 꾸며두었다. 6살 막내는 유독 이런 공포 분위기를 좋아해서 유령을 도화지에 그려 색을 칠하고 같이 오리는 과정을 즐거워했다.
교보문고에서 2500원 주고 산 저 가면을 애지중이 어찌나 소듕하게 다루는지 참.. 6살 여아의 취향 치곤 그로테스크하다 싶지만 난 언제나 취향을 존중하는 엄마니까 내버려뒀다 ㅋ
살고 있는 아파트엔 다행히 또래가 많아서 같이 즐길 수 있었는데 첫째 친구 엄마가 감사하게도 애들 '핼러윈 투어'에 우리 집을 껴주셔서 해가 진 밤 7시, 그렇게 아파트 핼러윈이 시작됐다.
나도 평생 핼러윈을 대충 즐겼을 뿐이지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집집마다 돌며 사탕 달라고 하긴 처음이라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급히 집 앞 슈퍼에서 사탕이랑 쿠키를 사 포장을 마치고 아이들과 기다렸다.
남편에게 사탕 나눠주는 걸 맡기고 6집 정도를 도는데 엄마들이 같이 아이들과 돌며 복도에서 조용히(?) 벨을 누르고 사탕 받는 걸 도와줬다.
아파트 단지를 뛰어가는 작은 미라, 뱀파이어, 스크림 몬스터, 마녀들은 끊임없이 키득거리며 신나 했다.
벨을 누른 뒤 사탕 한 줌 받겠다고 쪼꼬미 애들이 종이가방이나 사탕바구니를 높이 쳐드는 모습이라니! 뒤에서 보면 정말 엄마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장면이었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즐길거리 없는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해서라도 스트레스를 해소할 틈이 생긴다는 게 참 고맙고 기뻤다.
신문과 인터넷에서는 핼러윈을 즐기면 마치 죄인 다루듯 그렇게 떠들어서 마음 한편으로는 찝찝한 구석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국적 없는 명절을 왜 즐겨야 하나' '몸에도 안 좋은 사탕을 굳이 나눠줄 필요가 있을까' 같은 의문들이 그날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클럽 같은 곳에서 가서 사람들이 모여 즐기는 건 코로나 시대에 말도 안 될 일이지만 이렇게 아이들이 마스크도 잘 쓰고 조용히 즐긴다면 이정돈 우리가 격려해 줘도 되지 않을까.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만 아니라면 핼러윈이 정체불명의 날이거나 사탕 먹어 이를 좀 더 썩게 하는 일일지라도 내 아이가 일 년 중 한 달 정도는 즐길 수 있다면 그리고 그로 인해 나까지 행복할 수 있다면 핼러윈은 더 이상 남의 명절이거나 못된 날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요즘 동네에 보면 어떤 집에 모여서 핼러윈 파티를 아예 여는 일이 많던데 아이들이 있다면 그것보다는 몇 집이 모여서 벨을 누르고 사탕 받는 걸 경험해 본다면 좋겠다. 해보니 이거 너무 재밌다. 각 집마다 준비한 군것질거리 구경하는 재미도 그렇고 뭣보다 공짜로 뭔가 우르르 쏟아지니 너무 신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