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한 시간 활용
33화 제육볶음 편
옷깃만 스쳐도 피부가 너무 따가웠던 11월 그 어느 날, 그 통증이 무엇인지 모른 체 혹독한 근육통과 고열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나는 3주간 지독한 감기 몸살을 앓았다. 미각과 후각은 어느덧 상실되었고, 인후통과 고열이 심했지만 코로나도 독감도 모두 음성으로 판정되었다.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은 가운데 부모님 가게에 일하시는 분이 나가면서 갑작스럽게 새벽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일을 하면서 점점 건강을 되찾았다. 어쩌면 시간이 감기를 잠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11월은 기존의 일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일에 정착하는 데 시간을 보내며 남들처럼 공평하게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12월 어느 월요일을 맞이했다.
새벽에 출근하니 전날 나훈아 콘서트를 보고 오신 부모님이 입이 마르도록 나훈아를 칭찬하며 그 콘서트의 디테일한 후일담을 전했다.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 언제나 설레고 감격스러운 일인 것이다. 부모님의 소년, 소녀의 감성과 그 빛나는 눈빛이 나는 좋았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이제는 정겹다. 오고 가는 손님들이 전해주는 그들만의 세상 이야기는 지금 읽고 있는 소설책만큼 흥미진진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나씩 이야기들이 쌓여간다.
김장철 늙은 어미들이 다 떠나버린 시장 상가는 곧 다가올 추위를 준비하고, 약간의 고요함과 나지막한 목소리들이 거리에 남아서 떠돈다.
양손 무겁게 제육볶음 재료를 사서 정오에 퇴근하는 발걸음은 또 왜 이리 가벼운 가! 내 마음도 발걸음과 같아지기를, 입은 한없이 무거워지기를 바란다.
하루가 길고도 또 짧은 평일, 내일은 또 어떤 날이 될지 궁금해진다. 어제와 같아도 좋고, 나를 해체해 다른 인물이 되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 그런 날이다.
자 이제 저녁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