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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코 Feb 19. 2024

34화 돈가스 편

마음에 점이 아닌 큰 점을 찍으며

34화 돈가스 편


“여보, 냉동실에 만들어 놓은 돈가스 좀 꺼내서 싱크대 위에 올려줘. 이따 점심때 돈가스 해줄게. “


남들에게는 아직 이른 시간, 나는 새벽일에 점차 적응이 되어 이른 오전 시간 개념을 한 번씩 잊을 때가 있다. 깜깜한 새벽 차디찬 공기마저 뜨겁게 달구는 부산스러운 일터에는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리니 말이다.


일곱 시 반 밖에 안 됐는데 남편의 아침잠을 전화로 깨우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새벽형 아들이랑 통화하고 싶어도 남편에게 전화해야 되는 일이 생기니 가끔 난처하다.


일을 한지 어느덧 3개월 차가 되면서 휘몰아치는 숱한 감정과 절망적이고, 때론 굴욕적인 내 모습에서 벗어나 일말의 위안을 얻고 있다. 빈틈없이 타이트한 일상을 아주 단조롭게 패턴화 시켜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패턴을 찾은 것에 대한 자유로운 쾌감을 만끽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집착적으로 편도체 안정화와 전전두피질 강화에 사로잡혀 말도 안 되는 상황에도 긍정적 마인드 유지를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지금 이 상태를 황당한 불안으로 채우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또 그 틈을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균열을 내는 무언가가 나타날지도 모르지만 그저 나는 꿋꿋이 잘 견뎌볼 작정이다.


맛있는 점심을 가족들이 기다린다.

마음에 점을 찍을 만큼만 먹어야 되는데 어제 청소한 냉동실을 더 말끔하게 정리하고 싶어 우리의 입 속으로 돈가스를 깨끗이 비운다. 마음에 큰 점을 찍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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