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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샵 Jun 22. 2023

[심플운동] 나는 살아있는 시체! 좀비였다.

좀비에서 해방되기 위해 스트레스를 들여다보다

어느 날 아침, 평소와 같이 눈을 떴는데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피곤할 수가 있지?’ 빨리 일어나 샤워를 하고 회사에 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럴 힘이 없었다. 지난 몇 달간 계속 피곤하고 기력이 없어 좀처럼 몸을 움직이기 힘들다는 자각은 있었지만, 이렇게 침대 밖으로 한 발짝도 내딛을 수 없을 정도로 소진되었다고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회사에 연락해 병가를 받고, 한참을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혹시 건강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병원을 찾아가 피검사를 해보았는데, 모든 수치가 완벽하게 정상이라고 했다. 마음의 병이었다.

(…) 결국 지독한 번아웃이 찾아왔다.
(…) 나도 직장 생활은 처음이라 막중한 업무와 극심한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직장 생활이라는 것은 원래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참는 것 이외에 다른 어떤 해결책이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수년을 버텼다. 그랬더니 에너지가 고갈되어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결국 휴직계를 내고 몇 개월 동안 집에 누워만 있다가,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 이소연의《계획이 실패가 되지 않게》중에서

대중의 추앙을 받으며 종영한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를 요약하면, 자신을 짓누르는 과도한 삶의 압력에서 ‘해방’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일(직장)ㆍ돈ㆍ차ㆍ연애ㆍ결혼ㆍ인간관계ㆍ가족관계 등, 자신을 짓누르는 가장 큰 압력에서 해방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다양한 삶의 무게를 이고 살아가는 우리가 평온함에 이르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평온히 잠들지 못한 수많은 밤을 떠올려 보라). 해방의 첫걸음은 문제점을 알아채는 것인데, 무엇이 문제인지 아는 것조차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한 해방은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삶의 압력,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삶의 압력이 임계점에 이르기 전까지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미세한 균열이 발생하고 문제가 있음을 알리는 여러 번의 신호가 있었지만, 그 의미를 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는 사이 내 몸과 마음은 서서히 파괴되고 일상이 가라앉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던 2003년 여름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상황은 돌변해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본, 내 의지로는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피로였다. 전투기 조종사가 6G에 해당하는 중력 가속도 훈련을 받을 때 느끼는 압력이 나를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옴짝달짝 못하게 만든 피로에서 조금이나마 풀리는 저녁이 되어서야 정신이 들기 시작하고 움직일 수 있었다. 나는 살아있는 시체! 좀비가 된 것이다.

마치 그나마 있던 빛들조차 하나둘씩 희미해져 가며 점점 늪 속으로 빠져가는 상황이다. 허우적댈 수조차 없다. 그저 가라앉기만을 기다린다. 끝내 모든 빛이 사라져 암흑이 나를 집어삼킨 후에야 움직임이 멈춘다. 하지만 깜깜한 마음 한구석에서 아주 가끔 들리는 소리가 있다. 벗어나야 한다고… 탈출해야 한다고… 해방되어야 한다고… 조금이라도 움직여 보라는 희미한 소리가 조금씩 울리기 시작한다. 그 소리를 따라 몸을 움직여 본다. 이미 바닥에 가라앉아 있지만, 그 바닥을 박차고 조금씩 움직여 보기 시작한다. 마침내 빛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이 늪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것은 아니다. 이제 겨우 숨을 쉬고 빛을 받아들일 뿐이다. 

– 2014년 가을 어느 날

해방은 오직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일이다.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다. 파괴되고 무너진 일상을 재건하기 위해 옷소매를 걷어붙이는 것도, 늪 속에서 허우적대며 시체처럼 살던 오직 ‘나’여야만 했다. 하지만 끝은 없다. 어느 시절을 지나면서 가장 힘겨운 삶의 압력에서 해방되었다 해도, 또 다른 삶의 압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내 삶에서 집단 괴롭힘과 따돌림은 중2 이후론 상상해 본 적 없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자신을 짓누르는 과도한 삶의 압력에서 ‘해방’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미지 출처: 나의 해방일지]

학교 폭력ㆍ군대 폭력ㆍ직장 괴롭힘과 같은 물리적/정신적 스트레스ㆍSNS를 통한 비교 불행 그리고 사회적 스트레스인 각종 사건사고와 참사ㆍ산업재해ㆍ자연재해ㆍ팬데믹 등. 마치 죽기 전까지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현실 속 우리는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 주인공들처럼 몸과 마음의 의학적 질환 없이, 그리고 <더 글로리>의 문동은처럼 통쾌한 복수를 실행하면서 삶을 이어 나가긴 어렵다. 

“우리 진짜로 하는 건 어때요? 해방클럽. 전 해방이 하고 싶어요.
해방되고 싶어요. 어디에 갇혔는지는 모르겠는데, 꼭 갇힌 것 같아요.
속 시원한 게 하나도 없어요.
갑갑하고, 답답하고, 뚫고 나갔으면 좋겠어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엄미정의 대사 중에서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힌다는 것


삶은 고통이며 고통을 어떻게 대하고 다룰지, 동시에 고통 속 나를 어떻게 돌보며 삶을 여행하느냐가 인생인지도 모른다. 하여 삶의 압력에 몸과 마음이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삶의 무게가 짓누르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히는 것이다. 갇힌다는 건 움직이는 인간과 동물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다. 어릴 땐 몰랐지만 성인이 돼서 가본 동물원은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자연의 집에 있어야 할 수많은 종의 동물들이 인공적 동물원이라는 감옥에 끌려와 갇혀 있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동물원을 나오기 전까지 마음이 몹시 불편하고 슬펐다.


활동 범위가 인간보다 넓은 그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동물원과 수족관에 갇힌 상황은 너무 가혹한 스트레스이다. 결국 어떤 동물은 자해하며, 더 버티지 못하면 끝내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사람만큼 대뇌가 발달하지 못한 동물들도 자살한다. 물론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자살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자살의 의미가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라고 할 때 동물들도 자살할 수 있다는 증거들은 얼마든지 있다).

표범은 자의에 의해 동물원에 온 것이 아니다. 동물에게 동물원은 감옥일 뿐이다. [이미지 출처: 구글]

감옥은 죄를 지은 인간에게 마땅히 가해지는 합법적인 스트레스 장치이다. 독방은 더욱 그렇다. 삶의 압력이 우리를 과도하게 짓누르는 상황은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힌 것과 같다. 더욱 가혹한 것은 움직이지 못하게 몸을 묶어 두는 것이다.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사람은 결국 죽는다. 마찬가지로 끝내 감당하기 힘든 가혹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해방되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를 밀어버린다. 돌아올 수 없는 천 길 낭떠러지와 헤어 나올 수 없는 늪 속으로…


스스로 죽음을 택하게 만들 수도 있는 삶의 압력 ‘스트레스(Stress)’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만병의 근원’이라고 불리는 스트레스를 입에 달고 살아야 하는 호모 사피엔스 후손들의 일상. 그래서인지 한국인이 자주 사용하는 외래어 중 1위는 ‘스트레스’라고 한다(안타깝지만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자살률은 비교 대상 국가들 가운데 최상위 수준으로 OECD 평균보다 두 배가량 높다."고 나와 있다). 이처럼 일상에 넘치는 단어지만 심각성은 오히려 퇴색해 버렸다. 하지만 해소되지 않고 쌓이는 스트레스로 인한 심각성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며, 삶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갈 정도로 무섭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트레스는 무너진 우리 삶을 정상으로 돌려놓을 힘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만병의 근원이라 불리는 스트레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나는 살아있는 시체, 좀비였다.


내 몸에 이상이 생긴 2003년 여름까지 스트레스와 그에 대한 대처법을 잘 알지 못했다. 스트레스를 이론으로 접한 건 트레이닝을 공부하는 과정에서였다. 한스 셀리에(Hans Selye, 1907~1982, 오스트리아 출생의 캐나다 내분비학자)가 쥐를 이용한 실험으로 도출한 ‘일반적 적응 증후군(General adaptation syndrome)’이라는 내용과 함께 운동 생리학 책에 짧게 소개된 것이 전부. 그 이론을 바탕으로 운동이라는 물리적 스트레스가 인체에 미치는 긍정적ㆍ부정적 영향에 대해 알게 되었다.

스트레스 실체를 본격적으로 파헤친 것은 ‘의사들조차 손쓰지 못하는 증상’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고통받기 시작한 후였다. 수 년간 인체 항상성ㆍ내분비 물질ㆍ되먹임 체계(Feedback system)ㆍ자율신경계와 뇌ㆍ몸과 마음 그리고 진화와 인체 스트레스 시스템에 대해 파고들었다. 관련 자료를 찾고 100여 권에 이르는 책을 읽으며 알아가고자 했다. 검사로는 알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가 어떻게 몸과 마음을 파괴하고, 현대의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몸과 마음의 증상을 일으키는지 알고자 했다. 


그리고 2010년에 썼던 블로그 글 <몸짱 되고 싶은 남자라면 꼭 봐야 할 몸 만들기 책 - 저자의 비하인드 스토리>에서 이 내용에 대해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집필 6개월쯤,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로와 근육통에 시달리게 되면서 약 2개월가량 아무것도 못 한 채 집필을 중단하게 됩니다. 글을 쓰는 중압감이 아마도 그리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흘러 최종 근섬유통증후군(Fibromyalgia syndrome)이라는 진단을 받기에 이릅니다. 의학 코드로는 희귀성 질환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1990년 류마티스 학회에 정식 명칭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인구의 약 2%가량이 앓고 있으며, 아직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이 이야기는 통증과 관련해서 현대의학의 문제점과 함께 다룰 예정입니다). 

– <몸짱 되고 싶은 남자라면 꼭 봐야 할 몸 만들기 책 - 저자의 비하인드 스토리> 2010.3.7


하지만 여는 글 <잃어야 얻는 깨달음>의 첫 문장처럼 내가 경험한 일을 글로 옮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희귀 또는 난치성 질환, 트라우마나 우울증 등을 글로 세상에 공개하기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결정이다. 희귀질환 코드명 M79.7로 분류된 ‘그 질환명이 가져다주는 통증과 피로ㆍ우울감과 무기력으로 인해 삶과 영혼이 파괴되었던 나는 ‘살아있는 시체’, 산송장과 좀비 그 자체였다. 그것이 바로 삶의 압력이자 긴장인 스트레스가 나도 모르게 쌓이면서 내게 안겨준 최초 결과물이었다. 


타인의 건강을 관리하는 일을 해왔지만, 정작 자신은 그러지 못한 채 스트레스가 몸과 마음을 갉아먹어도 알아채지 못했던 어리석음. 그래서 알고 싶었다. 왜 몸과 마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해방되고 싶었다. 몸과 마음에 쌓이는 모든 것들로부터. 무겁게 나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라는 압력에서. 자궁 속 무중력에 가까운 상태에서 태어난 우리가 중력과 함께 고단한 삶의 압력을 경험하며, 다시 무중력을 향해 나아간다. 언젠가 그 고단함에서 해방되어 평온한 일상이 찾아오는 날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비록 무중력의 상태로 돌아가기 전, 딱 한 번의 마지막 경험일지라도 온전히 해방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원문: [심플 운동] 나는 살아 있는 시체! 좀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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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참고: <계획이 실패가 되지 않게> 이소연 지음 | 다산북스(2021)

참고: <한국인 자살률> - 통계청, 2022.9.27


By 푸샵 이종구: <남자들의 몸 만들기, 2004> 저자
·자격사항: 개인/임상/재활 운동사, 미국체력관리학회 공인 퍼스널 트레이너(NSCA-CPT), NSCA-스포츠영양코치, 국가공인 생활스포츠지도사2급, 퍼스널 트레이너2급, 웃음치료사2급, 바디테크닉 수료
·사이트&SNS: http://푸샵.com페이스북,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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