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wn Under Food Rhapsody
"출근하기 전에 어여 먹고 가" 용언니가 아침부터 김밥을 배달해왔다.
쉬는 날,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한껏 여유 부리고 싶을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메뉴는 속이 쫄깃한 바게트에 두세 가지 종류의 치즈, 레드와인 한잔이다.
하지만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고, 먹어도 또 먹고 싶고, 일하다가도 집에 돌아가 빨리 먹고 싶은 음식은 단연코 용언니표 김밥...
처음 맛본 후에 '너무 맛있다, 난 언니 김밥이 제일 좋다' 노래를 부르자 10년도 넘게 내 생일날이면 김밥과 미역국으로 생일상을 준비해 나를 불러준다.
용언니로 말할 것 같으면, 주부 10단하고는 거리가 먼, 채소를 데칠 때 채소를 찬물때부터 넣어야 하는가 끓인 물에 넣어야 하는가 헷갈려하는 사람이고,
언니의 김밥으로 말하면, 금가루를 뿌린 것도 아니요, 안과 밖을 뒤집은 누드김밥도 아니요, 그 흔한 참기름칠도 아니한 김밥이다.
단무지, 우엉, 당근, 깻잎, 계란지단, 어묵을 꽉꽉 박아 넣고 말아서 작고 얌전하게 썰은 김밥.
씹어보면 재료 중 뭐 하나 튀는 것 없고 각자의 맛이 고스란히 살아있으면서도 은은히 조화되는, 정직하고 깔끔한 맛이 만든 이와 꼭 닮아있다.
한국사람 치고 김밥에 얽힌 추억이 없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일 것이다. 어느 친척 되는 분 댁에 행사가 있어 놀러 갔을 때가 기억난다.
어른들 상 차리기도 바쁜데,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고만고만한 꼬마들 다섯 명이 손가락 빨고 있자, 숙모 되시는 분이 간도 안 한 밥에 단무지 하나, 그 옛적 샛 분홍색 소세지 하나 달랑 넣고 후다닥 팔뚝만 하게 김밥을 말아 반을 뚝 잘라서 하나씩 쥐어주셨다. 그땐 그 김밥이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생각해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호주에서는 김밥집이 아닌, '스시집'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회전초밥집도 있지만, 쇼핑센터마다 이쪽 끝, 저쪽 끝, 가운데에서도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스시 키오스크이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우리나라 김밥 반만 한 크기의 스시롤에는 훈제연어나 참치, 튀긴 닭, 오이, 아보카도 등의 재료 중 보통 한두 개가 들어간다.
스시롤을 한입씩 베어 물며 쇼핑을 하는 호주 사람들을 보는 것은 이제 흔한 광경이다.
가끔 일본의 스시는 저렇게 좋아하고 잘 알려져 있는데 우리나라 김밥점은 왜 찾아보기 힘든지 뭔지 모르게 안타까워, 팔 겉어 붙이고 김밥을 말아 팔아보고픈 심정이 든 게 여러 번이다.
그러면 'Korean Sushi' 라 하지 않고 꼭 'Gimbob'이라고 써붙여야지...
생일도 아닌데 이렇게 언니의 김밥을 먹게 되니 횡재한 듯 기분이 좋다. 넉넉히 3줄이나 말아주었으니 아껴먹으면 이틀 동안은 행복하겠다. 고마워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