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에 대하여

처신을 도와주는 마법의 단어

'직장생활에선 일보다 처신이 제일 어렵다.'

1년 차 때 내 사수가 나에게 해준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고, 현재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말이다.

3년 차 때 나는 잘못된 언행과 처신으로 같이 일하는 후배와 사이가 틀어진 경험이 있다. 나도 선을 넘는 행동을 했고, 후배도 선을 넘는 행동을 하여 서로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 관계가 틀어져 화해하기 힘든 정도까지 가버렸으며, 나는 스트레스가 심해 불면에 시달리고 도저히 근무를 하기 힘든 마음상태가 되어 출근했다가 병가를 쓰고 퇴근을 하기까지 이르렀다.

그러던 중,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니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나는 직장에서 하는 언행에 '굳이'를 붙여봐. 굳이 이 행동을? 굳이 이 말을?이라고 생각하면 말과 행동을 아끼고 조심하게 돼. 내가 다니는 회사는 작아서 소문이 엄청나게 빠르지만, 나는 내 이야기를 잘하지 않고, 들어주기만 하고 그냥 그 자리에서 잊어버려. 옮길 필요도 없어." 나도 남의 말(특히 험담)을 듣고는 잊어버리고 옮기지 않는다는 것은 실천하고 있었으나, '굳이'라는 점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하는 일과 일상생활에 '굳이'를 붙여보니, 복잡한 삶과 직장생활이 많이 간단해졌다.

1. '굳이' 그 말을 해야 하는가.

그 사람의 험담을 굳이 해야 하는가. 나는 험담하는 사람을 멀리한다. 그런 사람은 일단 내 약점이나 치부를 알게 된다면 그것을 열심히 가십으로 소비할 것이며, 내 곁에 두더라도 부정적인 소문만 듣게 될 뿐 생산적인 대화를 나눌 수가 없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굳이' 다른 사람의 험담을 퍼 나르며 '험담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가질 필요가 없다. 오히려 과묵하고 입이 무거운 이미지를 가지게 되면, 직장의 온갖 가십과 정보를 다 들을 수 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 사람은 믿을 만하다.'라는 이미지가 생겨서 그런 정보들을 '너만 알고 있어' 라며 나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나는 말하는 수고를 들이지 않고서도, 정보를 얻는 이득과 신뢰를 얻는 이득을 모두 취할 수 있다. 그러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2. '굳이' 그 행동을 해야 하는가.

군필자들이 군생활 중에 듣는 조언 중에 하나가 '해야 되나 싶으면 하고, 해도 되나 싶으면 하지 마라.'라는 말이 있다. 굳이 이런 규정까지 지켜가면서 일해야 하나 싶은 것이면 귀찮더라도 문제의 소지가 되거나 혼나느니 지키는 것이 맞고, 이런 규정은 안 지켜도 되겠지, 편법을 써도 안 들키겠지 하는 것은 하지 마라는 것이다. 이 개념을 좀 더 확장하면 '굳이' 그 행동을 해야 하는가. 인 것이다.

직장생활에서 알잘딱깔센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정말 어렵다.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판단할 때도 '굳이'를 붙여 보는 게 유용하다.

굳이 이 일을 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하고, 아니라면 쉬자.

이 일의 중요도가 커서 굳이 정성을 들여서 해야 한다면 완벽하게 하고, 아니라면 큰 오류만 없게 적당히 넘어가자.

다른 사람 일을 돕는 경우에, 굳이 내가 나서야 할 것 같으면 도와주고, 그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라거나, 내가 월권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나, 딱히 사이가 좋은 사람이 아니고 베풀어도 돌아오지 않을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내버려 두자.  

이렇게 내 언행을 하기 전에 '굳이'를 붙여보니, 쓸데없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게 되어 많은 에너지를 아낄 수 있었고, 직장에서의 처신에 관련된 판단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사이가 틀어진 후배와의 관계를 복기하는 데에서도 도움이 되었다. 결론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 후 나는 직장에서 굳이 감정소모를 하지 않았고, 내 업무에 집중하고 사람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감정소모를 할 필요 없으며, 내 인생에서 지나가는 남일뿐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아도 되는 사람인 것이다. '굳이' 내 연인도, 가족도 아닌 사람에게 애를 쓸 필요가 없었는데 내가 괜한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러니 '굳이'를 내가 하는 언행에 붙여보자. 삶이 많이 단순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