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레즈비언을 담은 영화 <우리, 둘>
감독 필리포 메네게티│출연 바바라 수코바, 마틴 슈발리에
개봉 2021.07.28 | 장르 드라마/로맨스/멜로 | 국가 프랑스, 룩셈부르크, 벨기에 | 러닝타임 95분
영화 <우리, 둘>에게 호기심을 느낀 건 영화 소개와 스틸 컷에서 느낄 수 있는 감성 때문이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분하고 안정적이며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아주 오래되고 아끼던 것에서 느낄 수 있는 포근한 기분이다. 그러니까, 유년 시절에 선물 받고, 아직도 잠들기 전 만져보는 곰 인형 같다. 코끝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향에 편안히 잠드는 시간을 줄 것 같다.
어떻게 짙은 신뢰를 짧은 시간 동안 영상에 담을 수 있을까? 배우의 연기를 담은 영상부터 스틸컷까지 전해지는 연기가 눈에 밟혔다. 사실 일정이 맞지 않아 시사회 참석이 어려웠는데,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일정을 무리하게 빼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일정을 빼고 참석하길 잘했다. 나는 95분 동안 사막 속에서 찾아 헤매던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쁨을 느꼈다. 목이 말라 갈라지고도 남은 삭막한 표면에 서서히 스미는 습기가 갈증을 해소했다.
그렇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을 정도로 나는 갈증이 있다. 갈증을 부정할 수 없다. 절대 깨지지 않을 신뢰와 서로를 이끄는 건강한 관계가 영원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슴속 어딘가 품고 있다. 그래서 나는 갈증을 겪고 있다.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은 환경에서 태어나 성인까지 자라온 나는 항상 불안감을 가지고 살았다. 책이나 영화에서 볼법한 신뢰에서 오는 차분함을 찾아 헤맨다. 자라오며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영원한 것은 없고, 영원하기 위해선 부단히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알아 보통 관계를 쌓고 신뢰를 갖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결국 나는 갈증 해소를 위해 무디고 섬세한 일상을 눈에 담는다. 자연스러움 그대로를 당신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 그리고 어떠한 편견 없이 그 일상을 품는 것.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상인지, 감탄스럽다.
물론 예상 밖의 전개와 우리 둘을 제외한 모든 관계는 날 당혹스럽게 만들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바로 당신과 당신을 위한 사랑이 오로지 지구에서 우리, 둘에게만 허락됐다면 얼마나 많은 감정이 화수분처럼 쏟아지겠는가. 둘의 세상이 명확하다. 우리 둘과 그리고 둘을 둘러싼 어느 아파트가 전부다.
아파트 복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맞은편에 살고 있는 니나와 마도.
마냥 가까운 이웃처럼 보이지만 사실 둘은 20년째 사랑을 이어온 연인이다.
은퇴도 했으니 여생은 로마에 가서 편하게 살자는 니나의 제안에
마도는 가족들에게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놓기로 한다.
마도의 생일, 쉽지 않은 고백 과정에서 그녀는 결국 충격으로 쓰러진다.
그리고 니나는 가족으로부터 마도를 되찾을 플랜을 짜기 시작하는데…
온 세상을 떠나보내도 함께하고 싶은
두 여인이 만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랑 이야기
영화 <우리, 둘> 시놉시스
그래, 정말 나라도 소름 끼치겠어
우리, 둘을 지켜보는 외부인에게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엄마를 모시고 있던 와중 자꾸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갑자기 엄마가 사라지지 않나, 아니면 멀쩡했던 차가 부서지지 않나, 간병인을 잘 못 들여 생긴 일이라 생각한 딸, 앤(레아 드루케)은 직접 엄마를 챙기기 시작한다.
평소처럼 기상한 앤은 자연스럽게 방에서 나와 욕실을 들렸고 욕실 근처인 마도의 방에 들어가 커튼을 활짝 연다. 햇빛이 통유리창을 통해 침대 곁으로 내린다. 커튼을 열고 자연스럽게 돌아본 엄마의 침대 위엔 집 안에 있으면 안 될 여자가 엄마를 부둥켜안고 자고 있었다. 성적 취향을 떠나 간밤에 모든 문을 걸어두고 잔 집에 외부인이 들어와, 나의 엄마를 끌어안고 자고 있다면 얼마나 소름 끼치겠는가? 그것이 바로 친절한 이웃집일지라도.
엄마는 사별 후, 아무도 만나지 않으셨다. 프랑스의 소박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아간다. 복도를 맞은편 사이 니나를 친절한 이웃으로 두고 노년을 보내고 있다. 어쩐지 동생 프레드릭(제롬 바랑프랭)은 어느 시점부터 엄마에게 어딘가 모나게 굴었고 엄마는 이를 꾸짖지 않는다. 쌓여가는 의견 차이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동생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자신과 프레드릭을 낳고 좋은 사람은 아니었던 남편과 꿋꿋이 살아온 엄마 마도는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로마에서 만난 여행 가이드 니나와 사랑을 이어오고 있다. 프레드릭은 엄마의 바람을 알았을 뿐이고 그녀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채 아들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우리 둘의 비밀은 마도의 가족에게 20년간 이어져오는 비밀이었다.
마도(마틴 슈발리에)는 사별 후 니나(봐봐라 수코바)와의 관계를 사랑하는 가족에게 밝히고 싶었다. 그리고 니나와 로마로 떠나고 싶었다. 집을 팔기 위해 중개소 직원과도 이야기를 해뒀다. 하지만 달라질 시선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미루고 또 미룬다. 지켜야 할 것이 있는 마도와 달리 미혼인 니나는 언제나 마도를 기다렸다.
드디어 니나와 밝히기로 굳게 약속한 날이 되자, 그녀는 사랑하는 자식들을 초대해 저녁 식사를 준비를 한다. 하지만 정작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고, 중개소 직원한테 집을 팔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를 니나에게 숨겼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부동산 직원과 니나가 만났고,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니나의 실망한 눈초리를 마도는 견디지 못한 채 쓰러진다. 홀로 쓰러진 마도를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사과하러 온 니나였고 니나는 실려 가는 마도를 지켜볼 수도 없었다. 그녀는 마도의 가족도 아니고 말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닌 단순한 이웃집이었다.
마도를 보기 위해 니나는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외부인 니나는 마도의 면회가 불가능했고 아파트 현관 문구멍으로 그녀의 퇴원만을 기다렸다. 복도에서 들리는 여러 사람의 말소리에 부리나케 달려간 니나는 간병인의 등장으로 퇴원 후에도 쉽게 볼 수 없었다. 마도에 대한 자신의 걱정은 이웃집이 표현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고, 니나는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렇게 니나는 간병인 뮤리엘의 신경을 거스르게 한다. 니나는 새벽 사이 문을 몰래 따고 들어가 마도를 봐야 했고, 장 보는 사이 자신이 돌보겠다며 무리한 요청까지, 혹은 필요 이상으로 찾아와 자신을 경계하는 니나는 간병인 뮤리엘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니나는 하다못해 마도를 보기 위해 뮤리엘과 앤 사이에 이간질을 하고 그들을 스토킹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간병인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멀쩡한 차를 때려 부수기도 한다.
끝내 모든 것을 알아챈 앤이 그녀를 호스피스로 마도를 몰래 옮기자, 마도를 잃어버린 니나는 더 과격해진다. 그녀는 그들의 집까지 찾아서 욕을 퍼붓고 돌까지 던져 유리창을 깨버린다. 뒤돌아 돌아가는 니나의 눈에는 단순한 분노인지, 아니면 자신을 부정하는 시선에 느낀 서러움인지 눈물을 멈추지 못한다.
우리 인생에 남은 건 이제 사랑밖에 없잖아
오직 우리, 둘을 바라보는 니나와 마도
마도의 집에는 온전한 가족이었던 흔적이 곳곳에 숨어있다. 남편과의 결혼사진, 앤과 프레드릭의 사진, 남편이 좋아했던 시계, 니나와 20년째 사랑하지만, 집안 어디에도 니나의 흔적은 없다. 아, 딱 하나 욕실의 칫솔 하나가 있다. 그것도 마도와 니나의 것이라 생각도 못 할 만큼 일부분에 불과하다. 떳떳하게 밝힐 수 없는 둘은 표면적으로 사이좋은 이웃으로 살아간다. 일상을 보내고 근처 공원에 산책하며, 가끔 마도의 가족과 어울리고 마도가 용기를 낼 수 있을 때까지 비밀리에 사랑을 속삭인다. 마도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 니나가 자신과의 여행을 위해 남편의 유품인 오래된 시계를 팔아버렸을 때도 딱히 관심이 없었다.
아빠가 얼른 죽기를 기다렸잖아요, 앤과 프레드릭과 모여 저녁 식사 중, 프레드릭이 말한다. 마도의 흔들리는 동공은 프레드릭에게서 떨어질 줄 모른다. 아들은 엄마의 외도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앤은 그를 나무랐고 저녁 식사는 그대로 파투가 난다. 니나는 이런 마도를 사랑하면서도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고 남편이 있고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는 마도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니나는 뇌졸중으로 말을 잃고 거동도 불편한 마도를 위해 어떤 짓이든 할 수 있다. 간병인 뮤리엘이 자신을 어떻게 여기든, 마도의 곁을 한시도 떠날 수 없었고 잘못된 행동을 해서라도 마도로부터 떨어질 수 없었다. 마도가 아니면 자신이 마도의 사랑이라는 것을 증명해 줄 길이 없다. 어떤 일도 집중할 수 없었고, 식사를 위해 요리를 하다가도 옆집의 소리가 들리면 다 태워버리기 일쑤였다. 마도와 다투고 그녀가 쓰러진 이후, 온전한 일상을 보낼 수 없는 니나는 결국 감정을 참지 못했고, 그녀의 가족에게 들킨다.
마도도 마찬가지였다. 불편한 몸으로 새벽에 갑자기 일어나 여행 가방을 싸거나, 살짝 열린 문틈으로 도망가기도 한다. 오로지 니나를 보기 위해 저는 다리를 이끌고 이웃집 문을 부수도록 두드리기도 한다. 아침부터 공사하는 소리가 들려 놀란 니나는 문고리를 교체하는 마도의 집으로 뛰쳐들어간다. 모든 것을 알아차린 앤은 마도의 집을 비웠다. 그리고 니나가 들어올 수 없도록 현관 문고리를 교체한다.
앤이 자신을 호스피스로 옮겼을 때, 마도는 소심한 반항을 하듯 얼굴도 보지 않고 잠만 잤다. 앤이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있던 때, 앨범 중 마도가 니나를 처음 만난 로마 여행 사진을 다 같이 보고 있었다. 때마침 앤의 아들 테오가 이 분은 옆집 돈(니나의 성) 할머니를 닮은 것 같아요라는 한 마디에 딸의 불안은 확신이 됐다. 앤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엄마 옆에서 모든 앨범을 뒤진다. 엄마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고 시선을 피할 뿐이다. 이는 프레드릭에게 전한다. 오랫동안 숨겨온 비밀에 큰 충격에 휩싸이고 앤과 프레드릭은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마침내, 마도를 호스피스에서 탈출시킨 니나는 그 길로 바로 자신들의 보금 자리로 돌아간다. 허나, 니나의 집 또한 도둑이 든 채 엉망이 된다.
그렇게 로마로 떠나기 위해 모아둔 돈은 모두 도둑맞았고 집안의 가구는 부서지거나 소품들은 모두 깨지고 건사한 게 없다. 니나는 뮤리엘에게 비밀리에 약속한 보상금을 주지 않았고, 그녀의 아들이 찾아봐 니나에게 경고했었다. 경고를 무시한 대가를 받은 셈이었다. 단둘이 지어온 니나와 마도의 세계는 모두 엉망이 됐다. 파괴됐고 부서졌다. 엉망이 된 집안에서 추억이 담긴 음악을 들으며 브루스를 추며 끝이 난다.
여전히 젊음을 간직한 우리 둘
영화 <우리, 둘>은 제46회 세자르 영화제에서 총 4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 장편 영화상 부분 중 프랑스 엔트리로 출품됐다. 전 세계 유수 영화제 11개 부문 수상과 22부분 후보에 오른 수작인 이 영화는 단순한 퀴어 영화, 그런 로맨스가 아니다. 예측하기 어려운 인물과 마도와 니나의 감정 중심으로 움직이는 영화 속 모든 미장센이 아주 적절히 섞여 있다. 연륜이 있는 배우이니만큼 안정된 연기와 이를 받쳐주는 전개, 연출의 조화는 적절했고 어찌 보면 상식 밖의 행동에 당황해도 전체를 아우르는 톤이 이를 매만져주어 꾹꾹 눌러 담아 통제할 수 없는 니나의 감정에 개연성을 심는다.
지구상에 우리의 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은 두 사람밖에 없다. 한 명이 부정하는 순간, 지난 20년은 사라질 것이고 이것을 누굴 탓할 수도, 억울함을 토로할 창구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둘만의 비밀에 갇힌 관계는 그녀들의 아파트, 복도를 두고 있는 그녀의 집안을 곧 그들의 지구로 만들고 그것이 그녀들이 사는 세상이다.
우아함과 기품을 동시에 담고, 노년의 나이가 주는 안정감이 스크린을 꽉 채운다. 그들은 강가 옆 공원 벤치에 앉아 침침한 눈을 위해 안경을 끼고 신문을 읽는다. 서로 장을 보러 가고, 서로의 집에서 식사를 차린다. 아주 평범하면서 일상적인 순간을 보낸다. 평범한 일상이 주는 아름다움 속에서 같이 나이를 먹는다. 짙은 화장을 하고 화려한 액세서리를 했던 시절부터, 늘어가는 주름살과 자기도 모르게 찌는 나잇살에도 변함없는 감정은 니나와 마도를 지탱한다.
그런 믿음이 있기에, 서로가 전부인 니나는 선택에 집중했고 목표를 위해 뛰어든다. 돈씨는 결혼 안 해보셨나요? 아직은 맘씨 좋은 이웃으로 남아 마도를 돌보던 니나에게 앤이 했던 질문이다. 우리, 둘은 마도가 울타리 밖으로 뛰어갈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니나와 마도가 언제나 함께 순간을 공유할 수 있음을, 안정된 신뢰가 구축한 세상은 견고하고 절대 무너지지 않는 성벽임을 알려주며, 그 성벽 밖에도 우리는 같이 할 절대적인 관계에 대한 환상을 안겨준다. 영원한 것은 있다는 기약 없는 환상이나 다름없으나 영화를 감상하는 95분 동안 우리는 믿음이 주는 평안을 얻을 수 있다. 이런 나의 감상은 영화 <우리, 둘>에 대해 평가 중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놀라울 정도로 깊게 탐구한 작품"(Globe and Mail)과 가장 비슷하다.
이후 망가진 아파트에서 둘이 벗어났는지, 아니면 정말 로마로 떠났을지, 영화는 말해주지 않는다. 세상에서 우리를 지키기 위해 쌓아온 성벽이 무너져 내렸고 세월이 흘러 늙은 육신으로 마주할 당장도 아무도 모른다. 단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분명히 둘은 한결같은 사랑을 줄 것이고 받을 것이며, 서로에게 상처를 줄지 몰라도 서로를 꼭 붙잡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감독 필리포 메네게티의 첫 데뷔작으로, 나에게 여전히 젊음을 간직한 뜨거운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영화 <우리, 둘>은 오는 7월 28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