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xxsxoxun Oct 26. 2021

매우 탁월한 취향, 홍예진 산문집

문장을 유영하다 


매우 탁월한 취향

홍예진 | 책과 이음 | 256쪽 | 2021년 7월 1일 발행



매우 탁월한 취향이라 하고 홍예진 산문이 부제로 붙어있다. 산문집이라 하면 와닿는 것이 없었는데 전에 기록한 이병률 산문집 <끌림>을 제대로 이해한 순간부터 막연한 호감을 느끼게 됐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다. 산문은  아주 솔직한 언어로 개인의 정서가 녹아있는 글로, 나에게 위로를 준다. 무엇보다 그 과정을 '글'로 접한다는 것이 더욱더 매력적이다. 고정된 이미지 없이 읽는 사람에 따라 같은 글을 읽어도 상상하는 과정이 다르고 작가에 대해 연상하는 이미지가 다르다. 오로지 나의 감상만으로 구축되는 '매우 탁월한 취향'의 세계는 작가의 삶이 담겨 있다. 





수필일 수도 있고 에세이기도 하며, 또 어떻게 보면 일기를 모아둔 것 같은 이 글은 작가 홍예진에게 또 다른 안식처라 생각한다. 여러 이해관계가 버무려진 현실과 다르게 어느 눈치 볼 것 없이 나만의 감정을 토로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각박한 현실에 얼마나 위안일까, 가끔 글로 내 생각을 털어놓을 때, 부정적이거나 지친 마음이 해소되는 그런 기분과 비슷한 결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구조의 밀도와 문장의 성숙도를 통해 견고한 가독성을 구축했으므로 숨겨진 의미는 차치하더라도 빼어나다. '담배 한 개비를 몰래 피우고 난 뒤 체리 한 알을 꺼내 물고 휘파람을 부는 종마 같은 처녀'라든가 '영혼의 사냥터에 과녁을 맞힐 것' 같은 표현을 짓는 작가의 솜씨에 매료된 나는 표지가 너덜거릴 때까지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한 가지 책을 통한 반복 독서가 글쓰기 실력을 향상해 준다는 연구 결과가 옳다면, 내게 그것을 물려준 책은 <숲속의 방>일 것이다.

매우 탁월한 취향 중 19쪽



작가는 경희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과를 전공했고 프랑스 파리에서 무대 미술과를 졸업한 뒤, 아트 디렉터로 활동했으며 대학에서 강의했다. 또한 2014년 단편 <초대받은 사람들>로 외교부 산하 재외 동포 문학 공모에서 대상을 받으며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외 앤솔로지 [소설 뉴욕]에서 단편 <미뉴에트>를 발표하며 2021년 가을, 장편 소설 <소나무 극장> 출간을 앞두고 있다.


작가 이력이 아닌 개인적인 삶에 대해 말하자면, 그녀는 대한민국의 서울과 경기도에서 자랐고, 프랑스 중부, 남부와 파리를 거쳐 미국 유학생인 남편을 만나 미국의 뉴욕, 보스턴, 미시간을 거쳐 코네티컷의 바닷가 마을에서 정착해 살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으로 홍예진 작가의 담백한 문장력과 짜임새 있는 구조가 담긴 <매우 탁월한 취향>은 나의 취향을 정확히 타격했다. 작가의 첫사랑이 된 소설 강석경의 <숲속의 방>처럼 말이다. 아마 나도 여러 번 다시 읽지 않을까 싶다. 이런 책을 발견하는 건, 일상 속에 작은 이벤트 축에 낀다고 본다. 올해 상반기에 발견했던 이 보균 작가의 <존재와 사유>에 이어 하반기에는 홍예진 작가의 <매우 탁월한 취향>으로 뽑을 수 있다.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 리스트에서 단숨에 상위권으로 자리 잡았다. 새로운 책을 소화하느라 급급해, 다시 책을 읽기가 어려운 요즘이지만, 짧게라도 다시 읽어보기 위해 집어보지 않을까 싶다.




사실 작가의 삶은 내가 어릴 적 꿈꿔왔던 삶과 비슷했다. 가난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던 시절에 막연히 나는 미술을 하고! 유학도 한 다음에 외국에서 살 거야!라는 꿈을 갖고 있던 멋모르던 유년기를 떠오르게 했다. 학원에 다니는 것조차 부담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렇게 나에게 미술은 버려졌지만, 그녀의 삶과 비슷한 플로우에 앞뒤 없는 동 겸 심이 아직도 여전하다. 최근 미국으로 일을 구해 떠난 직장 동료에게도 찬사를 보냈다. 그녀는 나에게 당신도 가면 되죠! 하고 멋쩍게 웃으며 답변해 주었는데, 아마도 나의 이런 태도가 상대방에게 실례일 수도 있고 어찌 답변을 해줘야 할지 모르는 그런 감탄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난에 익숙해진 나는 왠지 나에게 절대 주어질 수 없는 선택지 같아 내 삶이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덤으로 이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꿈을 정하고 달려오는 와중에 책까지 출간한 그녀의 인생을 보자니 더 동경할 수밖에 없다. 



"제 느낌인데, 아줌마가 이 동네에서 제일 좋은 분 같아요!"
나는 늘어선 매니큐어 병들을 둘러보고는 보라색과 연두색 두 가지를 고른 뒤 오른손과 왼손에 각기 다른 색을 칠해보고 싶다고 했다. 시드니는 내게 '매우 탁월한 취향'이라고 칭찬해주고는 비장한 태도로 매니큐어 병뚜껑을 비틀어 열었다.

매우 탁월한 취향 중 86쪽



책을 집은 지 삼일 정도 만에 읽을 수 있었다. 때마침 한주가 끝나는 금요일이었고 주말 내내 쉬고 싶다는 생각에 흠뻑 빠져들었다. 주말과 어울리는 책이었다. 별것 아닌 소소한 일상도 이렇게 풀어내는 작가의 관찰력과 문장력이 내가 찾는 것과 비슷했고, 무엇보다 요즘 '문학'에 대한 갈증이 심해진 와중에, 옮김이도 없고 번역 투도 아니며 무엇보다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하는 트렌드나 지식 서적도 아닌 남의 일상을 읽자니 한결 가벼웠고 취미란에 적는 독서를 진정으로 행하는 기분이었다. 일상 속 작가가 현실에서 내비칠 수 없었던 감정과 사상에 대한 솔직함도 마음에 들었다. 막연히 동경하는 그런 플로우 속에서 인간다움을 느낄 수 있었고 작가가 담담히 서술한 일상 속 이슈들을 보며 사람 사는 거 세상 다 똑같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책 표지의 일러스트의 의미도 깨달을 수 있었다. 마치 물속으로 다이빙을 하는 듯한 뜀 자세 같기도 하고 혹은 물속을 유영하는 자세 같기도 하다. 작가의 문장과 소재가 이를 닮았다.


상투적이게도, 글이 나를 구원했다. 실은 세상의 표준처럼 보이기 위해 예민한 기질을 감추려고 무진 노력하고 있었는데, 글을 쓸 때만큼은 그러지 않아도 되니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상념을 마음껏 놀게 내버려 두고 그것을 언어로 스케치하는 과정에서 나는 나에게 점수를 줄 수 있게 됐다. 무수히 뻗어 나오는 잔가지들이 오롯이 내 방식의 문장이 되는 걸 지켜보면서, 이전에는 대접해주지 못했던 내 성향과 화해하게 되었다.

매우 탁월한 취향 중 255쪽



본문도 본문이지만 글을 시작하기 전, 작가의 말과 에필로그가 제일 와닿는다. 그중 에필로그답게 이 책의 주제를 담는 것처럼 <매우 탁월한 취향>의 테두리를 담당하듯이 책의 마무리에서 많은 공감을 불러올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세상의 표준처럼 보이기 위해 예민한 기질을 감추려고 노력하고 있을까? 나 또한 세상의 표준과 거리감을 가졌는지라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매우 힘들어하는데, 그래서 더욱이 책의 솔직함과 일상에 마음이 쏠리지 않았나 싶다.


본질은 예민한데 그걸 전달하는 기관이 일을 제대로 못 하는지 아무렇지 않은 것 같다. 결국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데, 그 당시엔 내가 어떤지 정말 감각이 정지한 듯 느끼지 못한다. 어느 날 돌이켜보면 상처로 남아 머릿속에 맴돈다던가, 아니면 이렇게 글로 풀어내다가 발견한다던가, 아니면 그 자리에서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다른 헛소리를 하여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던가 등,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하면서도 남들처럼 보이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다. 하지만 이미 내 몸과 마음은 고장 났는지 남들보다 현저히 낮은 마지노선을 넘어가면 고장 난 듯이 뚝딱거린다. 그래서 글을 선호한다. 적어도 생각할 틈은 주니까.


덕분에 정서가 건강해진 기분이다. 남의 일상을 이렇게 깊게 파고들어 읽어보니, 진심을 담은 정서적 교류를 담은 기분이다. 이래저래 각 재고 서로를 탐색하거나 혹은 겉핥기 식으로 대하는 그런 교류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글로 만나 천천히 교감하는 것 같다. 덕지덕지 늘어나는 인덱스 포스트잇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나라는 인간은 이 정도 청량감에도 금세 다시 집을 사랑하게 된다. 사실 그것이 여행과 일탈의 본질이니까. 나를 감싼 테두리에 감사하기 위해 떠나는 것. 흔들리는 기차, 어둑해져 가는 하늘, 기분 좋은 피로, 하루의 일탈만으로도 집이 다시 좋아지는 나의 얄팍함까지, 전부 마음에 들었던 토요일이었다.

매우 탁월한 취향 중 179쪽



그런 의미에서 <매우 탁월한 취향>은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작가는 우리와 똑같은 하루를 보내며 글을 쓴다. 예술적 감각이 있어 애초에 미술을 전공하였지만, 특별한 하루하루를 보낸다기보단 정말 일상적인 시간을 보내는 사람 중 하나다. 같은 일상 속에서 섬세하고 담백하며, 또 우아한 문학 작품을 만들어 냈다. 이런 글이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작품을 소화하고 또 직접 손으로 써 내렸을지 궁금하다. 가끔 잠들기 전에 그날 하루를 되돌아보는 글을 써볼 때가 있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회사에서 소비하다 보니 적을 일이 없어 얼마 안 가 그만뒀다. 생각하기 싫기도 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생각하기 싫을지라도 똑같은 일상을 어떻게 대하고 기록할지에 대한 태도에 관해서 말이다. 그런 의미로 글을 다시 써보려고 한다. 이 글도 카페인 과다복용으로 두통을 호소하는 지금, 일요일 저녁에 순식간에 써 내려갔다.



침대에 누운 채로, 육신의 눈으로는 창 너머를 바라보면서 마음의 눈으로 내 감정을 응시해본다. 어느덧 머릿속에서 굴러다니는 것들이 생겨난다. 소설의 원료들 그것들을 따라가 보니 길 끝에 그 여자의 재봉틀 소리가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매우 탁월한 취향 중 76쪽







작가의 이전글 엄마에게 사랑이 아닌 상처를 받은 너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