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경'의 <다시 사랑한다면>(2001년)
2023년 02월 24일 [인천In] '음악가 이권형의 인천인가요' 기고
시간을 되돌려 어떤 기억 속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기억을 택하시겠어요. 이건 우리 삶의 후회가 만연한 만큼 뻔하다 싶을 정도로 흔한 주제이죠. 누구든 아프고 후회되는, 그래서 강렬하게 남아버린 기억이 있을 겁니다. 그 순간이 반복된다면 그땐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강렬한 사랑의 경험은 과격하기까지 해서 경우에 따라 외상(Trauma)에 가까운 기억으로 남아버리기도 하죠. ‘너무 깊은 사랑’은 ‘아픔’을 동반하고, ‘Crush’라는 영단어가 물리적 충돌로 부수고 으깨는 이미지를 가리키는 동시에 강렬한 사랑이란 뜻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겁니다. 그러한 경험은 차라리 정말 사고에 가까운지도 모르겠어요.
아픈 ‘지난 날을 회상하며’ 곱씹게 된다는 건 얼핏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예요. 고통을 되새기는 처연한 반복인 거죠. 하지만 사고가 나면 전보다 주변을 살피게 되듯, 위험했던 기억을 되새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생존의 이치인지도 모릅니다. 무의식은 그러한 기억을 거울삼아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라는 반면교사의 신호로 삼길 바라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아픈 기억은 중독성이 있습니다. 곱씹게 되죠. ‘버려도 되는 가벼운 추억’ 같은 건 사실 잊히기 쉬운 법입니다. 기억을 지배하는 건 ‘강렬하고’, ‘애절’하고, ‘위험’한 경험이죠. 타오르는 불길을 볼 때 마음에 뒤섞이는 공포와 환희의 덩어리가 그렇듯이, 부서지고, 기이하고, 더럽고, 때론 고통스럽기까지 한 경험이 외상으로 남아 기억되기 쉬운 셈입니다. 마치 극의 구조 안에서 클라이맥스로 배치된 사건처럼 강렬한, 그 순간만 반복해서 느끼고 싶을 정도의 카타르시스처럼.
그러니까, 삶이 마치 연극인 듯, 강렬한 기억은 반복됩니다. 이때, 강렬한 기억은 이 극의 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거죠. 급기야 그때의 아픈 기억을 클라이맥스로 끝없이 실연하기 위한 굴레를 만들어낼 겁니다. 애석하게도 삶은 연극이 아니고, 당연히 같은 경험을 다시 겪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데도요.
그래서 아픔으로 남아버린 기억을 어떻게 해석해가느냐는 정말 중요한 문제인 겁니다. 과거의 아픔이 현실에 그대로 고개를 든다면 현실은 하릴없는 비극으로 쓰여질 테니까요.
후회스러운 선택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고통스럽고, 억울하고, 그럼에도 (역설적이게도) 그 기억이 너무 아름다워 놓아주기 어려울 때도 있어요. 기억을 통째로 지워버릴 순 없는 노릇이지만, 범람하는 기억을 자신의 방식으로 담아 나아가려는 의지는 항상 존재해왔습니다. 세상에 남아있는 다양한 장르와 이야기들이 주는 강렬함과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면, 그건 그것이 기억을 다루기 위해 투쟁해 온 수많은 의지가 극적으로 승화된 산물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시, 강렬했던 그때 그 순간이 반복된다면 그땐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그때의 절정이 어떤 종류의 것이었든 간에, 그 기억과 싸우는 과정이 얼마나 외롭고 힘겨웠든 간에, 그 끝엔 지혜롭고 아름다운 삶의 의지가 빛나고 있길.
“그대와 나의 사랑은
너무나 강렬하고도 애절했으며 그리고 위험했다
그것은 마치 서로에게 다가설수록 상처를 입히는 선인장과도 같았다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조금 덜 만나고 조금 덜 기대하며
많은 약속 않기로 해요
다시 이별이 와도 서로 큰 아픔 없이
돌아설 수 있을 만큼
버려도 되는 가벼운 추억만
서로의 가슴에 만들기로 해요
이젠 알아요 너무 깊은 사랑은
외려 슬픈 마지막을 가져 온다는 걸
그대여 빌게요 다음 번의 사랑은
우리 같지 않길 부디 아픔이 없이
꼭 나보다 더 행복해져야만 해
많은 시간이 흘러 서로 잊고 지내도
지난 날을 회상하며
그때도 이건 사랑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죠
이젠 알아요 너무 깊은 사랑은
외려 슬픈 마지막을 가져 온다는 걸
그대여 빌게요 다음 번의 사랑은
우리 같지 않길 부디 아픔이 없이
이젠 알아요 영원할 줄 알았던
그대와의 사랑마저 날 속였다는 게
그보다 슬픈 건 나 없이 그대가
행복하게 지낼 먼 훗날의 모습
내 마음을 하늘만은 알기를”
- ‘도원경’ <다시 사랑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