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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권형 Jun 23. 2023

원주 아카데미 극장 철거에 반대한다.

‘크라잉넛’의 <좋지 아니한가>(2007년)

2023년 04월 28일 [인천In] '음악가 이권형의 인천인가요' 기고


 1963년, 강원도 원주에 개관한 ‘아카데미 극장’은 2005년 멀티플렉스 극장 개관 이후 영업을 중단한 이래 15년간 방치되어 있었다 합니다. 그러다 2016년부터 시작된 ‘아카데미 극장 보존사업’의 흐름 속에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 활동을 통해 원주시의 극장 부지 매입까지 이끌었죠. 이후 2022년 10월엔 문화체육관광부 ‘유휴공간 문화재생사업’에 선정되어 극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생하기 위한 국비도 확보되어 있었습니다.


 지난 주말엔 아카데미 극장을 직접 보기 위해 원주에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극장의 내부는 볼 수가 없었는데, ‘구조안전 위험시설물 알림’ 현수막과 함께 극장 입구가 막혀있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작년 민선 8기 원주시정이 새로 출범하면서 그동안의 사업 과정을 뒤집고 아카데미 극장 보존사업에 대해 재검토로 입장을 바꾸며 내려진 조치라고 합니다.


닫혀있는 원주 ‘아카데미 극장’의 입구와 극장 철거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피켓


 이윽고, 원주시는 지난 4월 11일엔 극장을 철거하고 스무 칸 남짓한 주차장을 세우겠단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원강수 원주시장이 4월 10일 아카데미 극장 철거에 반대하는 시민 모임인 ‘아카데미와 친구들’과 면담을 가진지 하루 만의 일이었으며, 이는 최근 공개된 원주시청 공무원 내부고발 의견서에 의해 4월 7일에 이미 내부적으로 수립해놓은 계획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저 새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경제적 가치가 없다는 논리로 오랜 기간 이어진 시민 활동의 과정과 상징성을 하루아침에 무시하는 행정권 남용 행태를 목격하는 게 하루이틀인 것 같진 않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누군가는 각자의 소중한 가치를 위해 싸우곤 했습니다. 작년에 20년 만의 재착공 소식이라며 난리였던, 마을을 무자비하게 갈라놓는 구도로 수립된 배다리 도로계획에 맞서 15년간 이어진 인천 동구 배다리 마을 주민들의 ‘배다리 관통도로 반대 운동’ 또한 그랬죠.


 삶을 전쟁에 비유하곤 합니다. 지금도 어느 산길에선 골프장을 짓기 위해 “나무가 사라”지고, 바다는 본연의 주인을 잃어갑니다.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는 이를 지키기 위해 싸웁니다. 그저 살기 위해, 때론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만 한다는 현실의 모순이 진저리날 때면 실제 삶이 하나의 거대한 투쟁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추운 겨울 천막 농성까지 해가며 관통도로 계획에 반대했던 배다리 주민들이 마주했던 것도, 현재도 아카데미 극장 철거를 막기 위해 분투 중인 원주 시민들이 마주하는 현실도 그런 삶의 진저리 나는 투쟁의 한 장면일 뿐인 걸까요.


 지난날 배다리 마을이 지켜온 풍경 속에서 삶을 얘기하고, 실수하고, 노래하고, 환대받으며 성장해 온 기억들을 떠올립니다. 절판되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아벨서점에서 만난 헌책들 속에서 오랜 지혜와 대면하며, 배다리 주민들이 지키려 했던 가치란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지난 15년간 배다리 관통도로 반대 투쟁과 함께해 온 ‘배다리 아벨서점’ 곽현숙 대표는 작년 배다리 관통도로 재착공 소식에 그간의 회한을 털어놓으며 이렇게 적었습니다. “전국으로, 세계로 퍼져나간 배다리 사람들은 몇 년, 몇 십년 만에라도 배다리 책방 문을 들어서며 긴 평화의 숨을 쉰다.”


 5월 25일까지 열리는 원주시의회 임시회에서 아카데미 극장 철거 예산안을 포함하는 추경 예산안 심의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아카데미 극장 철거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바보같이 지난날들”이라 비아냥댈 수도 있을 겁니다. 이 모든 과정이 “부질없이 지난날들”로 추억될 수도 있을 거예요. 이 싸움의 끝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떠한 결론이 됐든, 그것이 허무하게 “싸워 이긴” 승리가 아니라, 삶의 유려함 속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지키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기억할 수 있길 바랍니다.


 또한, 수년간 이어져 온 시민 활동의 과정을 무시하고 행정권을 남용하는 원주시 행정 행태에 유감을 느끼며, 원주 아카데미 극장 철거에 반대합니다. 원주시는 지금이라도 시민들의 의견을 책임 있게 수렴하여 현명한 시정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 원주시는 수십 년 도시의 역사와 가치를 상징하는 아카데미 극장을,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의 의지를 결국 파괴하려 합니까?


2007년 개봉한 영화 ‘좋지 아니한가’ OST 표지

“나무가 사라져간 산길

주인 없는 바다

그래도 좋지 아니한가

내 마음대로 되는 세상

밤이 오면 싸워왔던 기억

일기를 쓸 만한 노트와

연필이 생기지 않았나

내 마음대로 그린 세상

우린 노래해 더 나아질 거야

우린 추억해 부질없이 지난날들

바보같이 지난날들

그래도 너는 좋지 아니한가

바람에 흐를 세월 속에

우리 같이 있지 않나

이렇게 우린 웃기지 않는가

울고 있었다면 다시 만날 수 없는

세상에 우린 태어났으니까

저 푸른 하늘 구름 위에

독수리 높이 날고

카우보이 세상을 삼키려 하고

총성은 이어지네

TV 속에 싸워 이긴 전사

일기 쓰고 있는 나의 천사

도화지에 그려질 모습

그녀가 그려갈 세상

우린 노래해 더 나아질 거야

우린 추억해 부질없이 지난날들

바보같이 지난날들

그래도 우린 좋지 아니한가

강물에 넘칠 눈물 속에

우리 같이 있지 않나

이렇게 우린 웃기지 않는가

울고 있었다면 다시 만날 수 없는

세상이 멋지지 않았는가

우린 노래해 더 나아질 거야

우린 추억해 부질없이 지난날들

바보같이 지난날들

그래도 너는 좋지 아니한가

바람에 흐를 세월 속에

우리 같이 있지 않나

이렇게 우린 웃기지 않는가

울고 있었다면 다시 만날 수 없는

세상에 우린 태어났으니까

좋지 아니한가

바람에 흐를 세월 속에

우리 같이 있지 않나

이렇게 우린 웃기지 않는가

울고 있었다면 다시 만날 수 없는

세상에 우린 어디 있겠는가”

- ‘크라잉넛’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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