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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격하는지혜 Feb 17. 2024

해부된 추락의 진실;다니엘은 눈이 없되 본다

쥐스틴 트리에, ‘추락의 해부’

‘추락의 해부’, ‘anatomy of a fall’이라니. 근래 본 영화 중 가장 완벽한 제목이다.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영화 그 자체를 담고 있기 때문.


어느날 닥친 남편 사뮈엘의 추락사에 용의자로 몰려 법정에 서게 되는 여자 산드라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직관적으로도 그러하고, 이 과정에서 사뮈엘이 추락,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즉 그들 가족의 역사를 아주 적나라하게 ‘해부’하여 펼쳐 놓으니 더욱 그러하다.


영화 ‘추락의 해부’ 스틸컷


하지만 이 ‘해부’의 작업 중심에는 사뮈엘과 산드라의 아들 다니엘이 있다. 어릴 적 사고로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아이, 하필이면 아빠의 죽음을 제일 먼저 발견하는 것도 다니엘이다. 안내견 역할을 하는 강아지 스눕과 함께.

엄마의 유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치러지는 재판의 과정에서 다니엘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보지 못했던 엄마와 아빠 사이의 격정적인 갈등을 모두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갈등의 중심에는 다름 아닌 자신의 보이지 않는 눈이 놓였다는 것 또한 깨닫는다.

영화 ‘추락의 해부’ 스틸컷


판사는 다니엘의 마음을 고려해 재판에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나, 다니엘은 진실을 직시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이 마음을 오롯이 받은 잔혹한 현실은, 아이에게 이야기의 결말을 맡긴다. 엄마의 유죄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증언을 하게끔 이끌어간 것.

흥미로운 지점은 이 모든 과정에서 아빠 사뮈엘의 목소리는 녹음된 것을 바탕으로 한 회상 장면을 제외하고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음성마저 다니엘의 기억에 의해 되살려져, 다니엘의 목소리로 들려온다. 다시 말해 사뮈엘의 삶을 해부하고 있지만 어디에도 그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추락의 해부’에서 내가 손꼽는 장면은 모두 다니엘과 관련되어 있다.

#1. 앞서 소개한, 보이지 않는 눈으로 힘겨운 진실을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장면.

#2. 자신의 곁에서 상담사와 비슷한 역할을 해주던 법무부 여직원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인데, 엄마가 유죄인지 무죄인지 어느 쪽도 확신할 수 없다는 다니엘에게 여자는 그럴 땐 한쪽을 믿기로 결정하면 된다고 말한다. “확신과 결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야.” 확신이 있어 믿는 게 아니라 믿겠다고 결정해 보라는 것.

#3. 법정에 선 다니엘이, 자신이 믿기로 결정한 방향의 근거가 되는 아빠와의 기억을 되짚는 모습이다. 지금도 마음이 먹먹하다.

영화 ‘추락의 해부’ 스틸컷


재판 내내 산드라는 말한다. 파편에 불과한 일부의 사실들로 전체를 파악하려 한다고. 다니엘은 말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면 ‘어떻게’가 아닌 ‘왜’에 의문을 품어야죠.”

육체를 샅샅이 해부한다고 해서 육체의 주인이 살아온 인생의 깊숙한 곳까지, 그 마음까지 들여다볼 수 없는 것처럼, 본질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논리나 철학은, 아무리 뛰어나도 진실의 실체에 다가설 수 없다. 결국 앞이 보이지 않는 다니엘만이 진실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결말이 이를 시사하는 게 아닐지.

어른들은 이기고 지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산드라조차 남편을 죽인 괴물로 낙인이 찍힐지, 혐의를 벗을 지에만 집중했다. 남편 다니엘의 마음엔 끝끝내 다다르지 못한 채 그와 닮은 강아지 스눕만 꼭 끌어안고 있을 뿐이다.

영화 ’추락의 해부‘ 스틸컷


추락의 해부,

해부는 추락의 진실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Oculos non habet, et videt(그녀는 눈이 없되 본다), 소설 ‘웃는 남자’의 한 대목이다. 입이 찢어진 주인공 그윈플렌의 얼굴은 지구상에서 단 한 명의 여자만 볼 수 있었다. 데아, 앞이 보이지 않는 그녀만이 그윈플렌의 흉측한 얼굴 이면의 아름다운 마음을, 영혼을 보고 있었으니까. 앞이 보이지 않는 다니엘만이 아빠 사뮈엘의 마음을 보았던 것처럼.


이제 우리 차례다.

우리가 보았고 본, 보고 있는 진실은 무엇인가. 살아있는 산드라의 진실을 파악하는 데에도 우리는 우리의 시선을 현혹하는 수많은 자극적인 파편들과 마주해야 한다. 어떻게 해도 그 실체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다니엘의 말을 기억하자. “‘어떻게’가 아닌 ‘왜’에 의문을 품어야죠.”


영화 ‘추락의 해부’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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