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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람 Feb 19. 2024

나는 쉬고 있는 전공의 입니다

근무중단 D-2

나는 성형외과 전공의이다.

인턴때 한 번 전공의 파업을 경험 했었고 당시에는 환자를 위하는 정의로운 마음이 가득한 열정적인 의사였어서 허무하게 무산된 의기투합에 파업 후 많이 소심해지기도 했고 상처 받은 마음을 치유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후 여러 해가 지나고 또 다시 비슷한 상황을 맞이했지만 갑자기 시작된 블랙아웃과 정확한 로드맵 없이 시작된 행동이라 불안한 마음이 그때 보다도 더 크다.

의국장이 된지 3달 밖에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를 비롯한 1, 2년차 선생님도 사직서를 쓰기로 한 상황에 4년차 선생님만 일하시게 두고 나가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특히 전임의도 없는 우리 의국 사정과 정년을 앞둔 교수님과 과장님만 남기고 나간다는 것이 매우 염려스럽고 내일 교수님들께 직접적으로 업무 인계를 드려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부담스럽다.


죄송스런 마음에 오늘 아침 휴가를 떠나신 교수님을 포함하여 세분께 장문의 카톡을 보냈지만 따로 답변을 주신 분은 없었다. 한시간 동안 고민하여 여러차례 탈고한 글이지만 혹시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문구가 있었을까 조심스럽다.


아래는 교수님들께 오전에 보낸 글이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ㅇㅇㅇㅇ병원 의국장 김ㅇㅇ 입니다.

익일 오전에 컨퍼런스 끝나고 말씀드리려 하였으나 현재 부득이 하게 자리에 없는 교수님도 계셔,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카톡으로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교수님들께 유선 상이나, 직접 말씀드린대로 19(월)일 까지 근무, 20(화)일 오전 6시 부터 근무 중단 예정입니다.

2 주간 입원 환자 및 외래 수술 환자들 진료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약속 처방 정리해두었고, 주말동안 모든 전공의들이 동의서, 입원 초진 기록 임시로 미리 작성하고 있습니다. 수술 스케줄 또한 1달간 넣어 놓은 상태입니다.  

기간이 얼마나 지속될 지 현재로는 알 수 없으나, 혹시 2주 이후에도 지속되어 교수님들 업무에 지장이 미칠 시, 저는 병원 근처에 상주할 예정으로 언제든지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또한 저희가 준비한 것들이 부족할 수도 있어 월요일에 더 원하시는 사항이 있을시 꼭 편하게 말씀 주시길 바랍니다.


사직서를 쓰고 나가는 이 행동이 단순히 의사 정원을 2000명 늘리는 것에 반대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의료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필수 의료 패키지에 반대하며, 전공의들의 업무개선 및 한국의 의료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보다 훨씬 힘든 환경에서 일하셨던 교수님들께 말씀드리기는 부끄럽지만, 저는 저년차 친구들 뿐만 아니라 예비1년차가 될 전공의들이 저보다는 좀 더 개선된 환경에서 환자를 위해 일할 수 있기를 원하며, 이는 단순히 의사의 인원을 늘리는 것으로 해소되지 않을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직서는 모두 수련교육부 메일로 전달할 예정이며 익일 오전 일찍 수련교육부에 서면으로 제출할 예정입니다.


ㅇㅇㅇㅇ병원 교수님들께서 전공의들 업무에 부담을 지우지 않도록 불필요한 일은 시키지 않으시고 저년차들에게 특히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신경 써주시는 점은 저희 병원 티오 뿐만 아니라 타 티오 선생님께도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3년간 ㅇㅇㅇㅇ병원에서 근무하며 저는 교수님들이 너무 자랑스러웠고 ㅇㅇㅇㅇ병원 티오로 근무하게 되어 매우 영광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3달이 되지 않은 짧은 시간 의국장으로 일하고 이렇게 부끄럽게도 교수님들의 업무에 큰 부담을 지우게 되어 무척 송구스러우며, 더 일찍 말씀드리고 준비하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세 분 모두 쉬게 되었다고 말씀드렸을 때 노여워 하지 않으시고 수용해 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교수님들 업무에 지장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일하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ㅇㅇㅇㅇ병원 3년차 ㅇㅇㅇ 올림“


3년간 전공의 생활을 하며 특히 저년차때는 같은 과 동기들도 왜 나가거나 신고하지 않았냐고 인정할만큼 힘든 전공의 생활을 보냈다. 우울증약을 먹기도 했고 가끔은 시니어 선생님을 무의식적으로 공격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적도 있었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 하는 일화들이지만 그때는 정말 말그대로 죽고 싶었다.


오늘도 업무정리를 위해 잠시 출근했는데 내과, 외과 선생님들이 근무중단 후 교수님들의 과한 로딩을 덜어드리기 위해 출근한 모습을 보고 짠한 마음이 들었다. 주말 동안만 도와드리기로 했다고 하지만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도서관에 가니 당직인것으로 보이는 외과 전임의 선생님이 공부를 하고 계셨다. 이사람들은 쉬는 시간 없이 정말 열심히 사는 구나. 우리가 이렇게 쉴틈없이 몸을 죽이며 일하고 있다는 걸 병원 밖의 사람들은, 병원 안의 환자들은 알고 있을까?


전공의의 삶에 힘듦에 대해서는 논하기가 끝이 없지만 이 부조리함이 과연 2천명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근무중단만이 답이 아니고 정부와의 대화 뿐만 아니고 의사 사회 내부에서도 분명 한번 정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되지만, 일단 나의 여러 생각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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