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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람 Feb 21. 2024

저는 환자가 있어 존재하는 사람 입니다.

근무 중단 D+1

일을 쉬고나니 이제서야 시간이 나서 드디어 노트북을 고쳤다.

작년 8월 휴가 때 갑자기 논문 초록을 제출하라는 시니어 선생님의 오더가 생겨, 허겁지겁 대만에 노트북을 가져 갔다 충전기가 꽂혀 있는 상태로 침대에서 떨어져 충전기 단자가 박혀있는 상태로 분리가 되었다. 그 뒤로 8개월을 노트북을 고칠 시간이 없어 방치해뒀는데 근무 중단을 하고 나서야 평일에 시간이 나서 드디어 서비스센터를 방문할 수 있었다. 수리기사님은 매우 친절하셨고 꼼꼼히 노트북을 봐주셨다. 안타깝게도 10년이 넘은 모델이라 충전 케이블 단자가 더이상 생산이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통장 잔고는 50만원, 앞으로 근무중단은 얼마나 지속될지 모른다.


"제가 지금 돈이 없어서 노트북을 구매할 수는 없는데요.. 방법이 없을까요?"

"찾아보니 그래도 그 케이블 단자가 저한테 있어서 교체해드릴게요. 수리 비용에는 이 단자 비용은 포함하지 않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너무 오래 노트북을 사용하지 않으셔서 밧데리가 방전되었을수도 있어요. 2시간 동안 충전해보고 이상없는지 확인해보고 가세요."


밖에 나가면 다 돈이라 나가기는 머뭇거려졌고 서비스센터에서 기다리는 2시간 동안 컴퓨터를 보며 이런 저런 웹페이지 기사를 어쩔 수 없게 마주하게 되었다.


'환자를 버린 의사들', '돈밖에 모르는 의사들', '자기들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2천명 인원 증대를 반대한다...'.


댓글을 보면서 2020년도의 나보다는 험난한 전공의 생활을 겪고 마음이 많이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쏟아지는 비난을 보니 여전히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환자를 버린 의사인가?


3월 첫 한달은 일주일에 2시간만 잘 수 있었다. 간신히 일에 조금씩 익숙해 지면서 하루에 3시간 자고 내내 병원에 있다가 토요일 오전 11시에 나와 미친듯이 잠을 자고 다시 일요일 오전 5시에 출근하는 생활을 2개월 동안 지속하고 5월이 되었을 때, 드디어 휴가를 나왔다. 7일 동안 잠만 잤고, 돌아가는 날에도 죽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죽을 거 같다기 보단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정말 이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 지 고민의 기로에 놓였다.


일을 그만 두지 못했던 건 환자들 때문이었다. 씻지 못하고 밥도 못챙겨 먹는 나를 위해 피자를 갖다주는 분도 있었고, 한 보호자는 거의 매일 내 저녁을 챙겨 주셨다. 어떤 분은 잠깐 환자 상태를 보러 방문 했었는데, "선생님 많이 힘드시죠? 제가 선생님을 위해 기도해 드릴게요." 하고 내 두 손을 잡으셨다.


"주님, 김ㅇㅇ 선생님이 정말 힘든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도 적혀 있듯 하나님은 가장 큰 선물을 고난 속에 보내주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 시간을 견디고 참으면 그 뒤에 얼마나 더 큰 은헤를 주실지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이 시간을 잘 견딜 수 있게 도와 주시길 바랍니다."


기도를 듣고 펑펑 울며 두손으로 눈물을 훔지다가 응급실 환자가 호출이 와서 후다닥 병실을 나갔던 기억이 난다. 우는 시간도 오래 허락되지 않는 1년차 였다. 나를 위해 울산에서 올라와 병원 근처에 머물던 아버지는 환자를 위해 일하는 의사가 되어야지 의사가 환자에게 위로를 받으면 어떡하냐고 타박하셨다. 부끄럽지만 나한테는 그 자리에 머물러 버티는 것조차 힘든 상태 였기 때문에 그런 기도와 식사, 그리고 관심이 너무 큰 위로가 되었다.


우리 과는 1년차가 매일 모든 환자의 수술부위 또는 상처 소독을 해줘야 하고, 한 환자 소독에 짧으면 5분 창상이 크거나 많은 경우 길면 30분까지도 걸린다. 당시 입원 환자 수는 적으면 10명 많으면 30명 까지 있었고 오전 5시에는 일어나 소독을 시작해야 컨퍼런스 준비 7시 전까지 소독 치료가 완료 되었다. 고민의 결론은 '내가 나가면 이 많은 환자들 소독은 누가 해주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2달을 더 버텼다.

 

전공의들이 모여 일하는 컴퓨터 방에서 환자 처방을 하던 중 "야." 하고 날 부르는 익숙한 소리가 들려 돌아 보니 인턴 때 정말 많이 의지하고 도움 주셨던 외과 전공의 선생님이 계셨다. 외과를 돌았던 모든 인턴 선생님들 저녁을 챙겨서 사주시고, 인턴들에게 어시스트를 서기에 너무 어려운 수술인 경우에는 당직이 아니심에도 수술에 들어가던 분이었다. 전공의 고년차가 되면 꼭 저 선생님 처럼 되어야지, 라고 생각하게 했던 분이다. 선생님 얼굴을 보자마자 정말 '주르륵' 하고 눈물이 흘렀다. 선생님은 당황해서 "너 왜그래?"라고 하셨는데, 그날도 정수기 앞에서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너무 외롭던 시간에 큰 힘이 되주던 사람이 나타나니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놀라서 나를 다독이던 선생님은 자초지종을 물어보셨고, 과다한 업무와 피로 누적으로 너무 포기하고 싶은데 환자들 때문에 나가지 못하겠다고 말씀드리니 자기 경험을 말씀해주셨다.


"나도 정말 나가고 싶었거든.. 내가 회식 때 교수님께 정말 못하겠다 나가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충분히 이해 한다고 나갔다 오라고 하시더라고.. 근데 그 때 중환자실에 vent 하고 있던 외과 환자가 7명 이었어. 나 내일 바로 사라지면 이 사람들 vent 는 누가 봐.. 교수님들이 본다고 하더라도 다들 서울에 있는 집으로 퇴근하시면 제대로 환자 보시겠니.. 그냥 꾹 참고 며칠 더 버티니까 벌써 4년차 됬다."


*vent : 기관 삽관 - 환자가 기관 삽관 하고 있다는 뜻한 자가 호흡이 불가능한 환자로 vital sign이 불안정하고 위험한 환자라는 뜻.


생명을 다루는 vital 과만이 할 수 있는 고민이었고 선생님의 그 고민과 오랜 힘든 시간이 느껴져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환자를 위하던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2020 파업에 앞장 서셨는데, 의대 정원을 늘리는게 전혀 vital 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외과 졸국 후, 잠시 전임의로 근무하시다가 결국 수술방에 남지 않으셨고, 현재 응급실에 외과 전담의로 근무하고 계신다. 선생님께 수술하지 않고 입원 환자 보지 않는게 아쉽지 않냐고 여쭤보니, "아니. 나 수술방 안 들어가서 너무 행복해. 수술하고 죽을지 살지 모르는 환자들 보는 게 얼마나 힘든데. 이제 그냥 응급실로 온 환자들 잠깐만 보고 입원 필요하면 입원 시켜서 다른 교수님들한테 넘기고, 수술 필요하면 수술방 올리고, 책임 질 필요 없어서 너무 마음이 편해."


결국 vital 을 보던 의사들도 전공의 과정이 끝나면 대학병원을 떠난다. 외과의 경우 응급 수술 없는 세부과를 고르거나 내과의 경우도 응급으로 시술을 해야하는 과는 인기가 없다. 너무 그 삶이 고달프고 현재의 삶을 희생해야하기 때문이다.


환자가 죽으면 우리나라는 모두 그 책임을 의사에게 돌린다. 2년차 때 같은 방을 쓰면서 나에게 외과 tie 를 가르쳐 주시기도 하며, 정말 친해진 외과 선생님이 있다. 반갑게도 같은 병원에서 다시 그 선생님을 뵙게 되어 주말에 저녁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는데 선생님은 지금 환자의 죽음으로 의료분쟁에 휩쓸린 상태셨다. 80이 훨씬 넘은 고령의 환자에게 복부대동맥류 수술을 시행하게 되었고 환자의 혈관 상태는 나무조각처럼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수술 후 DIC 에 빠져, 이에 대해 필요한 처치들을 모두 시행하였음에도, 결국, 환자가 죽었기 때문에 기소가 된 것이다. 자주 돌아오는 당직과 응급수술로 바쁜 주니어 의사들은 그 와중에도 의료 분쟁의 위험에 노출되어있다. 저녁 식사 후, 선생님은 그날 당직이 아니셨음에도, 일요일 입원 환자 회진을 위해서 병원에서 주무셨다.


환자가 없으면 의사도 없다. 의대를 다닐 때 존경하는 선배님이 말씀하셨던 말이다. 환자를 돕겠다는 순수한 마음이 가득했던 그 때, 내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던 문장이었다. 우리 모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부담이 너무 커서 의사들은 최대한 환자를 보지 않는 과로, 환자의 죽음을 목도하지 않는 과를 선택한다. 일반 회사를 다니면 내가 하는 일로 인해 누군가가 죽는 일을 목도하는 경우는 없다. 또한 횡령이나 배임을 하지 않은 한 내가 하는 업무로 인해 경찰 조사를 받을 일도 흔치 않다. 내가 하는 업무로 인해 누군가가 죽거나 경찰 조사를 받는다면 그 회사를 다니려고 할까? 과연 의대 정원이 2천명이 늘어난다고 그 사람들이 이 일을 하고자 할까? 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되고 싶었던 모습의 외과 선생님처럼 결국 일을 그만두고 좀더 편한 일을 찾게 되지 않을까. 위의 전임의 선생님도 정말 수술을 좋아하고 배우는 것을 즐거워 하시는 분인데 올 1년만 더 근무하고 대학병원은 그만 둘 생각이라고 하셨다.


내 존재는 환자를 위해 있다. 나는 내가 돌보았던 환자들을 위해 그리고 나를 돌보아줬던 환자들을 위해 계속 일하고 싶다. 그러나 환자들을 위해 일했던 의사들에게 돌아오는 리스크가 너무 큰 현실을 자주 목도한다. 분명 필수과에 인원이 부족한 것은 맞다. 지원자가 그만큼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지원자를 늘리는 방법이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으로 해소가 될까? 너무 쉽게 의사들이 기소 당하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이 상황이 해결 되어야 그 들이 그 과를 지원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근무 중단을 하고나서야 환자를 위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을 지 모색하는 시간이 생긴 것이 슬프고 또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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