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람람 Apr 24. 2024

소통(疏通)

근무 중단 D + 64

병원을 나온 지도 벌써 2달이 넘게 지났다. 주로 일하던 공간에서 벗어나게 되니 그동안 병원에서 겪었던 일을 생각하지 않게 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도 마음을 추스릴 일이 생겨서 홀로 일기장이나 블로그에 감정을 배설하는 듯한 짧은 글은 많이 썼지만, 생산적인 글을 작성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2달이 지나고 지금, 개인적인 일 때문에 한 주 동안 서울 쪽으로 올라오게 되었다. 올라온 김에 여러 약속을 잡게 되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 사태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덕분에 이 사태에 깊숙이 관여된 사람들, 아예 관계 되지 않은 사람들도 만나면서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시각들을 많이 마주할 수 있었고, 나 또한 다시 고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것은, 의사 내에서도 개업의, 전문의, 전임의, 전공의 그리고 학생들 간의 여러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심지어 전공의 내에서도 병원의 크기, 과, 년차 별로 너무 다른 입장을 보인다. 서로 다른 상황을 이유로 우리는 내부에서도 서로의 의견을 잘 모르고 수렴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에 대해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협점을 찾아 가고자 한다면, 상대방을 만나고 또 대화해야 한다. 소통이란 어렵지만 살아가면서 반드시 행해져야 할 일이며 우리는 자신의 마음과 상대방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교수님들은 병원에 남아 진료나 수술을 지속하고 계셨지만, 5월이 되면 병원이 어떻게 될 지 걱정하셨다. 정부는 25일에 실질적으로 진료를 그만 둘 교수님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말하고 있다 (박민수 차관 "의대 교수 사직, 실현 가능성 높지 않아…의대 2000명 증원은 확고"-https://medigatenews.com/news/2717960689). 한달 전, 부활절에 오랜만에 방문한 교회에서 여러 선배 의사분들과 대학병원에 근무 중인 교수님들을 뵐 수 있었는데, 충남의 대학병원에서 근무 중이신 응급의학과 교수님은 홀로 거의 매일 당직을 서면서 과다한 업무를 견디고 계셨다. 병원 내에서도 공백으로 둘 수 없는 곳,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을 담당하는 교수님들은 돌아 가면서 당직을 서고 계시고 - chest 판독 담당인 영상의학과 교수님들까지, 과와 상관 없이 응급 및 중환자실 진료와 관련된 모든 교수님들이 갈려나가는 중이다. - 피로가 누적되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말하는 필수 진료는 전문의들 인력을 갈아서 어떻게든 유지해나간다고 하더라도, 값싼 전공의들을 갈아서 가능했던 그 외의 진료들을 하지 못하게 되니, 병원 입장에서는 재정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다.


이 와중에 국립대 병원 뿐만 아니라 사립 대학 병원 교수님들 까지 모두 통틀어서 교수님들은 공무원법을 준수해야한다는 정부 발표 때문에 교수님들이 매우 분노하고 계신 것 같았다 (정부 “의대 교수, 공무원법 따라 사직 불가” 교수들 “민법상 가능”-https://www.donga.com/news/google/donga/3/all/20240422/124600937/1). 대학병원에 남아 계신 교수님들은 경제적으로 수익은 적지만 정말 해결하기 어려운 환자들의 케이스에 대해 연구하고 해결해 나가면서 얻는 더 큰 의료 발전을 위해 3차 병원에 남아계신 분들이다.


대학병원이 문제가 생기면 환자를 진료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의사를 키워 나가는 수련 자체에 문제가 생기며 여러 단계에 차질이 생긴다. 수련 병원은 병원 평가 시 논문 점수의 비중이 매우 높은데, 교수님들이 현재 진료에 집중하는 만큼, 논문을 쓰는 일은 뒷전이 될 수 밖에 없다. 비뇨기과는 결국 학회에서 병원 점수를 작년 점수를 그대로 가져와서 쓰기로 했다고 한다. 내가 속한 학회 또한 수련이사인 교수님이 사직을 고민 중이라고 하니 근무중단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각 병원의 수련 실태를 조사할 인원 또한 감축 되어 병원의 수련 환경에도 엄청난 혼란이 야기될 것으로 보인다.


전공의들의 수련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교육 또한 문제이다. 정부는 2025년 부터 의대생 2000명을 증원 한다고 하며, 특히 지방에 있는 대학병원에 더 많은 의대생을 모집할 예정이다. 6년마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에서 실시하는 의학교육평가 인증평가 절차가 있는데, 의학과가 존재하는 대학이 의대생들의 교육을 시행할 수 있는지 여부를 평가하는 것으로 이는 매우 까다롭게 진행되는 인증 평가로 유명하다. 현재 지방의 대학병원의 교수 인원으로 의학교육평가 인증을 통과할 수 있는 지방 3차 병원이 많지 않다. 그만큼 질이 떨어진 교육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각 의과대학의 학생회에서 학생들의 휴학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이들을 공격하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학생회의 사주로 일어난 것일까? (대통령실 "의대 학생회, 학업복귀 막아...수사 의뢰, 엄정조치"-https://www.newsis.com/view/?id=NISX20240423_0002710026&cID=10301&pID=10300) 가장 현재 2000명 증원 후 발생할 문제들에 가깝게 닿아 있는 사람들이 학생들인 만큼 본인들이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원치 않던 gap year 가 지속될 지는 모르겠다.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바쁜 병원 생활로 만나지 못하던 사람들을 만나며 잃어버렸던 내 모습을 다시 찾아가는 중이다. 결국 나는 누군가와의 '소통'으로 무언가를 얻고 삶의 자극을 받는 사람인 것을 깨달았다. '소통'으로 인해 상처도 받고 마찰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 상황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면서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부족한 점을 인지하고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나의 부족함에 대한 인지와 함께 부끄러움을 동반한다. <데미안> 에서 너무 유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을 때마다 깨달음을 주는 문장이 있다.


알을 깨고 나온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고, 나를 변화시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소통'을 지속하고자 한다.  

작가의 이전글 저는 환자가 있어 존재하는 사람 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