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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걸음 Apr 18. 2021

#1 아이고 우리 똥강아지

할머니에 대한 기억

* '보내주고 싶은 일기장'

- 쓰잘데기없는 일기와 메모 중, 종종 주변에 보내드리게 되는 일기를 올립니다.

-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



내일은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햇수로 20년이 되는 날이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난 벌써 20대 후반의 직장인이 되었고, 아버지는 40이 아닌 환갑을 바라보는 연세가 되셨다. 나이의 자릿수가 바뀌고, 앞자리가 한번  바뀔정도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저번주 한라산을 한창 올랐다가 하산하는데, 눈 앞에서 중학생 쯤 되보이는 여자아이가 넘어졌다. 다리에 힘이 풀린건지, 장애물 하나 없는 평지 즈음에서였다. 놀라서 부축하려고 하기도 전, 뒤에 가던 어머니가 깜짝 놀라 소리치며 달려오신다.


'우리 강아지, 괜찮아? 어떡해!!'


'우리 강아지'. 그 말과 표현에 너무나도 큰 애정이 담겨 있어서, 사뭇 소스라치게 놀란 것 같기도 하다. '저 집안 자식은 얼마나 귀하게 크고 있는 거람. 엄마가 딸을 우리강아지라고 하다니!'라고 조금은 시니컬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쯤, 할머니가 생각났다.

우리 할머니는 자주 나를 '우리 똥강아지'라고 부르셨다. 겨울날 밖에서 한참을 뛰어놀다 뼛속까지 덜덜 떨며 들어오는 막내를 보고, 갑자기 잠옷 속으로 끌어당겨 차가운 아이를 안아주시던 분이다. 그러면서 '아이고 우리 똥강아지, 어디서 이렇게 뛰다놨노' 하시며 말이다. 그땐 따뜻한 할머니 품안이 마냥 좋았는데, 생각해보면 맨살의 우리 할머니는 얼마나 차가우셨을까.



하도 오래전 일이라 가물한 기억들을 껴안고 살다가, 재작년 즈음인가, 아빠와 함께 조부모님 산소를 찾았다. 사실 더이상 이분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거나, 통곡을 하며 찾기엔 많이 무뎌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할머니할아버지 앞에 서자 눈물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흘렀다. 맞다. 우리 할머니는, 내 할머니이기 전에 우리 아빠의 엄마였다. 


우리 아빠는 지금 엄마의 산소 앞에 서있었다.



그 사실이 얼마나 슬프던지. 엄마의 죽음이라니. 상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 앞이 흐려졌다. 세상이 무너진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내 인생에 이만큼 온전히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하나의 인생의 시작이자 전부였을 부모님이다. 그렇게 커가며 함께 살아가는 가장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일 거다. 우리 아빠에게 4월 15일이 말이다. 그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제 품으로 낳지 않은 손녀들도 그렇게 안아주시던 할머니께, 우리 아빠와 고모들은 얼마나 눈에 넣어도 안아플 강아지들이었을까?

할머니와 함께한 시간이 너무 짧아서, 이젠 따로 살아간 날이 더 길어져서, 그런 내가 우리 할머니의 기일을 기억하는 방법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내일은 우리 사랑하는 아빠를 낳아주고 길어주신, 한 멋진 어머니의 기일이다. 할머니의 생신을 챙기진 않으니, 또 조부모님의 날은 없으니, 이 때 감사의 말을 전해야겠다.


할머니 감사합니다.


멋진 아들을 낳아주셔서, 멋지게 길러주셔서, 또 어머니께서 떠나가신 후에도 이렇게 멋지게 살아갈 힘을 주셔서요.

내일은 아빠 한번은 안아드려야지.
물론 거부당하겠지만ㅎㅎㅎ




*** 덧. 백록담 인증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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