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못본 친구로부터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편지
- 주변으로부터 감사히 받았던 편지를 엮습니다.
- 소중한 당신에게도 힘이 되면 좋겠습니다 :)
민지야, 안녕!
정말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나는 모든 게 그대로야. 여전히 00동 그 달동네이고, 여전히 세상 무서운 게 별로 없고, 여전히 말수가 많은 모습 그대로. 벌써 친구란 말이 살짝은 어색하게 들릴 만큼의 시간이 훌쩍 흘러버렸어. 연말연시가 다가와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다가 문득 너 생각이 나서 이렇게 또 새 편지지를 꺼내.
편지를 쓰기 전, 예전 너의 편지를 꺼내 읽어봤어. 다시 향기나는 연필로 쓴 것처럼, 그 때의 그 향은 여전히 진하게 남아있더라. 당시 했던 대화, 분위기, 표정, 냄새, 감정 모두 생생했어. 다 읽고 나니 인생의 굴곡이 심한 만큼, 감정의 기복도 심했던 너의 2019년은 또 어땠을까 궁금하더라. 아마 너에게 있어 2019년도 다사다난했겠지? 단 한 해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너니까.
예전에는 왜 유독 너에게만 그리 힘든 일이 닥치는 건지 신이 원망스럽기도, 또 의아하기도 했어. 그런데 요즘엔 조금 생각이 달라져서, 그것은 아마 삶의 근육을 만들어가는 하나의 과정인 것이 아닐까 싶어. 인간 세상에 태어난 이상, 사람은 누구나 사람을 위해 살다가 죽는데, 각자의 길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부축하고 끌어안고 가려면, 그만큼 근육이 필요한 법이고, 그러기에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 혹은 보내고 있다면 그 힘든 만큼 험하디 험한 인생을 앞으로 살아가고 버텨내는 근육이 붙는 것이고, 또 그 근육이 생긴 양만큼 남들이 너에게 의지하고 네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더 많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
이것이 신이 인간의 인생이란 길 위에 시련의 허들을 계속 놓으시는 이유가 아닐까 해. 그런 시험을 통해 그 사람의 무르익음의 정도를 파악하시고, 장차 그 사람을 어떤 곳에 사용할지를 판단하시기 위해. 여기저기서 쓰임 받는 사람들이 대부분 공통적으로,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많은 사람들인 것도 아마 그런 이유이지 싶어. 그런 의미에서 삶이란 것은 어쩌면 상당히 주관적인 것으로서 내가 이를 버텨낼 힘을 쌓으면서, 그리고 그것을 그리고 그것을 남과 나누면서, 사는 것이 덜 힘들게 느껴지는 과정인걸지도 모르겠어.
그러기에 만약 힘든 한 해를 보냈다면, 축하해!
너는 전보다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더 풍요로운 사람이 되었을테니.
만약 행복한 한 해를 보냈다면, 더 축하해!
들지 않다고 느낄정도로 너는 이미 풍요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일테니.
이렇게 쓰다보니 어느덧 2019년이 다 가고 2020년이 와버렸어.
연말이면 어김없이 새로움을 찾아 떠나는 너는 아마도 지금 하늘 위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있겠지? 내가 모르는 많은 일들에 웃고 울었을 네가 이륙할 때 그 땅에 두고 온 2019년 한해도 고생 많았어. 너의 2020년은 2019년 보다 조금 더 찬란하게 빛나길 진심으로 바랄게.
많은 소중한 인연들에게 진 마음의 빛을 갚는 방법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래.
네가 어디에 있든 나는 여기 이 자리에서 항상 너의 꿈과 행복을 응원할게.
해피 뉴이어!
- 여전히 소중한 나의 오랜 친구, 민지에게 -
2020년 1월 1일 00시 23분
이제 자고나면 새해가 뜨는 2019년과 2020년 그 애매한 사이 어딘가 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