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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걸음 May 05. 2021

#16 여행 끝, 취업!

터널의 끝, 드디어 빛

터널의 끝, 드디어 빛


여행을 떠났을 때 오히려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습니다. 꼭 새로운 것만이 아니더라도 새롭게 보이는 여행의 매력이었습니다. 여행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습니다. 




친언니와 처음으로 둘이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연년생 자매답게 음식 하나로 실랑이를 벌였고, 어디를 갈 것인가를 두고 투닥 거렸습니다. 더위에 지쳐 침대에 널브러질 때면 누가 물 떠올지를 두고 한참을 말씨름하던 둘입니다. 그래 놓고는 지하철에서 서로 기대 잠들고, 쇼핑하다 무거운 짐에 같이 바닥에 주저앉아 쉬기도 했습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길을 잃을 때면 서로 길을 나눠 찾다 마주치고 웃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일본어를 배운 언니. 언니만 믿겠다며 따라간 곳에서 언니는 ‘디스 원, 투!’ 하며 주문을 시켰습니다. 


정말 원 없이 싸우고, 배꼽 빠지게 웃으며 지낸 나흘이었습니다. 


평생 같이 자란 자매였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점점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그렇듯 각자의 색을 찾아가고 있었고,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며 공감대도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심지어 언니는 직장인이었고, 전 여전히 학생이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도 대화도 켜켜이 달라졌습니다. 서로 다른 일상을 살다 집에서 만났는데요, 집을 나서면 다시 또 모르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가자 온 종일 같은 하루를 보았습니다. 겨우 옆 동네 일본이었을 뿐인데요, 직장이고 학교를 떠나 아침과 점심, 그리고 디저트와 저녁을 고민하는 뻔한 이십 대의 모습이었습니다. 대화에 다른 내용이라고는 23년째 투닥거리고 있는 메뉴 싸움이었습니다. 덕분에 대체 얼마나 걸어 다녔는지요. 동생이 좋아하는 스시를 먹고 난 다음에는 언니가 좋아하는 돈까스를 먹으러 갔습니다. 밤에는 유명하다는 파스로 종아리를 도배하고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내려올 기미 없던 입 꼬리 입니다. 실랑이의 끝은 항상 웃음이었습니다. 


아무리 달라져도 역시 우리 언니였고, 역시 언니 동생이던 시간입니다. 


여행을 떠났을 때 오히려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습니다. 꼭 새로운 것만이 아니더라도 새롭게 보이는 여행의 매력이었습니다. 여행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습니다. 더 나은 이상을 꿈꾸게 하기도 했고, 수 많은 추억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자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귀국 후 일기를 쓰고 있었습니다. 브렉시트(Brexit) 발표로 세상 전체가 한바탕 소란스러운 오후가 지나갔지만, 제 삶은 역사 속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있는 듯, 큰 영향 없이 방학을 맞아 한가로운 모습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어제까지 일본에 있었던 사실조차 먼 과거처럼 느껴질 정도로, 완벽하게 일상으로 복귀한 듯 했습니다. 모처럼 치일 곳 없이 느긋한 오후를 보내며 낯선 여유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런 날도 참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마음을 느긋하게 갖자 일상 속 사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를테면 미세한 소리를 내뿜으며 물을 공기 속 수분으로 바꾸어 주는 가습기의 형상이라던가, 그 모습에 비쳐 생각나는 구름과 담배연기들. 흩어지는 물안개를 손으로 괜히 휘저으며 스쳐가는 시원한 공기에 옅은 미소를 띄우며 누워있었습니다. 우리 집 같지 않게 조용한 일상이 이어지던 그 날, 전화 한 통이 울렸습니다. 조기졸업이 확정되었고, 동시에 가장 가고 싶던 회사 합격했다고 합니다. 유일하게 해외 취업 대신 입사하고 싶던 회사였습니다. 한가하던 오후, 갑작스레 그토록 꿈꾸던 끝이 다가왔습니다.


수 백 갈래로 나눠지던 진로 속에서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그간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친구들이 교환학생을 가 있는 사이에 한 학기를 줄여 졸업할 만큼 학점을 모으고, 관세사 시험 준비부터 해외에 나가기 위한 세미나들, 수 많은 공모전과 대외활동, 동아리 등을 해왔습니다. 어떤 미래로 이어질지 몰라 무엇 하나 소홀히 하지 못하고, 치열하게 살아왔습니다. 


덕분에 재미 있었지만, 몇 배로 힘들어 했고 자주 어려워 했으며, 때때로 지치는 날들도 많았습니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노력했냐고 묻는다면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다만 그런 시간들이 모여 어떤 결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이 어딘가 있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해봅니다. 결과는 저에게 속하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건 노력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들려온 합격 소식이 얼마나 행복했는지요. 


전화를 받고, 너무 감격스러운 마음에 방에서 소리도 못 지르고 우당탕 부딪히며 거실로 뛰어 나왔습니다. 스물 세 살 여름, 생각보다도 훨씬 빠른 시기였습니다. 그동안 고생하던 일들이 결실을 이룬 걸까요? 아무도 없던 집에서 혼자 방방 뛰며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지리하고 힘들던 일상에 처음으로 마침표가 찍혔습니다. 


고생 끝에 행복이 시작할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가장 어두웠던 시간들이 모여서 빛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 '어디에 있든, 나는 여기에'

 - 여러분의 삶에 자그마한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

 - 한 주를 또 치열하게 살아냈을 매주 토요일 밤, 지나온 발자취와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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