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모멘트 Sep 29. 2021

#17 고생 끝! 행복 시작?

겁나는 출발

겁나는 출발


결국 머무를 숙소 하나 예약하지 못하고 인천공항을 향했습니다. 

무엇 하나 든든한 것 없이 불안한 것 투성인 출발이었습니다. 

이토록 준비 없이 대륙을 넘나들어도 되는 걸까요?



입사까지 그로부터 3주 후,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앞서 직장인이 된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여행을 조언해주었습니다. 지금 가야한다고, 안 그러면 후회할 거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돈도 없고, 시간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목표를 향해 쉼없이 달려오느라 만나지 못한 친구들 보기에도 시간이 빠듯했고, 지난 시간들을 되짚으며 정리해보기에도 한달이 채 되지 않는 시간은 너무 짧아 보였습니다. 심지어 불과 어제까지 오사카에서 여행을 하고 왔기에, 괜한 사치를 부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한국에서 남은 학생으로써 일상을 잘 마무리하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Why’라는 앨범을 냈습니다. 자정에 맞추어 공개한 곡에 "대체 왜 지금 떠나지 않느냐"는 가사가 매력적인 목소리와 함께 귀에 꽂혔습니다. 좀처럼 동하지 않던 마음이 마구잡이로 흔들렸습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손이 세계지도로 향했고, 순식간에 5대양 6대주를 훑었습니다. 미국,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오세아니아. 그리고 유럽. 유럽에서 손이 멈췄습니다. 


역시 유럽. 다시 유럽. 


당장 떠나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로망의 도시인 파리부터 시작해서 남쪽을 둘러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뜨거운 정열의 나라 스페인 중에서도 가장 남쪽, 그리고 유라시아 대륙의 끝이라 불리는 포르투갈을 말입니다. 새벽에 들은 노래 하나로 손바닥 뒤집듯 마음에 결심이 섰습니다. 다시 유럽을 향하기로요. 


아침에 일어나 당장 떠나기 위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일단 오사카 여행에 탈탈 털어 쓴 탓에 지극히 가벼워진 지갑과 통장부터 어떻게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했습니다. 공모전 지원금이나 회사 출장비 없이 여행경비를 스스로 부담해야하는 유럽행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습니다. 당연하게 탔던 국적기 직항은 사치였고, 숙박비 등을 포함시키자 예산의 크기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그렇다고 여행지를 가까운 곳으로 바꾸거나 타협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시간별로 온갖 여행사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습니다. 스페인어로 된 사이트도 들어가보고, 경유지로 온갖 나라를 다 대입해 보기도 했습니다. 비행기표가 가장 저렴한 도시를 찾아서 In/Out 공항을 조합해보기를 수 백 번. 프랑스 파리로 들어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나오는 일정으로 하자 가격이 직항에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베이징 경유가 6시간이나 포함되어 있는 땡처리 항공권이었지만, 경유를 한 번도 이용해본 적 없던 젊은이의 패기가 발동했습니다. 까짓 것. 해보지 뭐! 결국 삼일 후 새벽에 출국하는 비행기편으로 결정하고 말았습니다. 


결심부터 출국까지 삼 일은 냄비가 들끓듯이 요란스럽게 지나갔습니다. 예정하지 않았던 여행인 만큼 원래 있던 일정과 차질을 빚을 만한 일을 처리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습니다. 입사 서류 준비, 만남 약속 미루기, 소식과 인사를 전해야 할 분들께 연락 드리기 등으로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뜬금 없는 장거리 여행을 두고 크게 반대하시는 아버지와 긴 대화를 치뤄내야 했고, 그 와중에 어머니께는 여행자금 마련을 위해 받지도 않은 첫 월급을 담보로 소정의 돈을 잠시 지원해달라고 부탁드리기도 했습니다. 복닥복닥거리며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작 여행준비는 뒷전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일상에 치이고 집에 돌아오면 야속하리 만큼 캐리어가 텅 빈 채 입을 벌리고 맞아주었습니다. 백지장 같이 하얀 여정은 두 말할 것 없었습니다. 결국 머무를 숙소 하나 예약하지 못하고 인천공항을 향했습니다. 공항 리무진을 놓칠까 봐 캐리어를 끌고 전력 질주하던 아침, 짐은 다 챙겼는지 아리송한 마음을 애써 외면해야 했습니다. 


무엇 하나 든든한 것 없이 불안한 것 투성인 출발이었습니다. 허겁지겁 공항 리무진에 올라타서 숨을 잠시 고르고, 첫 날 파리 숙소를 살펴보았습니다. 당시는 여름 극 성수기였고, 전 세계인 로망의 도시 파리였다는 걸 고려하면, 하루 전 예약은 어불성설이었습니다. 실제로 아주 열악하거나 지나치게 높은 가격의 숙소만이 드문드문 남아 있었을 뿐입니다. 결국 중심부도 아니고 먼 외곽에 있는 혼성 도미토리 정도가 제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였습니다. 어쨌든 잠은 자야 하니까요. 간신히 첫 날 숙소를 예약하고 문득 무서운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토록 준비 없이 대륙을 넘나들어도 되는 걸까요? 누가 봐도 무슨 일 당해도 이상하지 않아 보일 겁니다. 


생각해보면 열 여덟 살, 제주도 이후 처음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습니다. 그 간은 늘 누군가와 함께 했습니다. 네팔의 해외봉사도, 짧든 길든 향했던 여정길에는 언제나 친구나 가족, 팀원들과 동고동락하며 낯선 출발을 준비했습니다. 제 부족함은 어김없이 누군가를 통해 채워졌고, 한 없는 미숙함은 든든한 지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혹 해결되지 않는 덜렁임은 긴 준비기간을 거치며 차츰차츰 보완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제가 움직이지 않으면 모든 게 멈춰버렸습니다. 짧은 준비기간은 스스로 보완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이토록 부족하고 흔들리는 걸음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비행기가 지면에서 발을 떼며 이륙하자,
약속이라도 한 듯 갑자기 눈물이 울컥 쏟아져 내렸습니다. 


마치 어디 죽으러 떠 나는 사람처럼, 혹은 이별 당해 도망가는 사연 많은 사람처럼 말입니다. 이토록 흔들리며 시작해버리는 여행이 마치 앞으로 제 삶 같았습니다. 이 비행기가 이륙하면 정말로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시작인 것 같아서, 그 신호탄인 것만 같아서 왈칵 겁이 났습니다. 앞으로 그렇게 홀로 서야 할 사회생활이 무서웠던 걸까요. 불이 꺼진 기내에서 한참을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이런 새가슴에 쫄보가 없습니다. 제주도를 걸으며 영문도 모른 채 흐르는 눈물을 쉴 새 없이 닦아내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 때도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그토록 홀로 서럽게 울었습니다. 알아주는 사람 한 명 없음에 서럽고 외롭게 엉엉거렸는지요. 떠나는 규모만 달라졌을 뿐 모양은 비슷했습니다. 제주도 여행에서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울었던 기억이 방울방울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여리고 힘들었던 제주도 추억이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도망치듯 떠나서 세상 모든 속상함을 혼자 짊어진 듯 다녀온 추억이 어찌나 소중하고 감사한지요. 이후 수 년간 마음 무너지는 순간마다 그 시기 그 장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곳에서 가졌던 마음, 복잡한 생각, 세밀하게 느껴졌던 경험들이 묘하고도 큰 힘이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여행도 분명 그럴 겁니다. 아무리 서럽게 울어도 말입니다. 심지어 이번엔 도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앞둔 기분 좋은 여행이니 말입니다. 


비행기 불이 다시 켜지고, 기내식을 나르기 위해 승무원이 분주해질 때 즈음 울음이 잦아들기 시작했습니다. 곧 이제껏 먹어본 기내식 중에서 가장 맛없던 기내식이 나왔지만, 아무렴요. 그저 좋았습니다. 이미 그 때는 낯선 곳으로 향하는 설레는 마음 가득한 여행자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꼭 한 해 전 영국에서, 아쉬운 마음에 돌아서며 다시 오겠다고 다이어리를 사서 달력에 표시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순수한 여행으로 다시 유럽을 가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그토록 설렘 가득하던 영국에서 귀국한지 꼭 한 해만이자, 고작 1년 새 세 번째 유럽이었습니다. 


가슴이 다시 널뛰기 시작했습니다. 



*** 브런치 독자분들을 위한 글

- 1년도 넘게 적은 글들을 매주 한차례씩 전달드립니다.

 - 한 주를 또 치열하게 살아냈을 매주 토요일 밤, 지나온 발자취와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

 - 여러분의 삶에 자그마한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16 여행 끝, 취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