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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ldsky Aug 01. 2022

그것이 알고싶다 1317회 - 나는 왜 죽어야 하나요.

누구하나 고민없는, 너무도.. 너무도 무성의했던 아마추어같았던 회차.

한국 사회에서의 자살은 오래된 화두다.

그리고 아이와 부모가 함께 삶을 놓는 동반자살 역시 오래된 화두다.

오늘은 '그것이 알고 싶다'였지만, 전에도 그 전에도 이를 다룬 방송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조금 기대를 했다.

'그알'이기에, 그리고 아주 오래된 해묵은 문제이기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라 기대 했다.

하지만 실망하고 말았다.


그알은 과거 수많은 방송들이 했던 화법을 반복했으며, 소위 전문가들도 똑같은 소리만 앵무새처럼 지껄일 뿐이었다.

주위를 환기해야할 방송은 십수년간 똑같은 소리를 단어만 바꿔가며 하고있고, 문제의 솔루션을 제공해야 할 전문가들 역시 별다른 고민없이 똑같은 소리를 좀더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하고 있었다.

무엇을 위한 방송이고, 무엇을 위한 전문가란 말인가?

정말 실망이었다.


동반 자살은 30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30대 중반 이전의 동반 자살은 주로 수평적 동반자살이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특정한 공간에서 만나 아픔을 공유하고 함께 뜻을 모아 시행하는...

누군가에 의해 강제되기 보다는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그런 형태를 뛴다.


두번째는 30대 중반 이후의 자살로 이는 수직적 동반자살이다.

어제 그알이 다룬 문제가 주로 여기서 나타난다.

동반자살의 주요 원인은 경제문제다.

내부의 정서적 문제로 동반 자살한 형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외부의 문제에 의해 불가항력적일 때, 나타난다.


이 두번째 그룹은 50대 중반을 기준으로 다시 두개의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50대 중반을 이상(55세 이상- 이후 type-2로 표기)의 동반자살의 대상자는 실행자와 비슷한 세대이거나 윗 세대인 경우가 많고, 50대 중반 이하(55세 이하 - 이후 type-1으로 표기)의  그룹은 아랫세대가 대부분이다.

이 두그룹을 나눠야 하는건 반드시 필요한데, 그 이유는 type-1 그룹의 경우 경제적인 문제가 대부분으 원인이라면, type-2 그룹은 경제문제 이외에도 건강을 비롯한 장애(치매, 장애, 난치 및 불치병 등)가 주요한 원인으로 추가 되기 때문이다.


두타입의 공통점은 가해자가 부양자(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책임지는 주체)고, 피해자는 피부양자(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라는 것이다.

차이는 type-1의 경우 그알이 보여준것처럼 동반자살의 대상이 주로 성인이 되지 못한 어린 자녀인 반면, type-2의 경우 형제나 자매, 혹은 부모나 조부모, 종종 성인을 넘긴 자녀가 대상이라는 점이다.

특징적인것은 type-1의 경우 조부모가 같이 살아도 조부모와 함께 동반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장황하게 분류를 하는건, 이렇게 패턴에 따라 나눠야 우리 사회가 보이는 반응이 얼마나 모순적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두그룹의 동반 자살이 이슈가 되었을 때, 사회적 반응을 보자.

분명 두그룹 모두 부양자가 피부양자를 살해하는 형태로 진행되는 동반자살이다.

하지만 type-1에게 보이는 반응은 어제 그알이 보여준것 처럼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른 그릇된 인식'이라고 비판론이 우세한 반면 type-2에게는 '오죽했으면...'이라는 동정론이 우세하다는 것이다.

또 그 책임도 누구에게 전가하느냐를 보면 이 또한 흥미로운데 type-1의 경우 부양자의 자세를 욕하고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는 반면, type-2의 경우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와 안전망을 부제를 언급한다.


두 타입은 차이가 없다. 혈족이 혈족을 죽이고 스스로 자살을 선택한다는 동일한 형태이다. 그런데 type-1의 경우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type-2의 경우는 사회적 문제로 치부한다? 왜?

그알과 그곳에 출연한 전문가들이 고민했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알고 하지 않았는지, 혹은 정말 몰라서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나같은 촌부조차 떠올리고 분류할 수 있는 이런 간단한걸 그들이 모르고 있었다고 믿기는 힘들다.

난 그들이 외면했다고 판단한다. 주체가 누구든... 방안의 코끼리를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 결과, 내일 죽음을 준비하던 한 가장은 그알을 보고 그결심을 더욱 굳혔을지도 모른다. 왜? 절망을 보았으니가. 자신의 판단에 대한 대한 확신을 얻었으니까.

그알은 어제 방소에서 어떤 실수를 했을까?


첫째 가해자의 감성을 너무 단편화 했다.

사이코패스 살인자나 유아 성추행범을 다룰때는 온갖 심리분석및 각종 정신분석을 다 동원했으면서도, 이 문제에서는 소위 전문가라는 공염불을 마치 확증적 사실인양 나열하면서 그들을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로 보이게 만들었다.

아이는 엄마의 껌딱지였고, 엄마와 놀러간 사진속 아이는 그처럼 행복해 했는데, 그런 현상이... 그 아이들이 사랑받으며 자랐다는 것의 증명을 외면하듯, 동반자살을 계획한 가해자니까... 그간의 모든 행적을 무시하고서 사이코패스 미친놈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해결책이라고 들고 나온것이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그릇된 인식을 바꾸는게 첫걸음이 아닐까합니다"라고 근엄하게 말하고 있다.


두번째는 생존자들의 인터뷰다.

왜 넣은걸까? 난 그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만약 내일 동반자살을 계획한 가해자가 이 방송을 보고 있다면 그 결심을 철회하기 보다는 더 확고히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진수씨의 인터뷰를 봐라, 그가 사회적 캐어를 받은 사람으로 보이던가?

나이는 41세가 되었고, 복장은 일용직 노동자처럼 보였으며, 정신적 신체적 병을 가지고 약을 달고 사는 모습에서 그가 그간 살아온 삶의 고단함이 오롯이 보였다.

이 방송을 보고 있던 미래의 가해자는 '아 내가 아이를 두고 가면 우리 아이도 저런 고단한 삶을 살겠구나...'라는 생각에 동반자살의 결심을 더욱 확고히 하지 않았을까?


그 외에도 몇가지 문제점이 있지만(반복된 가정폭력의 피해자를 동반자살의 피해자처럼 꾸며서 인터뷰한 것이라던가....) 어차피 동어반복이니 넘어가기로 하고.


그럼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그알은 어떤 메시지를 줘야 했을까?


첫째는 이글을 읽는 당신들이 모두 예상하는것처럼 동반자살을 '개인의 일탈'과 같은 비정기적인 이벤트로 포장하지 말고 '사회적 시스템의 부재'에 의한 '사회현상'으로 다뤘어야 한다는 거다.

개인의 일탈과 같은 '간헐적인 이벤트'는 패턴을 찾기 힘들지만 '사회적 문제'와 같은 '지속적인 이벤트'는 패턴을 보이기 때문이다.

'패턴'은 '규칙'이 있고... '규칙'은 '공식'이 있고, '공식'은 '변수'와 '상수'를 컨트롤해 '답'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미래의 잠재적 가해자에게 '당신이 죽어도 당신의 아이는 학교에 잘 다니고 잘커서 어쩌면 당신과 살았을 때보다 더 행복하게 성장할 수도 있다' 그러니 '뒤질꺼면 혼자 뒤져라'라는 메시지를 명확히 보여줬어야 했다.

혼자 남은 아이들을 사회가 어떻게 캐어하는지 시스템을 홍보했어야 했다.

경제적인 문제로 빚쟁이에게 쫒기는 자기와 사는것보다, 사회의 시스템속에 있는게 더 안정적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주고 그 서비스에 접근하는 방법을 홍보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알은 하지 못했다.

왜? 시스템이 없으니까.


부모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도 홀로남은 아이들이 캐어를 받지 못하는데, 자살한 부모의 자식들을 캐어한다?

그알이 인터뷰했던 그 생존자들의 모습이 사회시스템의 캐어를 받은것처럼 보였던가? 아니,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알이 그나마 좋은 그림이라고 찾아낸게 저정도였던 거다.


그알을 옹호하듯 동반자살이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인식의 문제라고 이야기 하지 마라... 솔직히 한국사회에서 고아인 아이들은 고양이나 개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

1인가구 중 고독사나 자살하는 사람들이 죽기전에 하는게 기르던 동물을 다른곳으로 입양시키거나 파양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했다 할지라도 동물과 동반자살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의 동물에 대한 소유육이 약했기 때문에 동반자살을 하지 않았을까? 아니 그들은 '알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든 그 아이들이 캐어가 될걸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캣맘이던 동물보호연대던 혹은 상가의 맘씨좋은 주인아주머니던... 어떤식으로든 그 동물들이 사회 시스템 속에서 살걸 알기 때문이다.


너무 비약이라고? 그럼 부양자의 자살이 가정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따른 동반자살의 비율을 가정해 보자.

부양자의 자산이 특정 수준이상 축적되어 있거나, 혹은 그 죽음으로 인해 특정 자산이 축적(ex 생명보험)되어 피부양자의 사회적 활동에 영향이 비교적 적을 경우의 동반자살의 비율과 부양자의 죽음으로 가정이 풍비박산나고 피부양자의 사회적 관계가 무너지는 경우 중, 어느 사례에서 더 많은 동반자살이 나타날까?

가정일 뿐이지만 최대로 잡아야 전자는 1을 넘지 않을 것이고 후자는 9이상의 수치를 보일 것이다. 그럼 전자의 그들은 소유욕이 약해서 홀로 죽음을 선택한 걸까?

가정일 뿐이지만... 이런 수치를 모아 도식화 하는 것이 그들이 동반자살을 선택하는 이유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확정 지을 수 있는 주요한 수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알에 출연했던 전문가들은 그 뻔한 개소리로 입을 털면서 사회적 자살을 강요당하는 이들을 사이코패스로 만들며 이차가해를 하기전에, 이런 연구를 통해 진짜 원인을 찾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게 더 옳은게 아니었을까?

그알 역시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그릇된 인식을 바꾸는게 첫걸음일까합니다"라는 개소리로 결론을 내기 보다는 십여년간 발전없이 같은 소리만 앵무새처럼 지껄이는 전문가 집단과 행정집단을 비판하고 더 나은 대안을 제시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나같은 촌부조차 인터넷에서 몇개의 기사를 바탕으로 이딴 리뷰를 일필휘지로 써갈기고, 같잖더라도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는 마당에 소위 전문가이고 오피니언리더라는 사람들이라며 말이다.


PS. 그알이 일본의 사례를 들며 주구장창 사후약방문을 대책이라고 떠들고 있을 때 (이미 동반자살로 죽은 가해자를  명확하게 범죄자로 규정해서 얻어지는 효과가 뭔지 난 정말 의문이다) "우리는 이제 여기서 생을 마감하고 싶고 이 아이를 어떻하지 라고 했을 때, 그 때 부모가 굉장히 심한 갈등을일으켜야 하는 사회여야 해요"라고 말한 허민숙 입법조사관의 말만큼은 인상적이였다.

하지만 그알은 허조사관의 말을 더 파고 들기 보다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자료를 들이밀며 "향후 이런 일이 더 심해질거라고 걱정하고 있어요"라며 사회문제로 지적하는 듯 싶다가도 결국은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그릇된 인식을 바꾸는게 첫걸음일까합니다"라는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결론을 내린것이 정말 정말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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