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를 잘 오므리다
メメメメ. 이 이미지가 떠오르면 어느덧 연말입니다. 버릴 게 또 많이 쌓였어요.
진보랏빛 초를 켭니다. ‘깨어 있어라.’ 누군가 어둠의 형식을 던져줍니다. 지나왔던 시간을 돌아봅니다.
장식장에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꺼내다 보았어요. 작은 주머니를 열어봅니다. 그 속에 들어있는 탯줄. 젖니. 손톱과 발톱.
내가 나의 육체에 행했던 일을 소개한다: 1945년 레이신에서, 늑막 외 인공 기흉 수술을 하기 위해 나는 늑골 한 조각을 빼앗겨 버렸다.
-롤랑 바르트,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탯줄을 보며 그 먼 진보라 어둠의 구획 속으로 가보았습니다. 깨끗한 벽을 되돌리는 옹알이. 처음 깎아준 손발톱. 그 여린 것으로도 얼굴을 할퀴고 상처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부서진 ‘늑골 조각’처럼 육체에 소속되었던 것들.
그 후 그것은 약간의 의료용 가제에 싸여 엄숙하게 나에게 반환되었다(스위스 사람이었던 의사들은 ‘내 육체는 나에게 속한다’고 선언하면서)
-롤랑 바르트,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크리스마스 케잌에 꽂혀있던 작은 산타클로스. 붉은 열매와 솔방울 장식을 꺼내다가 연말이면 다시 보는 것들입니다. 한해의 끝에 와서 처음을 일깨우는 작은 조각들.
직접 만든 면포 주머니를 열기 전 손을 깨끗이 씻습니다. 손톱이 길다면 바짝 손톱도 깎습니다. 주머니를 엽니다. 가제 손수건을 펴고 늘어놓아 봅니다.
탯줄은 말라 돌덩이가 되었어요. 빠진 젖니는 그대로입니다. 그 오톨도톨한 홈이 손끝에 느껴집니다. 그 젖니로 처음으로 으깼을 음식과 최초로 발음했을 음소音素에 대해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나는 내 조각을 서랍 속에 간직했다. 옛날 열쇠들, 학생 시절 성적표, 할머니의 진주빛 광택나는 무도회 프로그램, 분홍색 카드함과 같이
-롤랑 바르트,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보랏빛 초를 켭니다. 진보라에서 보라로 이행하는 시간은 좀더 길었습니다. 손가락의 손톱. 발가락의 발톱처럼 어둠이 조금 여려졌습니다. 손톱 거스러미가 부드러운 어둠에 실금을 긋기도 했어요.
모든 서랍의 기능은 쓸모없어진 물품들을 일종의 먼지 낀 성당, 경건한 장소로 옮겨 그들의 죽음을 달래고, 거기에 적응시키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롤랑 바르트,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보라에서 다시 분홍빛 초를 켭니다. ‘기뻐하여라.’ 여리고 고운 분홍빛 손발톱처럼. 그렇게 기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작고 깨끗하고 옹알거렸습니다.
그날은 조르지오 화덕 피자집 아주 큰 크리스마스트리가 만들어지는 걸 지켜보았어요. 6단 사다리가 필요할 정도로 큰 트리였습니다. 트리는 조립식이었습니다. 삼단우산처럼 하나씩 끼워 만들었습니다. 맨 꼭대기에 별장식이 달린 것입니다.
사다리에 걸터앉아 여자가 트리 상단에 이리저리 장식을 둘렀어요. 중단과 하단 트리에는 다른 사람이 장식을 감구요.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불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장식이 고장난 것입니다. 다시 풀었습니다. 감고풀고감고풀고요. 보는 사람이 지쳤습니다.
그런데 감히 그런 내 단편을 건물 공동 쓰레기통 속에 버리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하고, 나는 발코니에서 늑골 조각과 가제를 던져 버렸다.
-롤랑 바르트,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그날의 트리는 실패였습니다. 꼬마전구를 페어리라이츠fairy lights라고 한더더니, 요정이 불 밝히기를 거절한 걸까요. ‘기뻐하여라.’ 제 기쁨도 실패였습니다.
마치 내가 세르반도니 거리에서 낭만적으로 내 시신의 재, 어떤 개가 와서 냄새를 맡고 가버릴 바로 그 재를 흩뿌리고 있는 것처럼
-롤랑 바르트,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그런데 저 멀리 주황등이 낯선 문자를 품고 켜져 있었습니다. メメメメ. メ가 자꾸 눈가에 번졌습니다.
メメ했더니 メメ하지는 말라네요. メ는 난데없이 어디서 왔나 궁금해졌는데요. 기시감처럼 분명 어디선가 도래했습니다.
알고 보니 가솔린 앤 로지즈Gasoline & Roses 음식점 앞에 걸린 주황등 ラーメン에서 メメ를 가져온 거더군요.
メメメメ. 올해를 잘 지우겠습니다. 탯줄, 젖니, 손톱 발톱처럼 잘 삭제하고 다시 쌓아올리겠습니다.
그 거대한 삼단트리에 꼬마전구가 깜박거리며 반짝대면 흰 초를 기꺼이 켤게요. 그 작은 육체의 조각들이 들어있던 주머니의 끈을 당겨 잘 닫아둘게요. 오므려둘게요.
*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마리아나
*롤랑 바르트,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이상빈 옮김, 동녘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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