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실
제1본부 아니고 제2부속실이다. 구성원은 2개의 부, 특별상위부와 하위부. 각 부의 부장 1, 기획 1, 부원 3. 모두 10명이 칸막이를 두고 앉아있다.
마음을 나눈 적이 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배정되었고 왜 여기에 소속된 지 모른 채 낮꿈 낮별 속에서도 아직도 앉아있다.
조직은 1년에 한 번 개편된다. 대부분 전입된 1년차들로 채워진다. 업무가 기피적이고 노동편향적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해녀 삼춘의 숨꽃이나 백조의 물질처럼 블루칼라풀한 업무다. 기존멤버들은 제1부서로 이동한다. 년차가 높다랗해도 신입은 무조건 기획되고 배당된다.
칸막이와 발 아래 뒤엉킨 전선 다발 빼고는 이렇다 할 배치가 없다. 고물 토스터기와 포트. 그 주변에 널려있는 일회용 차들과 먹다남은 빵 봉지. 처음 부임하면 누구나 포상처럼 만능열쇠를 부여받는다.
문을 따고 들어가면 임시로 가설되어서 벽면 밖으로 노출된 수도 파이프. 누군가 마구 튀겨놓은 물방울 얼룩이 남아있는 백조표 싱크대. 백조라니. 이름도 그럴싸하지. 수도꼭지를 틀면 아리수 물 따라 우아하고 흰 백조 하나가 둥둥 떠온다. 가장 먼저 오는 부원이 포트에 물을 끓여놓는 게 제2부의 스완 송swan song이다.
마음에 절대로 없는 사람들과 밥을 먹고
당연하듯 밥값을 내고 나오면
-김경미, 나의 백만 원 계산법-2021년
싱크대 앞 전기온열기 코일이 루돌프 사슴코처럼 빨갛게 달궈진다. 지난 번 누군가 소리없이 설탕에 재논 탱자차를 한 잔 타서 들고 있으면 이곳은 제주도 애월이거나 까마귀 꺽꺽대는 바다 앞이다. 누군가 깎아놓은 사과나 단감. 방울토마토와 단과자. 빵과 은박지에 싸인 김밥.
언제나 백만 원이 나온다
항상 백만 년이 나온다
-김경미, 나의 백만 원 계산법-2021년
합정역 7번 출구, 스티로폼 박스에 담아파는 김밥. 봉지에 10개를 담아도 1만원. 골목 안 빵집, 빵 10개를 담아도 1만원. 마음을 내지 않아도 심장을 돌리지 않아도 한다. 누가 했는지 발설하지 않는 교차.
지각쟁이 신입 홍이 가장 먼저 온 날이다. 복도 저 끝에서부터 홍홍 좋은 냄새가 난다. 그때 처음 본 원두. 그 알갱이를 가는 조그만 밀mill. 아담한 콩 방앗간. 10번은 그 가는 손목으로 돌렸겠지. 그 앙징맞은 도구에 작은 서랍. 그 서랍 속엔 어떤 천둥이 잠들어 있을까. 깨끗이 씻은 머그를 데우고 10개의 머그에 담아논 검은 매혹.
차라리 기차를 백만 원어치 탈걸
천천히 양말을 백만 원어치 고를걸
수상택시를 타고 백만 원어치 바다를 달려 제주도에 눌러 앉을걸
-김경미, 나의 백만 원 계산법-2021년
홍은 그렇게 뼈 깊이 유순한 공기를 담고 백조처럼 떠온다. 조심조심 말없이. 이 비정한 세계, 비칠대는 염소가 매달려 따먹은 빨간 열매를 발견한 소년처럼 온다.
일회용 칫솔과 비누 천 개,
혹은 김밥 50인분과 소주를 사서
기차역 앞에서 나눠줄걸
-김경미, 나의 백만 원 계산법-2021년
한 곳에는 5년이 최대 근무 기한이다. 물론 아무 책무도 없이 1년만에 강제전출도 될 수 있다. 반대로 공과가 있는 특별한 부원은 연임도 가능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떠난다. 예속적인 복무를 싫어하는 타고난 저항의 사람들. 월화수목퇼의 스완송을 흥얼대는 관리받는 사회의 일원.
언제나 기부와 적선이 된다
마음에 없으면 언제나 백만 원이 나온다
4만 166일 114년 백만 년이 든다
-김경미, 나의 백만 원 계산법-2021년
5년 근무하는 동안 백만 원은 든다. 마음에도 없고 심장도 돌리지 않았는데 제2부실 부원이 되려면. 114년 아니고 한 5년.
그러므로 양말을 뒤집어
날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백만 단위를 쓰지 않도록
114년이나 우산도 없이 소나기 맞지 않도록
-김경미, 나의 백만 원 계산법-2021년
데면데면하고 이름도 잘 모르는 칸막이 속의 사람들. 담당업무가 개별적이어서 대화나 말도 제대로 나누지 않았던 부속들.
그러나 백만 년이 지나도 기억한다. 그 싱크대 물방울 얼룩을 깨끗이 닦아놓는 부원 양. 뜰에 열린 모과와 탱자를 따다 설탕에 재우는 부장 신. 절대 고참에게 눈 내리깔지 않는 신입 홍의 우아한 여인이라는 이름의 예가체프.
그곳은 여자들의 배타적 왕국. 지금은 아니다 하더라도 여자들이 대규모 약자였던 시절, 제1부원으로 배정되지 못한 제2부속실. 간 말고 부속 많이 주세요. 그게 더 맛있어요. 홍홍홍
누군가 먼저 와 데워놓은 공기와 따끈한 물. 그런 게 아주 이기적으로 개별개별로 백만 년처럼 있었다. 백만 년의 스완 송으로. 마음이 없어도 백만 원은 든다. 들 것이다. 돌아보면 다시 차출되길 거부하는, 만능열쇠로도 안 열리는 오랜 ‘딸까닥.’
*변시지, 까마귀 울 때
*김경미,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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