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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이문숙 Sep 10. 2024

발로 토마토를 그리세요

-론데


찰토마토

찰 완숙토마토라면

태양의 감춰둔

화약고


토마토 땡볕 밭으로 출퇴근하던

그 시절 모던 걸 아니 오피스 우먼

토마토 상사에게 야단 맞고

토마토 탕비실에서 울기도 하던


다 떨어진 교복 블라우스

고무줄 늘어난 체육복 바지

아버지 넥타이로 질끈 묶고

토마토를 익히고 따다가

태양을 방화하다가


밭고랑 옆에 이상하게 사시사철

뜨거운 물 쫄쫄대는 홍염 웅덩이 있어

거기 흙발 땀 씻고  옷 싹 갈아입고

형광 빛 블라우스 스커트로 퇴근하던

거기엔 경력단절두 없어


그런데 여름내 손톱 밑은 시커맸다

태양의 흑점처럼 기미처럼

토마토가 독한 과일이라서


나는 토마토 엄마가 하는 검은 밥이 싫었다

태양의 불탄 잿더미 헛간

내 입의 치아까지 시꺼먼 발색을 할까봐


이걸 무용이라면 무용이라고 해도 될까

거울이 사방에 붙어있는 방


이 스텝은 발로

태양의 폭약고

토마토를 그리는 거예요


요즘 찰토마토 있잖아요

왼쪽 발로 한쪽을

오른발로 다른 쪽을 찬찬히


허리는 쭉 펴구

토마토 세워주는 가짓대가

내 몸에 있다 생각하면서요


부끄러워하지 말고 태양을

폭발 직전의 태양을

균형 균형이 무너지면 다 무너져요


올해처럼 무더운 여름 화룡점정은

냉소바에

토마토 한 쪽 얹는 거


방울토마토 아니고 커다랗고

잘익은 찰 완숙토마토로


태양의 감춰든 화약고로

태양의 성냥개비로 불쏘시개로


그러나 여름 땡볕은 폐를 다 망가뜨리고

그 폐 속에도 태양의 흑점 같은

토마토가 들어있던 것일까


반원과 반원이 합쳐져

아주 둥그렇다 못해 터지기 직전


인공호흡기 뺀 목에 휑한 구멍

그 구멍에서 마지막 뻘건 핏물이

쭈르륵 흘러내렸다


이 스텝은 *론데 ronde라고 해요

원을 그리듯 발을 돌리는데

토마토를 완숙 토마토를

지구가 태양을 돌듯


발을 질질 끌다가

이건 노예가 쇠고랑을 절렁대며 가듯

그냥 슬픈 것으로만 끝나면

그 뭐랄까 역사란 게 없겠죠


슬픔 속에 번쩍하는 환희와 광기를 뒤섞어

언젠가 해방이 올거야

이런 공전하는 마음으로


그러다가 끝에 태양 뿐만 아니라

태양의 흑점마저 수천 개 품은

토마토를 발로 그리는 거예요


올해는 작황이 좋아

인생만만세 역전이야


토마토 전문가 엄마는 불발한 화약고처럼

폐가 망가져 자리에 누워

인공호흡기를 7년이나 끼고


끝날 때까지 다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라는데


토마토를 발로 심장으로

발바닥 태양에 감전되어

살가죽 너덜하게


토마토를 폐로 콩팥으로

발가락 그 번쩍하는 섬광에

툭 떨어져

나가도록


*쉘위댄시shall we dan詩, 연작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써야지. 춤추듯 시詩 한 켤레를. 토슈즈 없는

맨발로 발바닥이 벗겨지고 발가락이 툭 떨어지도록.

#쉘위댄스#폭염#기후행동#스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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