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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이문숙 Nov 08. 2024

희귀종 코너

-몬트레이

차 후면부

저 캐릭터는 뭐지

이 기시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주엽역 앞 중국에서 왔다는

우리말 모르는 여자

호수 건너에서 농사 짓는다는 그 여자

깨끗하게 깎은 알타리 무

한 다발 쌓아놓고 있다


옆에는 연변 여자가 통역사처럼

같이 늘 앉아있다

그녀는 간병인으로 일한다는데

요즘은 허릿병 나서 쉬고 있다


둘은 서로 도시락 나눠먹으며

그 여자가 경작한 채소를

심지어 뿌리째 뽑아온 고수까지

여자의 통역으로 필요한 만큼씩 판다

오백원치 천원어치


이런 돈 가치가 미안해서

부모님 고향이 개성인데

개성 김치에는

고수가 꼭 들어가죠

고수가 꼬마 미나리처럼 생겼어요

안할 말을 하게 된다


서울 볼일 보러 다녀오는 긴 시간 동안에도

두 여자는 늘 같이 붙어있다

초생달 양 끝에 매달린 *체공녀처럼


어디서 본 걸까

저 캐릭터는

차가 멈췄다 갈 때마다

그 후면부 안테나에 매달린

알타리 무 하나가 빙글 돈다


*몬트레이monterey

왼무릎을 굽히고 오른발을 쭉 펴면서

호수를 건너온 그 여자의 무가 거기서

그 허공에서 저혼자 회전을 한다


빨간 후미등은

밤의 무희들 같아


정체가 심각하던 고봉대로

갑자기 호수 건너편에 있다는

그녀의 가보지 않은 청무밭으로 변해간다


왼발 옆으로 뻗으며

오른발을 가지런히 모아

몬트레이 몬트레이


사실은 플라스틱 모형이지만

이 퇴근길 정체를

저 알타리 무 하나로 휘저어


차에 갇힌 사람들

멸망을 향해가는 휘귀종 하나씩 소개하는 방송 코너 같이 듣는다면


물떼새라는 게 있다

유난히 긴 발가락 길다란 발톱으로

물 위 개구리밥 위에서도

사뿐사뿐 걸을 수 있다는


연약한 개구리밥

상처내지 않고

물에 침몰시키지도 않으며


호수 건너 농사진 걸 들고 와

하루 종일 다듬고 깎아 파는 그 여자 곁에

또 한 여자

지금은 간병사는 아니지만

누군가를 늘 보살피는


그들의 물떼새 같은

체공녀의 사뿐사뿐함을 본다면

그들의 새파란 몬트레이를

매일 볼 수 있다면


고봉대로

앞서가는 차 후면부

달랑달랑하는 플라스틱 무


그 여자가 캐내고 흙 씻어내고

다듬은 무 하나가

거기 기시감으로 떠서


*체공녀滯空女는 1931년 평양 을밀대 기와 지붕 위에서 최초로 고공농성을 벌인 여자 노동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쉘위댄시shall we dan詩, 연작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써야지. 춤추듯 시詩 한 켤레를. 토슈즈 없는

맨발로 발바닥이 벗겨지고 발가락이 툭 떨어지도록.


#쉘위댄스#폭염#기후행동#스텝#몬트레이 얀#다정#간병#희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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