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는 잘 때나, 분리불안 같은 게 생기면 젖가슴을 만졌다. 수유가 끝나자 2센티 가까운 혹 두 개가 유륜 안 쪽에 잡혔다. 다행히 암은 아니었지만 둘째를 낳게 되면 젖 나오는 길이 막혀 수유가 불가할 수도 있단 진단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젖을 유착하며 둘 다 완모(완전모유수유) 했다.) 암은 아니지만 아이가 잠들 때까지 한 시간 가까이 가슴을 만지면 통증이 새벽까지 이어져 피곤한 밤 잠들지 못했다. 젖가슴 대신 내어줄 것이 필요했다.
온몸 중, 아이가 종일 미친 듯 잡아당기고 쪼물락 거려도 아프지 않은 둔감한 곳을 찾아내야 했다. 몸 전체를 셀프 실험한 후 낙점된 부위는 팔꿈치였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팔꿈치는 넘어져 까지지 않는 한, 웬만해선 강한 악력에도 아프지 않다.
아이는 새 부위를 맘에 들어한 만큼 집착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꼭 팔꿈치를 잡아 촉감을 확인해 웃음 짓게도 하고, 처음 내뱉었던 세 글자 단어가 파큼치(팔꿈치)였다.
7년 넘게 잡아당겨짐을 당한 내 양쪽 팔꿈치는 지금도 잡아당기면 화선지만큼 얇게 포뜨여 3센티 가까이 늘어난다. 육아의 전리품이 몸에 남은 경우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고 유치원에선 팔꿈치를 못 만지자, 아이는 본인의 배꼽을 후비기 시작했다.
배꼽 높이에 딱 맞게 배꼽크기의 단추를 천으로 만든 예쁜 새 모양 목걸이에 펜던트처럼 달아주었다.
배꼽이 아플 수 있으니 배꼽이 만지고 싶을 땐 새 단추를 쪼물락 거리라고.
단추의 홈이나 폭 들어간 구멍, 천으로 된 작은 새는 배꼽을 대체하기 안성맞춤이었다.
아이는 이 새 단추를 두 번 부르길 좋아했다. ‘새 단추단추 단추단추’라 부르며 엄마 없는 곳에서의 불안함을 잠식시켜 주는 데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했다.
그럴 때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하지 말라는 강요대신 중독의 대체품을 제공한 내가 현명하게 느껴졌다.
아이는 17세가 된 지금까지 떼 부려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말로 설명했고 대체품을 제공하며 거래는 성사됐다.
자연스레 소리치며 육아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사춘기 아이들에게 요즘 소리침이 잦다.
소리침보다는 쌓였던 감정이나 억울함의 폭발 같은 것이다.
팔싹둥이로 아픈 나를 키우며 본인의 니즈를 모두 포기하며 사셨던 친정엄마는 내가 반항할 때 울며 말씀하셨었다.
“널 어떻게 키웠는데..”
반대로
“내가 어떻게 자랐는데 저렇게 말하지.. ” 싶었던 부정적 내 감정이 떠오르곤 한다. 애 키우며 절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말하지 않겠다 생각한 계기이기도 했다.
내가 감정에 복받쳐 아이들에게 소리칠 때면 그 안에 ‘널 어떻게 키웠는데’가 담겼다는 걸 나만은 안다.
첫째는 선천성 신장병이고, 네 살 터울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호흡곤란으로 중환자실에서 엄마 젖가슴 대신 호흡기를 찼다.
키우는 내내 안쓰러웠다. 첫째가 혈뇨를 눌까, 둘째가 감기라도 걸려 숨을 못 쉴까 그런 안쓰러움이 날 버티게 해 준 원동력이라 생각했는데..
다 큰 아이들이 제 멋대로일 때, 날 없는 사람처럼 대할 때, 눈빛과 말투가 사나울 때,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하는 맘이 고개를 든다.
이 말을 뱉어버리면, 과거의 내가 느꼈던 것처럼 ‘내가 어떻게 자랐는데’를 장착할까 두려워.
이 말만은 꿀꺽 삼켜보지만,
이 말 대신 절규가 튀어나온다.
그럼에도 꿈쩍 않는, 날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불안하다.
아이들과의 분리불안이 중년의 나이에 찾아왔다.
불안함을 이겨보려
혼자 팔꿈치를 잡아당겨본다.
늙어 쳐진 살가죽만 안쓰럽다.
배꼽도 쑤셔본다.
벌겋게 부풀어 따갑다.
오늘은 엉덩이 토닥이며 깨운 둘째가 “엄마. 이제 다 컸으니 엉덩이는 터치하지 말아 주세요.”라 말하고 등교했다.
누가 내게 ‘새 단추단추 단추단추’를 만들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