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하지말고 천천히 해봐.'
아침밥을 먹다 문득 떠오른, 익숙한 문장이다.
나는 잘난 사람이 아니다.
언젠가 잘난 사람이 되고 싶어 노력하는 건 맞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 친구들은 본받을 점 하나 없는 내게 고민을 털어놓곤 한다. 아무리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도 속을 보이는 게 쉽진 않을 텐데, 그럼에도 그들이 날 찾는 건 아마 내가 '다른 사람을 판단할 만큼 똑똑하지도, 이해심을 발휘할 만큼 사려 깊지도 않은, 적당히 못난 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고민을 나는 그냥 들었다. 본래 잘난 면이 없으니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했던 말을 대부분 기억하는데, 가장 많이 한 말은 '급하게 하지말고 천천히 해봐.' 였다.
그들의 고민은 대개 비슷했다. 남들에게 뒤쳐지거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걱정. 취업이나 돈, 때론 사랑 때문에 조급해지고 그 조급함이 몸집을 불리고 형태를 바꿔 불안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운 좋게도 최근까지 난 그런 고민에서 자유로웠다. 앞서 말했듯 내가 잘난 사람인 덕분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애초에 빼어난 능력도, 빼어나고 싶은 욕심도 없는 삶을 살아온 덕분이다. 하고 싶은 게 생기면 했고, 그 결과가 어떻든 행동에 책임만 지면 그만인 삶을 살았다. 그런 내게 누군가는 '재밌게 사는구나.' 말했지만 또 누군가는 '안일하게 사는구나.' 하고 생각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내게 속을 터놓았던 이들과 같은 고민을 하게 됐다. 혼자만의 삶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을 설계하자니, 지금까지의 내 삶을 돌아보게 됐다. 살아오며 놓친 게 많았다. 그것들을 수습하자니 당장의 성과가 급한 영업사원이나, 마감일을 목전에 둔 작가가 된 느낌이다.
하지만 난 타인에게 속내를 터놓는 성격이 못 된다. 좋은 일을 주변에 자랑하기는 잘 하지만, 그 반대의 상황에선 입을 꾹 다문다. 그래서 스스로 조언해야 한다. 언젠가 내가 그들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 것은 그 때문이다.
거울 앞에 서서 스스로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급하게 하지말고 천천히 해봐.'
말하고 나니 부끄럽다. 하지만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급하게 하지말고 천천히 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