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집착 디지털노마드가 되었다.
작년 11월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딱히 회사에서 나를 못살게 구는 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무시무시한 업무가 어깨를 짓누르며 괴롭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서울을 벗어나 살기 위함이었다. 서울에서 살지 않기로 다짐하였으니, 서울의 직장을 다닐 수 없다는 나름의 간단한 이유가 시작이었다.
이유는 간단하지만 퇴사가 간단할 리가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부터 우남(=우리 집에 사는 남편) 씨와 나는 많은 고민을 했다. "서울"이라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과연 우리가 안정적인 회사를 다니지 않고도 밥값을 벌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들에 대해 몇 개월 동안 썰전을 찍으니 나름 결론이 나왔고, 퇴사의 시작을 알리는 사직서 제출부터 송별회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퇴사 다음날 아침. 아니 정확히는 새벽이다. 삼 년이 조금 안되는 직장에서의 시간이 지난밤 소주 한 잔과 훌쩍거림으로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새벽 달빛에 눈이 떠지더니 도통 감길 생각을 안 한다. 그래. 차라리 무언가를 하자 싶어 내가 좋아하는 나를 좋아한다 말해준 그녀가 슬며시 건넨 "히 끄네 집" 을 손에 쥐고 소파로 향했다. 그리고 한참을 아무 생각 읽어 내려가는데 그제서야 퇴사가 실감이 되었다. 어제의 시끌벅적 안녕 인사들을 뒤로하고 조용한 새벽을 맞이하고 나니 내가 앞으로 마주해야 할 시간에 조금은 겁이 났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 통장의 돈이 없는데 나는 어떻게 하지. 이사는 어떻게 하지.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일은 또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하다 보니 해가 떴다. 그리고 숨을 두어 번 쉰 거 같은데 벌써 9개월이 흘렀다.
처음 맞이한 새벽의 무거웠던 고민만큼 지난 10개월은 치열하고 힘들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저 힘듦.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자라나 조금씩 편안한 상태가 되었다.(사실 현재진행형이다). 월급만큼 또박또박 들어오는 돈은 없지만 소주 한잔 마실 여유가 있고, 소심하지만 몇 번은 국내여행+업무 콜라보가 가능한지 테스트하였으면, 무엇보다 서울에 살고 있지 않다.
현재 나는 일상의 10%는 SNS에 떠도는 여유 있는 디지털 노마드로 그리고 90%는 통장의 잔고, 무심코 흘러가는 시간, 살아가기에 집착하는 디지털 노마드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