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사무실이 살짝 그리워요.
퇴사를 하자.라고 마음먹고 나서 시기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 서울 전셋집 기간도 있고, 회사에서 진행하는 업무도 있으니 당장 내일 그만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언제 그만두어야 할까?에 대해 우남 씨의 플랜들이 나열되기 시작하였다. 퇴사를 한다고 바로 이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당분간 서울에 살며 충분한 일거리(?)가 공수가 되는지 확인의 과정을 거치기 위함이다. 대략 6개월은 부딪히고 테스트가 필요하다. 어쩌고저쩌고. 한참 이야기를 듣는데 사실 나에게는 단 하나의 의견밖에 없었다
여름에는 에어컨이 있는 집에 있고 싶어
내가 살던 서울 집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집을 계약하던 시기가 겨울이라는 이유, 집 뒤에 산이 있어 여름에 딱히 더울 거 같지 않다는 이유들이 구매 의욕을 사라지게 하였다. 하지만 그 해 여름은 너무 더웠고, 치열한 여름밤은 에어컨 구매 의지를 불사르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을 겨울이 되면 간절함보다는 에어컨을 골라야 한다는 선택 장애와 귀차니즘이 올라와 또다시 무시무시한 여름을 맞이하는 이상한 굴레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했다.
하지만 2018년 여름에도 그 굴레 안에 있을 수는 없었다. 집에서 일을 하는 시간이 많을 텐데 컴퓨터가 돌아가는 방에서 에어컨 없이 일이라니. 나는 퇴사 시기 보다 퇴사 후 맞이할 첫 여름에 대해 더 예민함을 세우게 된 것이다.
이 예민함 덕분인지 퇴사 시기는 간단히 정해졌다. 여름 전 6개월, 즉 겨울. 그렇게 나의 퇴사 시기는 11월이 되었고 이후 물 흐르듯 퇴사와 힘든 프리랜서 적응기가 지나고, 7월 어느 날 나는 에어컨이 있는 곳으로 거처를 옮길 수 있었다.
나름 반전은 에어컨만 있으면 이 여름이 마냥 행복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에어컨을 켤 때마다 어디선가 나오는 통장 세포 때문에, 예전 사무실에서 느꼈던 여름 추위는 염두도 못 내고 정말 더울 때 한 땀 식혀주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 지금도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 중 몇몇은 추워 무릎담요를 돌돌 감는다던데, 그 추위 좀 나눠 받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 요즘이다.
(속닥속닥) 그래요. 사실. 여름에는 사무실이 살짝 그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