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톰양 Mar 05. 2019

찾았다. 봄봄.

튤립찾기 대작전

제주로 이사 오면서 마당이 있는 집에 잠시 살게 된 것에 럭키를 백 번은 외쳤다.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 한참 추운 1월에 마당은 무용지물이었다. 무성하게 자란 잡초하며, 어느 동네 개가 남겼는지 모르는 개똥까지. 봄이 되어 마당에서 무언가 할 수 있을 때 관리를 하자 싶어 한동안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뜬금없는 한 통의 문자에서부터 나는 마당에 무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전 세입자로부터의 문자였다.


제가 튤립을 많이 심어놨는데요. 그게 아직은 싹이 보이지 않아 3월은 지나야 찾을 수 있거든요. 
그때 찾으로 가도 될까요?


뭐 우리가 심은 게 아니니 안된다 할 이유도 없어 오실 때 연락만 달라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마당을 볼 때마다 궁금했다. 무성히 풀이 자란 이 마당에 도대체 어디에 곱디고운 튤립이 숨어 있는 것일까. 아무리 봐도 잡초밖에 없는 거 같은데.. 도대체 어떤 게 튤립인 것일까.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 밀림에서 튤립 찾기



몇 번의 마당 순찰(?) 결과 알아낸 것은 애플민트가 무성하다는 것과 뱀딸기가 있다는 것?! 정도. 식물은 초록이다 밖에 모르는 나에게 튤립은 쉽사리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모히또를 백 번은 마실 수 있을 거 같은 애플민트 천국이다



그렇게 튤립 찾기는 실패인가 싶었는데, 3월 이 시작하는 날 드디어 튤립 모종을 발견했다. 매일 그렇게 찾을 때는 보이지도 않더니, 봄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동백꽃이 이제 다 지려나 싶어 바닥을 보는데, 땅에서 빼꼼 거리는 초록이들이 있는 게 아닌가. 한 개를 보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숨은그림찾기 깨듯 튤립 모종이 보이기 시작했다.


찾았다. 튤립.  찾았다. 봄


이게 뭐라고, 신나서 마당 구석구석을 살펴보는데 여기저기서 봄이 튀어나왔다. 민들레 꽃이 드문드문 보이고, 단아한 수선화에, 알 수 없는 작은 초록이들이 마당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입춘이 지나도 봄이 오지 않는 거 같더니, 마당의 초록이들을 보니 갑자기 봄이 훅하고 달려들어 온기를 전해주는 것 같았다. 


퐁 하고 팝콘처럼 터질 때 다시 보자.


너의 꽃이 너무나 궁금해 자꾸만 쳐다보게  된다.


이후로 수시로 튤립의 모종을 구경하로 마당에 나간다. 문득 이 녀석들이 튤립 모종이 아닐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상관은 없지 싶다. 여전히 밀림 같은 마당이지만 나만의 봄이 쏘옥 하고 자라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2019년의 봄을 맞이하는 중이다.









:-)









작가의 이전글 제주처럼 하루를 보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