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라는 불치병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말라
달달하게 피어난 벚꽃을 보며 생각난 게 영화 타자의 명대사라니. 그도 그럴만한 것이 봄의 여행지를 제주로 정한다면 달달한 여행이 될 확률이 백 퍼센트라는 생각의 스침에서였다. 지금 제주의 봄은 설렘을 가득 머금은 벚꽃이 내년을 기약하며 꽃비를 내려주고, 귀여운 노란 향기를 뽐내는 유채는 누구라도 홀릴 기세이며, 바람에 살랑거리는 청보리는 기분 좋은 초록 물결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봄날의 제주에서는 지나가다 얻어걸리는 달달한 장면들로 마음이 몇 번이고 심쿵 하게 된다.
"제주는 봄이 참 좋아. 특히나 벚꽃은 말로 다 못하지"라는 말에 남편은 "벚꽃은 어디서든 펴"라는 시큰둥한 대답을 내놓았다. 무언가 그럴싸한 말로 제주의 봄을 설명하고 싶었지만 더 이상의 말재간은 떠오르지 않아 동네 어귀 벚꽃길로 향했다. 다행히 그날은 만개한 벚꽃비가 내리고 있었고, 남편은 연신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남편의 휴대폰에는 제주에서의 두 번째 봄이 스며들었다.
겨우내 진득하게 붙어버린 나의 살은 봄이 찾아오는 것과 무관하게 꽁꽁 옷 속에 숨어들었다. 안 되겠다 싶어 아침 운동을 하자고 마음을 먹은 첫 번째 날, 다행히 아침 일찍 눈이 떠졌고 홀린 든 함덕 서우봉으로 차를 돌렸다. 지금 시기에 서우봉의 매력을 담당은 단연 유채꽃이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하늘빛 바다와 어우러지는 노랑 유채꽃 길은 봄 내음을 가득 머금고 나를 맞이해주었다. 그래 이 맛이지. 이게 서우봉의 봄맛이지!
봄날은 말이지. 어디를 보아도 따스한 봄기운을 머금은 바람 덕분에 살랑살랑 기분이 좋아진다. 두껍게 입었던 츄리닝은 서랍 속에 넣고 찰랑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싶은 마음에 쇼핑몰을 기웃거리게 되고, 한참 동안 찍지 않던 사진기를 들고 셔터를 누르게 만든다. 봄의 정령이 제주 곳곳에 묻히고 간 달달함에 흠뻑 빠져 봄바람이 나버렸으니, 당분간은 완쾌할 계획이 없는 병인 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