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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미 Nov 20. 2021

갑분 권고사직 덕분에

저한테 왜 이러세요?

올해는 유독 이상한 한 해였다. 멀쩡하게 잘 다니고 있던 회사는 팀장과의 마찰을 못 이겨 (약간 홧김에) 갑자기 그만두게 되었고, 퇴직금 정산을 제대로 받지 못해 노무사를 선임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직을 한 후 2개월에서 20일이 조금 지난 시점에 또 다른 사건 하나가 발생했다. 나의 커리어를 인정해주겠다며 파격 대우를 해준 회사에서 갑자기 '권고사직'을 당하게 된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사건들이 연달아 찾아왔다. 알고 보니 올해가 삼재(정확하게는 날삼재)라던데, 그래서 그런 건가.


이번 달까지만 함께 하시죠


권고사직의 사유는 분명하지 않다. 입사 직후 전략을 구축해 실행플랜까지 세워 대표를 비롯해 각 팀장들에게 공유했고, 모두가 공감한다는 의견을 들었다. 또한 일부 팀장들은 나의 전략과 플랜들에 본인 팀들이 어떻게 협업할 수 있는지를 물었고, 상세하게 논의하기도 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심해져서 약 3주 간 재택을 했고, 재택근무를 하던 중 부대표에게 연락을 받아 나간 회사에서 "나가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듣게 되었다.


걱정 말아요! 제가 다 해결했어요!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됐다. 입사 전 약속했던 것과는 달리, 갑자기 회사가 매각이 되었고 말도 안 되게 대표까지 바뀌었다. '취업사기'라고 느낄 정도로 달라진 회사 환경에 그야말로 멘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직업 자체가 이런 크고, 작은 회사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지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난감하고 막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택했고 또 나를 믿어준 회사이기에 해답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중간중간 바뀌기 전 대표에게 지금의 선택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과 예상되는 리스크들을 이야기했다. 대표는 나에게 문제없으니 걱정하지 말랬다. 그 말을 곧대로 듣는 게 아니었는데.

 

처음부터 썩 마음에 드는 회사는 아니었다. 다만 애완견을 동반할 수 있어 혼자 집에 있을 강아지를 회사에서 케어할 수 있다는 부분이 좋았다(이 역시 입사 전 약속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지만). 또한 신산업의 성장에 함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 외 조직의 성숙도나 팀별 업무 처리 능력 등은 내 기준 하위권이었다. 기본적인 체계는 고사하고 '일하는 방법' 조차 모르는 조직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아 선택했다. 이직을 준비하던 당시 더 좋은 회사의 선택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짜인 틀에서 시작하는 것과 새로운  자체를 만들어가는 것에서 굳이 선택을 해야 한다면 나는 고민 없이 후자다. 그래서 결코 후회는 않는다. 당장  비어버린 지갑에 아쉬움이  .




덕분에 (1). 팔자에도 없던 '실업급여'로 두어 달을 연명했다. 나름 10년이 넘게 직장생활을 해온 탓에, 그리고 차곡차곡 연봉도 높인 덕분에 꽤 쏠쏠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매달 정해진 날짜에 맞춰 사이트에 들어가 취업활동을 보고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몇 번의 클릭으로 다음 날 돈이 들어오니 거부할 수는 없었다. 나름 백수가 되어 돈을 받아 쓰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고.

<막간 TIP>

a. 실업급여는 약속된 기간에 정해진 금액을 받을 수 있지만 약정기간(?) 내에 조기취업이 될 경우, 취업신고 기간으로부터 12개월 지난 후 남은 실업급여의 1/2에 해당되는 금액을 청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00일 동안 300만 원을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100만 원만 받은 시점에서 취업을 한다면 1년 뒤에 100만 원을 추가로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조기취업을 하면 1년 뒤 나라로부터 '용돈'을 받는 셈이다.

b. 조기취업을 하고 또 퇴사를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걱정하지 않아 된다. 처음에 약속했던 기간이 남은 상황이라면 다시 실업급여 신청을 할 경우 원래 받던 금액을 다시 받을 수 있다.


덕분에 (2). 혼란했던 그곳을 나와 지금은 좋은 직장을 찾아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일단은 조기취업 수당 신청 대상이 되었다. 물론 이번에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맨땅에 헤딩을 하는 업무들을 수행하고 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이 세상의 주목도가 높은 산업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바로 직전에 이직했던 회사보다 더 좋은 성과를 기대해 볼 수도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지금 나에게 '전화위복'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여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양한 시련을 겪게 된다. 그럴 때마다 신을 원망하거나, 화를 참지 못하거나, 혹은 좌절하는 등의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사람에게는 딱 극복할 수 있을 만한 고난과 역경이 찾아오고, 그리고 그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사람에게는 단단해진 인생이 선물처럼 찾아오기 때문이다. 올해 내가 그랬다. 직장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너무 안일했던 것들이 분명했는데, 이번 기회로 한층 새로운 시야를 갖게 된 것 같다. 사회생활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달까. 그렇게 생각하니 한 해 동안 일어난 이 모든 일들이 결코 '나쁘지는 않다'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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