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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미 Nov 19. 2021

요리는 사랑입니다

혼자 살면서 끊기 힘든 것 중 하나가 배달음식이다. 퇴근하면서 시간 맞춰 주문하면 집에 도착했을 때 문 앞에 내가 원하는 음식이 걸려있는 삶이란, 생각보다 너무 꿀 같다. 특히 그날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일만 하다가 퇴근했는데 편하게 집에서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개꿀이다. 배달의민족을 삭제했다가 결국 다시 다운로드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은 또 삭제했는데 언제 다시, 쥐도 새도 모르게 내 핸드폰에 생길지 모를 일이다. 




물론 처음부터 배달로만 끼니를 연명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름 요리를 한다고 사부작사부작 장도 보고 주방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더랬다. 생각보다 쉽다고 생각해 접근했던 장르(?)는 '굽기'이다. 기름 싸악 두르고, 적당히 재료 올려서 구워주면 맛있는 요리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바로 배신당했지, 뭐. 


알맞게, 그리고 맛있게 구워지기 위해서는 불 조절이 필수다. 그리고 구워지는 재료에 따라서 굽는 시간이 다 다르다. 호박은 낮은 불에서 오래 구워야 호박 특유의 맛을 느낄 수 있었고, 파는 오래 구우면 매가리 없이 축 쳐져서 맛이 없다. 그리고 버섯은 어떻게 굽든, 구우면 무조건 맛있다. 마지막으로 뭔가를 구워 먹으려고 할 땐 후추와 소금이 절대적이다. 


연어 맛이 나는 스테이크

나름의 연구를 통해 이제는 좋아하는 맛을 찾을 수 있게 됐지만, 처음에는 그냥 기름에 구운 소고기와 기름에 구운 연어였을 뿐 어떤 맛도 느낄 수 없었다. 세상에나. 나름 여기저기 많이 먹으러 다녔어서 맛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한 요리는 이토록 충격적인 맛의 향연이라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무엇보다 좋은 재료를 사서 이렇게 쓰레기 같은 맛(ㅠ)을 낸다는 게 슬펐다. 그냥 버릴 수도 없었다(음식은 버리면 지옥 가서 맛없는 것만 먹어야 하기 때문에 절대 버리지 않는다). 결국 너무나도 싫어하는 '맛없게 배부른 것'에 한동안 길들여져야만 했다.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나름 묘수를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밀키트'다. 밀키트는 요리를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도록 재료도 손질해서 오고, 필요한 양념들도 양에 맞춰서 오기 때문에 절대 실패할 일이 없다. 어차피 요리에 소질이 없는 '똥손'이라면 전문가의 힘을 빌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밀키트를 주문하고 난 후에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기다렸다. 물론 밀키트로 뭔가를 하기 전까지는 그 기분이 유지됐다. 


이것이 바로 그 문제의 벽돌 식감 스테이크

내가 선택한 것은 스테이크였다. 스테이크. 자신 있던 '굽는' 요리였고, 고기를 구우면 천상의 맛을 낼 수 있다. 특히 고기를 마리네이드 할 수 있는 양념까지 함께 오기 때문에 완벽하다. 심지어 밀키트 박스에는 스테이크를 웰던/미디엄/레어 중에 선호도에 맞춰 굽도록 안내가 되어 있었고, 불 조절 방법도 친절하게 적혀 있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요리는 시작되었고, 끝날 때까지 순조로웠다. 드디어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구나 신나서 한 입 물었는데, 웬걸. 나는 정말 똥손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스테이크의 고기는 내가 원하던 미디엄이 아니라(심지어 나는 웰던이 될까 걱정했는데..) 레어 상태였고, 한 입 베어 물자 마치 벽돌처럼 딱딱했다. 원래 레어는 부드러워서 고기 성애자들이 선호하는 굽기 정도가 아니냐고. 다소 어이없었지만 실패의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결국 소스에 구운 야채만 찍어 먹었다. 이 날 이후 스테이크는 무조건 밖에서 사 먹는다. 지금 생각해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를 일이다. 정말 시키는 대로 했는데. 




지금은 그래도 많이 늘어서 김치찌개도 해 먹고 닭볶음탕이나 된장 수제비와 같은 고급(?) 요리들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마저도 수월하지 않다. 왜냐하면 요리가 끝나면 뒤처리가 쥐약이다. 그게 귀찮아서 요리를 안 하게 된다. 바로 처리해 버리면 된다고 하지만 쌓여있는 냄비와 그릇들을 보면 선뜻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차피 혼자 있으니 밥 먹고 좀 쉬다가 치워야지 하면 불과 1~2시간 만에 설거지 3대 죄악의 상황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3대 죄악 다 경험한 사람 나야 나




어릴 적 학교에서 돌아오거나, 밖에서 친구들과 놀고 집에 올 때면 항상 문 밖에서부터 맛있는 냄새가 났다. 어느 날은 찌개, 어느 날은 생선, 어느 날은 치킨도 있었고 족발도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아귀찜이나 삼계탕은 기본이고, 어느 날은 뷔페처럼 다양한 요리를 골라먹을 수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느낀 것은 그 요리들에는 모두 엄마의 사랑이 담겨있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를 위한 요리는 정말 영혼을 담아야만 가능한 것임을 깨닫는 데에는 철없게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반찬투정이 얼마나 건방지고 한없이 무례한 것이지도 함께.


늦지 않은 나이에 독립을 하면서 느끼는 것들이 참 많다. 남들은 이미 다 알고 있을 것들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깨닫는 것이 한심스럽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이나마 알게 되어서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날들이 조금은 정성스러워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다. 


내일은 무슨 요리를 도전해볼까, 또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될까 하는 설렘이 나쁘지만은 않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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