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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ul Jul 18. 2024

타인도 나를 만든다.

애정 없는 조각가들에게 나를 조각하게 하지 마세요.

내 생각이 나고 그 생각을 통해 행동하는 게 나라서 오직 그것만이 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개인적으로 본 일차적 관점, 지향점에서 보면 그것도 맞다.

그러나 복합적이며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단지 나만이 나를 만들지는 않는다.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기에 모든 사람은 서로를 조각한다.

'나'안에는 내가 구축한 나와 타인이 바라본 내가 공존한다.

애정 있게 바라보는 사이가 될 때 서로를 조각함은 내가 나를 조각할 때와 유사해진다.

손 봐줄 곳은 손 봐주고 때론 있는 그대로의 멋을 살려준다.


만약 내게 애정 없는 상대를 만날 땐 어떨까? 

그동안 내가 어떤 조각 과정을 거쳐왔는지, 어떻게 조각되고 싶어 하는지 등은 알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나의 모습을 훑어본 후, 판단하고 서둘러 조각에 들어간다.

또는 여기 거친 곳이 맘에 안 들어, 여기가 너무 모났어하며 아예 조각을 피해버릴 수도 있다.

차라리 그러고 대충 가버리면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내가 멋지게 조각되길 바라지 않는 상대라면?

조각은커녕 보관조차 함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습기가 많고 돌풍이 불고 오물이 있는 곳에서 잘 들여다 봐주지도 않는다면 어떨까.

표면이 녹지도, 훼손되지도, 더러워지지도 않을 수 있을까?

자주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는데 깨끗한 조각상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어쩌다 조각을 하면 거친 곳은 더 거칠게, 모난 곳은 더 모 나보이게 조각한다.

그리곤 조각가들끼리 모여야 할 때 나를 꺼내 데려간다.


조각가가 나를 끝내 버리진 않을지, 내게 애정은 있는 건지, 너무 외로워서 그에게 말을 건다.

"나를 너무 방치하진 말아 줘. 그리고 좀 더 소중하게 조각해 줄래? 난 너무 외로워.'

조각가가 대답한다.

"넌 조각가가 이래야 한다라는 프레임을 갖고 나를 보는 것 같아. 너무 니 방식대로 나를 판단해.

조각가 모임 할 때도 수없이 너를 데리고 다니고 노력한 나는 생각 안 해주니?

그리고 조각가마다 성향이 다른 거야. 넌 정말 나를 힘들게 한다."

내가 조각가에게 정말 큰 상처를 준 것 같아 깜짝 놀란다. 

그리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점점 더 혼자 못나지고, 훼손된다.


형편없어진 나를 보고 상대방은 말한다.

"내가 저럴 줄 알았어. 쟤는 저렇게 형편없을 것 같아서 내가 피한 거야. 

쟤 원래 별로라니까. 그래서 내가 잘 안 찾아진다니깐."


나를 애정함이 느껴지지 않을 때, 내가 외롭다고 느낄 때, 소중한 곳에 보관되고 있지 않다고 느꼈을 때

그 조각가를 떠났어야 했다. 

오랜 세월 함께 했다고, 그래도 중간중간 노력해 준 면이 있는 것 같다고, 그 곁에서 고스란히 상처받은 건

내게도 책임이 있다.  

내가 나를 보호해 주지 않은 것.


내게 애정을 주는 조각가가 주변에 더 많다면 회복이 가능하다.

다수의 훌륭한 조각가들이 나를 다시 반짝이게 해 줄 것이니까.

그러나 나를 대충 조각하려는 사람들이 더 많다면 나는 별로인 조각상으로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나를 아직 조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조각하기 까다롭고 단점 많은

조각상으로 소개될지도 모른다.


어떤 상황 때문에 나를 사랑하지 않고 파괴시키기로 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인간은

나 자신을 최대한 훌륭하거나 훌륭해 보이는 인간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때문에 일단 나는 나를 정성스럽게 조각한다.

여건이 된다면 가장 좋은 재료를 쓰기도 하고 하루 24시간을 '나'조각에 투자한다.

당연히 '나'의 모든 면이 매끄럽지 않다. 어느 부분은 거칠고, 어느 부분은 모났다.

거친 부분은 좀 더 매끄럽게 갈아주고, 모난 부분은 수정한다.

때론 거칠고 모난 부분조차 '나름 느낌 있는데?' 하며 그대로 두기도 한다.


나를 내가 조각할 때와 유사하게 조각해 주는 타인을 곁에 많이 두기로 하자.

나 자신만큼 무조건 적인 수용과 애정을 주진 못하겠지만,

손을 한 번 대더라도 아름다운 손길을 남겨주려고 하는 자들을 곁에 두고 살았으면 좋겠다.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좋은 꼴만 보고, 좋은 사람만 만나고 살아. 뻔한 얘기 하고 있네.' 하더라도

이렇게 바라고, 바래주며 살고 싶다.


애정 없는 조각가들이 조각하게 함부로 나를 내어주지 말자.

소중히 내가 조각해 둔 나를 타인이 망치게 하지 말자.

나를 한 층 더 빛나게 해 줄 명장들을 만나기까지 외롭더라도 나를 조각함에 더 집중하자.

서로의 명장들이 되어주는 이들과의 찬란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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