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투자자들의 채권 순매수가 부쩍 늘었다
고금리 바람을 타고 국내 채권 시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까지 더해지면서 채권 투자에 대한 관심은 더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회사채에 대한 대강의 얘기를 드린 다음 주식 시장과 비교해 우리나라 채권 시장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예전에 사업을 하셨던 윗세대 분들은 사채를 많이 이용했습니다. 가족은 물론 친인척과 지인들의 보증까지 동원했습니다. 사업이 망하면 곧장 패가망신의 길로 접어드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떨까요? 의외로 이런 경우는 적어졌습니다. 파산 등을 통해 채권추심의 고통에서 상당 부분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쫄딱’ 망하는 경우는 확실히 예전보다 적어진 듯합니다. 우리나라 법 체계가 갖춰지면서 사업에 실패하신 분들에 대한 재기의 기회가 커진 이유가 큽니다.
또 사채가 아닌 ‘공적 영역’에서 필요한 사업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된 게 큰데요, 가장 많이 활용되는 자금처는 은행 대출입니다. 개인도 흔하게 이용하는 은행 대출은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도 자주 이용합니다. 담보를 제공해야 하고 대출 심사도 깐깐한 단점이 있지만 사업자들에게는 필수 자금 공급처입니다.
두 번째부터는 한국의 자본시장이 발달하면서 커진 시장입니다. 바로 주식시장입니다. 주식시장은 기업공개(IPO) 과정을 거쳐 지분의 일부를 시장에 내놓고 판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느 정도 사업성이 인정받은 기업과 대기업이 많이 주식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합니다.
앞서 언급한 대출이 ‘담보’를 자금 조달의 대가로 기업에 제공한다면, 주식 시장에서는 기업의 소유권을 조각조각 나눠 주주에게 줍니다. 일부라도 기업이 지분을 갖고 있으면 주인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배당 등을 받을 수 있는 권리도 부여받게 됩니다.
다만 이런 위험은 있습니다. 주인으로 기업에 투자를 하는 형태이다 보니, 혹여 그 기업이 손실을 본다면 배당은 고사하고 주식 가치 하락이라는 평가손을 입을 수 있습니다. 기업이 망하게 되면 주식에 투자했던 돈도 모두 날리는 것이죠. 위험을 공동으로 부담하는 조건으로 주주가 됐기 때문이죠.
세 번째는 채권을 발행하는 경우입니다. 채권 발행도 IPO보다 더 문턱이 높습니다. 국가에서 발행하는 채권인 국고채가 안방마님 역할을 하는 시장인지라 웬만큼 신용도가 좋지 않으면 발행하기 힘든 이유가 큽니다. 우리나라는 더더욱 국채나 금융채(금융사가 발행한 채권) 위주의 시장이고 회사채 시장도 공기업과 같은 기업들의 비중이 높습니다. 일반 중소기업은 발행할 엄두조차 못 내죠.
그러나 채권 발행은 은행 대출보다 더 많은 자금을 조달받을 수 있습니다. 1000억 원 단위 채권 발행 규모도 드물지가 않죠. 개인 입장에서 봤을 때도 ‘기업이 망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안정적이면서 고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대형 채권 전문 투자자라면 채권 가격 변동에 따른 시세 차익을 수익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앞서서도 언급했다시피 우리나라 채권 시장에 나온 상품이 미국 등과 비교하면 다양하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회사채 시장이 잘 발달되어 있고 국채도 초단기채(Treasury bills), 중기채(Treasury note), 장기채(Treasury bond) 등 다양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미 국채에 대한 수요도 많아 환금성도 좋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0년 이상 장기채가 발행되긴 했지만 채 20년이 안됩니다. 20년 이상 장기 국채가 발행되기 시작한 것은 10년 정도죠. 회사채도 기업어음(CP) 같은 6개월짜리 할인채가 아닌 중장기채는 거래가 잘 되지 않습니다. SK 같은 대기업도 2022년 금리 인상시기 때 6~7%의 연이자율을 제시했음에도 수요자 구하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채권 시장은 주식 시장과 비교해 개인들의 참여가 부진했습니다. 기본 거래 단위가 10억 원일 정도로 기관 혹은 큰손 투자자들 위주의 시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증권사들이 채권을 1000원 단위로 잘라서 팔기 시작했습니다. 장내채권이라고 하는데, 덕분에 개인들도 채권을 얼마든지 사서 고정된 이자를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여기에 금리 상승은 채권 투자에 호기가 됐습니다. 금리가 오른다는 것은 채권 가격이 싸진다는 얘기가 됩니다. 싼 가격에 채권을 매입해 비교적 높은 수준의 이자율을 누릴 수 있게 됐죠. 따라서 금리가 상승하던 2022년, 2023년은 채권 투자의 적기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 불황에 대한 우려가 큰 지금도 채권 투자를 하기에 나쁘지 않은 시기입니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개인들의 채권 투자는 크게 늘었습니다. 금융투자협회가 운영하는 ‘채권정보센터’ 자료를 보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최근 5년 사이(2019~2024년) 개인 투자자들의 채권 거래량은 약 5배, 순매수 규모는 약 10배 정도 늘었습니다. 순매수 비율도 갑절이 됐습니다. 완연한 저금리 시기에 접어들기 전까지 개인들의 채권 투자 규모는 점진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주식과 비교해 장벽이 큰 것이 사실입니다. 하루에 몇십 %가 오르는 주식과 비교해 채권은 다이내믹하지 못합니다. 단기투자자 비율이 높은 한국 시장에서 매력도가 낮아 보이는 게 사실이죠.
또 채권 투자가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있습니다. 가격이 오르면 기대되는 배당액(물론 쥐꼬리 수준이지만)의 증가가 기대되는 주식과 달리 채권은 가격이 올라가면 이자수익률이 낮아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런 게 좋은 것인지, 안 좋은 것인지 판단하기 힘듭니다.
이런 단점에도 왜 채권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질까요? 중장기적으로 수익률 예측이 주식보다 용이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금리의 추이를 읽고 선제적으로 채권을 사고 판다면 차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금리 상승기에 채권 투자 수요가 늘어나는 이유는, 금리 하락기에 채권 가격 상승에 따른 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데 있습니다. 주식 시장에서 볼 수 있는 홈런 같은 수익률은 기대하기 힘들지만,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출루율을 꾸준히 높일 수 있습니다.
또 꾸준하게 따박따박 고정된 수익이 들어온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장기채의 경우 가격 하락의 위험이 있지만, 만기 때까지 예상할 수 있는 이자를 따박따박 받을 수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가치 하락은 나중에 생각하자고요)
앞서 기업들이 주식 시장과 채권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한다고 했는데, 이 둘 간의 차이는 얼마나 될까요? 기업들은 주식에서 더 많이 자금을 조달할까요?
숫자를 보기 전에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대규모’로 조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기업공개(IPO) 이후 추가로 자금을 조달받기 위해서는 유상증자를 해야 합니다. 주식을 추가로 발행해서 기존 주주에 배정하거나 새 주주를 모집하는 것이죠.
기업 입장에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기존 주주 입장에서는 달갑지가 않습니다. 유통 주식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가격이 떨어질 여지가 많아진다는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기존 주주들의 반발을 살 수가 있죠. 반면 채권 발행은 ‘내 빚’이 늘어나는 것이기에 주주들의 눈치를 덜 봐도 됩니다.
실제 채권시장에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 규모는 주식 시장보다 많습니다. 지난 2023년 기업들이 신규로 발행한 채권 규모는 202조 9000억 원 정도 됩니다. 이중 일반 사채는 78조 8000억 원가량 됩니다.
반면 주식시장에서 공모한 금액은 2023년 3조 8600억 원가량 됩니다. 유상증자 금약 25조 169억 원을 포함한다고 30조 원이 안됩니다. 회사채 시장의 일반 사채의 절반 규모입니다.
주식시장 시가총액과 이미 발행된 채권 시장 간의 규모는 어떨까요? 생각보다 차이가 적습니다. 지난 2023년 우리나라 상장 기업들의 시가총액 총합은 2558조 원가량인데, 국채를 포함한 전체 우리나라 채권 시장의 잔여금액은 2493조 원입니다. 주가 등락에 영향을 받는 주식시장과 달리 꾸준히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