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음악,책,영화를 알려준 최초의 애인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가진 직업은 '딸' 이었다.
응애- 하고 울면서 세상에 나왔더니 주위에서 '우리 딸' 이라고 부르더라고.
나는 남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딸이고, 그걸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사람, 사랑하는 여자 밖에 없다는 사실을 믿는다. 온갖 종류의 선물과 기쁨이 존재하지만, 딸이 아빠에게 선사하는 기쁨에 비견할 수 있을까? 물론 나는 남자가 아니기 때문에 반대의 감정 - 즉 딸로서 아빠에게 받는 사랑- 만 느낄 수 있지만 이 또한 벅찬 감동이기는 해도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이런 것만 봐도 부녀지간의 사랑은 아빠가 불리한 싸움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딸은 아빠에게는 마지막 애인이다.
아빠는 딸에게는 첫 번째 애인이다.
일단 딸이 태어나면 더 우선순위가 높은 여자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와이프나 여자친구가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딸과는 밀땅을 할 수 없는게 아빠라는 사람이다.
아빠는 무조건 희생하고 지고 참고 퍼준다. 오직 딸에게.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수 많은 사람들은 모두가 제 각각의 매력이 존재한다. 지나칠 정도로 흠결이 없는 남들이 다 좋아할만한 조건을 다 갖춘 그야말로 매력 폭탄을 맞은 운좋은 사람도 있고, 별다른 매력이 없어도 그럭저럭한 사람도 있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단점들이 수루둑 빽빽해도 한 두가지 확고한 장점으로 막아내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매력이 없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매력이 발견되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원래 매력은 스스로 '내가 좀 그렇다' 고 뽐내면 시들어버리는 꽃이라, 타인으로부터 발견되고 관리될 때 더 발산하고 생명력이 길어진다.
우리 아버지의 매력은 남편으로서 아내로부터는 그다지 발견 되지 못했다.
하지만 딸인 나에게는 아빠는 분명 매력적인 남자다.
어릴 때 학교 마치고 집에왔더니 낯선 아저씨들이 거실에서 거대한 기계를 조립하고 있었는데, 그 앞에서 아빠가 소년 같은 얼굴로 참견을 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 최초의 전축이 들어온 날이다. 아빠는 그 날 길 건너 세원백화점에 가서 비틀즈의 'yellow submarine' LP를 사가지고 왔다. (80년대의 백화점에는 크든 작든 음반 코너가 있었다.) 아빠는 경건하게 음악을 들었고, 나는 너무 어려서 아빠가 듣는 음악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이사를 갔는데, 그 집채 만한 전축은 갈 곳을 잃어 내 방으로 들어왔다. 작은 내 방의 절반을 차지하는 전축 때문에 나는 문을 열고 내 방에 들어가면 침대와 전축 사이의 비좁은 길을 통해 창이 나있는 책상까지 가서 책가방을 던지고 교복을 벗고 그리고 책 가방안에서 새로 산 테이푸를 꺼내 비닐을 벗기고 유리문을 열고 전축의 파워 버튼을 묵직하게 누른다. 그럼 그 큰 기계가 되살아나고 부드럽게 카세트 레코더의 현관이 열리면 그 속으로 쏙 하고 테이프를 밀어넣고 찰칵 하고 문을 닫은 뒤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볼륨을 올렸다. 음악은 그렇게 내 차지가 되었다.
내가 왜 카세트를 사게 되었는가 면밀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이 글을 쓰면서 기억해냈다.
전축이 내 방에 이사오고 나서도 한 참 동안 나는 그 친구를 무시했다. 일단은 버튼이 너무 많았고, 스피커 한 쪽만해도 거의 내 몸의 반정도 되는 거대한 크기때문에 부담스러운 룸메이트였다. 그러다가 어느 주말인가 아빠가 서점에 갈건데 같이 갈래 하고 물어 아무 생각없이 아빠 차를 타고 시내에 가서 책을 샀다. 돌아 나오는데 아빠가 멈칫 하더니 음악 좀 들을까- 하시고는 서점에 딸린 레코드 코너에 가서 Simon and Garfunkel's greatest Hits를 샀다. 아빠는 그걸 사고 차에 타자마자 비닐을 뜯고 카라디오에 테이프를 넣고 볼륨을 엄청 크게 올리더니 눈을 감고 음악을 들었다.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그 때 조수석에서 Bridge over troubled water, The Sound of silence, Scaborough Fair , America 같은 곡을 처음 듣게 된다.
그 뒤로 아빠를 흉내내어 카세트 테이프를 사는 취미가 생겼다. 아빠는 소유욕이 없는 사람으로, 아빠가 가진 카세트 라고 해봐야 10개 될까 말까. 차에서 하도 들어서 다외 울 지경이 되는 그런 팝들 뿐이었지만, 나는 달랐다. 중학교 졸업하기 전까지 단골 레코드방 언니의 VIP가 되어 책장 두 칸을 테이프로 채웠다. 고교 진학 후 포터블 CDP를 사고, CD로 갈아타면서 테이프는 엄마가 집 너저분하다고 갖다버리고, 집안 형편이 다시 좀 피면서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되어 룸메나 다름없었던 전축은 거실로 새 살림을 채려 나가고 우리는 멀어졌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에는 CDP 없이 아무데도 안가는 아이었고, 대학에 와서는 음악하는 남자친구들과 연애를 하고, 그의 방대한 콜렉션을 빌려듣고, 레코드점에서 음반 고르며 데이트하고 , 라이브 클럽에 다니고 좋아하는 뮤지션의 내한 공연을 갔다. 지금도 나는 매일 음반 1장 이상을 듣는다. 하루도 음악을 듣지 않는 날이란 없다. 집에 TV가 없기 때문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음악 듣는 일이고, 자기 전에 하는 일도 음악 듣는 일이다. 여전히 음악에 대한 준비 없이 외출을 하는 일은 없다.
아빠는 내게 음악 듣는 맛을 알려준 최초의 애인이고, 내게 최고급 전축을 사준 남자다.
내가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만약 그가 나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세대였으면, 예술가가 되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빠는 가난하고 혹독한 환경에 던져졌고, 처복이 없었고, 그렇다고 자기 욕심을 차리기에는 마음이 여렸다.
그런 그를 사랑하기에, 딸복이 터진 남자로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나는 열심히 살았다.
나의 아버지는 사람의 인품은 '나고 자란 배경' 과 크게 상관이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의 증인 중 한 사람이다. 아버지는 대학을 다닌 적이 없고, 중고교도 검정고시로 패스한 사람이다. 그래서 '교양과목'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런 아빠에게 교양을 길러준 것은 책과 영화.
지금도 서점과 도서관에 즐겨 가는 습관은 버리지 않고 있고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신다.
명문대학 출신, 명문가 출신이여도 좋은 작품 고르는 안목이 없는 사람도 수두룩빽빽하고 예술을 오로지 잘난척의 도구 삼는 천박한 사람도 많다. 아빠는 누가 좋다고 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본대로 느낀대로 문화예술을 즐길 줄 아는 멋쟁이다. 체계적으로 배우거나 누군가로부터 크게 영향받은 것이 없기 때문에 감상에 솔직하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다. 대학에 와서 문학을 전공하고 독일과 일본에서 유학하고 아마추어 예술과들과 교제하면서 '이 정도는 봐줘야 어디가서 안꿀리는 법' 부터 배우기 시작한 나와는 대조적인 사람이다.
아버지는 얼마 전에 나에게 박웅현씨가 쓴 '여덟 단어' 라는 책을 사서 읽고는 내게 일독을 권했다. 당연히 이런 류의 자기개발서는 내가 가장 싫어하기 때문에 읽지 않고 버텨왔다. 이번에 아버지가 기차를 타러가는 내 가방에 이 책을 넣고는 올라가는 동안 읽어라 하시는데 차마 거절할 수 없기도 하고 기차에서 달리 할 일도 없어서 그 책을 읽었다. 책 내용 중에는 귀담아 들을 말도 있지만 대부분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들이어서 딱히 큰 감동은 없었다.
아빠는 서울에 도착한 내게 책 읽어보았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스무살 때 이 책을 읽었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 ' 70대 초반의 남자가 하는 회고 치고 퍽 멋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보다 한참은 어린 중년의 남자가 그것도 이십대 파릇파릇한 청년을 상대로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라는 식의 잘난척을 읽고서 저런 감상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매사 다른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가 마음에 스며 있는 남자다.
아버지의 그런 태도를 보면서 반대로 오만하기 짝이없는 자신을 반성하고 그 책을 한번 더 읽었다. 그런 후에 읽히는 활자는 쉽지 않은 실천이고, 내가 안다고 착각했지만 실제로는 모르는 것들로 가득차 있었다. 나는 아직 더 배울 것도, 갈길도 많이 남아있는 철부지일 따름이다.
아버지는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항상 내게 많은 가르침과 영향을 준다.
+)
내가 아빠에게 인생 최고의 선물이라고 자신있게 쓸 수 있는건 내가 아빠에게 그런 존재라고 아빠가 어릴 적 부터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딸이고, 누군가는 아빠겠다. 나와 마찬가지로 각자의 존재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느끼길 바란다.
사이가 좋든 나쁘든, 아빠와 딸은 죽을 때까지 헤어질 일 없는 애인사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남자는 영원히 늙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