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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gon Huh Aug 27. 2017

번외) 천재란 무엇인가

일단 나는 아니다. 

형제와 주말 오전 커피 잔 앞에 두고 담소 나누다 문득 떠오른 화두다. 


살다보면  천재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드물게 진짜 천재도 있고, 대부분 이도저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다. 

천재를 싫어할 사람은 별로 없겠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극소수의 천재가 이룩해 놓은 성취에 업혀가니까 말이다. 만약 누군가 내가 천재가 되고 싶으냐 물으면 나는 매몰차게 거절하고 달아날거다. 나는 내가 이뤄놓은 성취를 생면부지의 남들과 나눌 생각이 없다. 내 가족과 친한 친구들과 나누는 것만으로 족하다. 철저하게 평범한 범인일 따름이다. 


쇼펜하우어는 천재를 '비범함'으로 보았다.



천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존재하지만 내가 가장 공감하는 것을 소개해보자면
'재능에 있어서 물리적인 시간의 노력을 뛰어넘는 자' 이다. 


남들은 10년은 배워야 할 공부를 1년안에 마친다던지, 
20년은 살아봐야 알 법한 삶의 진리를 이미 미취학 아동때 깨닫는다던지,

춤,음악,그림,문학,수학,과학.... 다양한 분야의 학습은 물리적인 시간을 통한 훈련과 습득의 과정이 필요한데 이 지루한 과정을 압축해서 뛰어넘어버리는, 때로는 거의 배운 것이 없어도 알고 있는 듯한 사람들을 우리는 천재라고 부른다. 


천성이 삐딱선을 타는 나는 곧 반대의 사상을 펼쳐본다. 

그럼 무조건 어린 사람들만 천재가 될 수 있는 것일까?

나이 든 사람은 천재가 될 수 없나? 살만큼 살아서 자기 분야의 일대를 이룬 사람은, 노력으로 쌓아올려서 긴 시간 숙련된 기술이 있는 사람은, 작은 돈 꾸준히 모아서 부자가 된 사람은 천재라는 경쟁에서는 일찌감치 탈락한 둔재가 되고 마는 것일까? 천재는 오로지 탄생한지 얼마 안된 신선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한 생명력 지극히 짧고 대게는 자기 재능에 짓눌려 개인 삶에 있어서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는 그런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이름이어야 할까? 


시간을 뛰어넘는 사람이 천재라면, 나이 든 사람의 입장에서 시간을 뛰어넘는 다는 것은 과연 무얼 의미하는가. 나는 지금까지 알고 지내는 몇 몇의 나이든 사람들을 보면서 해답을 찾고자 노력해본다.


일부 나이든 사람들은 나이가 들었지만 마치 청년같은 느낌을 준다.

이 사람들은 자기의 출신,출생년도와 상관없이 도전을 즐기고, 처음 만나는 상대와 대상에 대해서 호기심과 두려움을 가지고 접근한다. 이 사람들이 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이 세상에 새로울 것도, 새로울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겠지만 애초에 그런 '넘겨짚기'를 모르는 듯 행동한다.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며, 대신 조금만 겪어봐도 파악과 판단이 빠르다. 이 사람들은 자기가 지금까지 '무얼 해왔느냐' 보다는 '앞으로 무엇을 할지'가 더 중요하고, 그 일이 나에게 어떤 결과를 주느냐 보다 '그 과정이 얼마나 즐거운지'가 더 중요하다. 이 사람들은 늙었다고 표현하기가 매우 어렵고, 어른이기는 해도 순수한 젊음이 느껴지고, 풋풋한 표정 뒤에는 노련한 실력이 숨길 수 없이 드러나 보인다. 


이 사람들의 존재는 다섯살에 미적분을 완성한 수학천재나, 최연소의 나이로 대학에 입학한 물리학자만큼 언론에서 떠들어댈 만큼 특별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지만, 내 생각엔 세월 속에 마음의 노화를 비껴간, 마음이 젊은 이런 사람들의 존재가 너무나 귀중하고 이 들이야말로 시간을 뛰어넘은 천재들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이를 먹었으니까 그 나이에 걸맞는 행동을 하라고, 

그 행동에 걸맞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비범하다고 하는데 

어린 나이에 세월을 뛰어넘은 실력을 보여주는 것은 찬양하면서 

늙은 나이에 세월을 비껴간 순수함을 간직하는 것에 대해서는 왜 걸맞는 존경이 없는지?


그런 사람들의 존재를 더 드러내고 찬양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가진다.

요즘처럼 꼰대의 경계가 흐려지고 누구나 어설픈 실력자 행세를 해대며 너도나도 자기 가진 작은 권력 하나라도 꺼내어 휘두르지 못해 안달난 시대일수록, 시간의 위력을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마치 자기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갓 입문한 인턴처럼 성실하게 배우고 공부하고 발로 뛰는 어른의 존재는 보존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 간혹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존재가 얼마나 가치로운지 저자거리에서 크게 외쳐 알리고 싶다. 

어쩌면 우리는 '제대로 된 어른'을 너무나 당연한 존재로 여기면서도 막상 그런 사람은 잘 없단는 사실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살아가는 것으로 '나도 그런 노력을 하지 않음'에 대한 면죄부를 발행하는 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입으로 '나는 천재요' 라고 말할 처지도 못되고, 앞서 밝힌 듯이 천재는 되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삶에 있어서 늦터지는 어른이 되어보고싶기는 하다. 그러니까 오십 육십 쯤 되었을 때는 말이다. 

주름으로 뒤덮힌 얼굴과 새어버린 머리카락을 곱게 빗어 넘기고 깔끔한 옷차림으로 두둑한 지갑이 없으면 가족 이외에는 자발적으로 누가 만나주지도 않는 그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궁금하고 신기한 것 투성이인 세상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서 공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나누고 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왜 우리가 인생을 평범하게 살아야 하는지는 한번도 물어본 적이 없고, 우리는 평범함 이라는 정의에 대해서도 각자 나름의 생각을 발전시켜볼 기회가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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