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살(buy) 수 있어요, 다 살 (live) 수 있어요.
어제는 모처럼 평일의 여유를 부리며 늦게 일어나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영화를 보러갔다.
영화는 다큐 <안도타다오> 였고, 좋아할만한 요소들이 가득한, 요즘의 나에 맞춤형 콘텐츠였다.
이 영화를 보러 가는 동안에, 그간의 힘듬. 괴로움. 탈출에 대한 욕망. 희미한 비전 같은 것을 이야기 했는데.
HS언니는 운전을 하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요즘의 아이들에게 죽도록 힘든 일은 트렌드가 아닌것 같아. 적게 벌더라도 좋아하는 일 하며 평온하게 살아. 맨날 밤새워 야근하고 치열하게 살았던 것도 다 지나간 이야기지, 요새 애들이 누가 그렇게 일한다니.'
단순한 대꾸였지만, 최근 읽었던 그 어떤 책보다 깊은 통찰력이 스쳤다.
과거,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번다는 컨셉 자체를 이해 못하고 부정했던 시대를 살아온 나다.
그런데 유튜브 앞에서 치킨을 먹으면서, 장난감 소개를 하면서도 잘만 먹고 잘만 사는 숱한 젊음들을 보면서
내 생각이 낡았음을 인정한다.
유튜버가 되겠다는 꿈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돈을 벌수 있고.
다 살(buy) 수 있고, 다 살아(live) 진다는 이야기에 문득 눈이 떠진다.
에라이 까짓거. 한번 사는 인생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YOLO를 이야기 하지만
그 실천이 참 막막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나같은 세대의 사람들 보다도
요새 20대들은 그 방법을 참 영리하게 터득한 것 같다.
우선은, 적게 벌어도 괜찮다는 거다.
적게 벌면 적게 쓰면 그만인 것을. 어차피 악마같은 고생을 해서 얼마간 더 보탠다고 해서
누구나 가지고 싶어하는 강남의 아파트 같은건 애저녁에 글렀다.
그러니까 그냥, 좋아하는 일 하면서 적당히 벌고, 적당히 즐기고, 적당한 곳에 살자.
미래에는 희망이 없어보이고, 요새 젊은 이들은 투지가 없어보이고, 그래서 좀 모자라 보인다고들 기성세대는 비판한다.
근데.
원래 행복한 사람은 좀 바보처럼 보이는 사람이잖아.
<안도타다오>는 YOLO를 물론 아주 다른 식으로 해석하고 실천한 세대의 주인공이다.
40년 대에 태어나서 학위하나 없이 맨몸으로 거장의 자리까지 간, 복서 출신의 건축가는
하루 하루 링 위에서 투쟁해 온 결과로 오늘의 안도 타다오가 되었다.
다큐를 다 보고 나면,
그 사람이 한번도 돈이나 성공을 위해서 싸운 적은 없다는 느낌.
그냥 한번 사는 인생, 좋아하는 걸 해버리자. 는 느낌으로 매순간 자신을 내 던졌다.
요새 아이들 - 그래 이런말 하면 꼰대같지만.. 난 꼰대니까- 이 자기가 옳다고 믿는 일에 매진하는 것 자체에
기성세대는 반감을 쉽게 가지는 것 같다.
재미있고 좋아하는 일이 , 돈이 될리 없잖아?
라는 철저히 낡은 생각들.
하지만 거장의 위치에 오른 수많은 위인들은 왜들 그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미친듯이 하다가 보니 어느 순간 운이 트여 그 자리까지 간 사람들 뿐일까.
그게 무슨 일이든,
좋아하는 일이라면 성의를 다할 수 있고,
자발적으로 매진할 수 있고,
질리지 않고 반복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계속해서 더 많은 유튜버와 리뷰어와 블로거를 양산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각자 잠재되어 있던 자신이 탐구할 테마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오랜, 어쩌면 10년도 더 넘은 생각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웹 공간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를 기록하고,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그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드는데 가치가 있는지...
나는 그 일이 정말로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살아도 괜찮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살아야 그나마 희망이 있다.
인생의 팔할이 노동이고 일인데. 재미없고 지치기만 하면 우리 인생 너무 불쌍하잖아.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뭔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