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땡초 3개, 파프리카 1개
- 오랜만에 느낀 소중한 느낌
냉장고가 온 이후 배민을 거의 끊고, 식재료를 구매해서 요리를 해 먹기 시작했다. 집 근처에 홈플러스가 아주 가까이 있어 벌써 몇 번을 이용한 상태다.
새로 이사 온 아파트가 재건축 연한이 다돼가는 구축 아파트여서, 야채가게, 슈퍼, 횟집, 족발집, 치킨집, 떡집 등이 아파트 상가에 있었지만 노후화 된 모습에 왠지 발길이 닿지 않았다. 근처 대형마트가 훨씬 쾌적하면서 익숙하고 편리했다.
어느 평범한 퇴근길, 매콤한 낙지덮밥이 먹고 싶어 평소와 같이 홈플러스에 들렀다. 양념 낙지와 과일, 이런저런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원래는 낙지덮밥을 먹으려고 쌈채소를 사지 않았는데, 쌈이 갑자기 땡기는 것이 아닌가.
아파트 초입에 야채가게가 있었다. 슬쩍 지나치며 물색해보았지만, 쌈채소(상추, 깻잎)는 보이지 않았다. 주인 할아버지가 계시길래 물어보았다.
- "상추, 깻잎 있나요?"
- "얼마치 드릴까요?"
-...................................
(흠, 당황스러워. 늘 마트에는 소포장되어 가격표가 붙어있었는데, 여긴 아닌가? 쌈채소 1봉이 얼마였더라? 2천 원? 3천 원?..... 고민하다가...) "혼자 먹을 만큼 아주 조금요."
그랬더니, 깻잎 1망은 천 원이라고 하시며, 상추를 가지러 안쪽 냉장창고 쪽으로 들어가신다. 고개를 빼어 살펴보니, 박스에서 한 움큼씩 빼서 비닐봉지로 담으신다. 금세 작은 검은 비닐봉지가 불룩해졌다.
- (??) "얼마예요?"
- "2천 원이에요. 땡초 3개 넣었어요."
- "감사합니다."
비슷한 일은 또 있었다. 다른 인근 야채가게에서 노란색 파프리카를 살 때였다. 다행히 '2개 천 원'이라고 수기로 적힌 가격표가 있었다. 신선해 보이는 파프리카 2개를 고르고 주인아주머니께 천 원을 내어 계산을 했다. 그러자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주시며 말씀하셨다.
- "1개 더 가져가요."
아, 편리함 속에 그동안 오래 잊고 있었구나. '인심'이라는 그 따뜻한 말.
평소와 달리 요리를 먹기 전부터 기분이 좋고 뱃속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돌아와 파프리카를 듬뿍 넣은 낙지볶음 요리를 해서 쌈을 싸 먹었다. 그리곤 평소 즐겨먹진 않았지만 주신 청양고추를 달달한 쌈장에 푹 찍어 먹었다. 그 알싸한 매운 맛이 한 번 더 온몸에 온기를 가져다주었다.
앞으로는 종종 들리게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