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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Oct 09. 2022

키즈카페는 사랑입니다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108일째

10월 9일 일요일 종일 비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일단 새벽에 둘째가 자주 깨서 보채는 통에 숙면을 취하지 못했고, 금요일에 수영을 하다가 목을 삐끗했던 것이 여전히 낫지 않았다. 원래 다니던 동네 한의원이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해서 새로운 곳을 가봤는데 첫 진료이고 통증이 심해서 2시간이나 걸렸다.


다행히 내가 치료를 받고 오는 사이 아내는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아이 둘을 데리고 있었다. 그리고 원래 오늘 오후에는 내가 첫째를 데리고 야구장에 갈 예정이었다. 그때까지만 잘 버티면 좀 쉴 수 있다는 기대감이 아마 아내에게 더 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날씨가 문제였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그칠 줄을 몰랐고 결국 야구경기는 취소되고 말았다.


그 와중에 애 둘을 집안에서 데리고 있는 건 점점 버거워지고 있었다. 첫째는 요즘 넘버블럭스의 정사각형 시리즈를 좋아하는데 그 숫자들은 가로 세로가 같아야 해서 25, 36, 49, 64 등 모두 제곱수들이다. 첫째는 아내의 도움을 받으며 오전에 1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12x12인 144블록까지 그릴 때쯤이 되자 우리들의 체력도 거의 방전이 되고 말았다. 오전에는 첫째와 둘째가 모두 기분이 좋아서 1x1은 1이었는데 기분이 약간 안 좋아지자 2x2가 되었고 한 명이 울어재끼자 다른 한 명이 소리를 지르며 3x3인 9배로 힘들어졌다.


결국 야구장을 못 가도 내가 첫째를 데리고 외출을 하기로 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쇼핑몰에 있는 키즈카페를 가자고 했더니 첫째는 다행히 흔쾌히 따라나섰다. 키즈카페에 왔더니 정원이 꽉 차 있었고 대기번호 28번을 받았다. 이 정도면 대략 어느 정도 기다리느냐고 물었더니 2시간은 생각해야 된단다. 키즈카페는 아이를 놀게 하고 부모는 놀이시설이 보이는 곳에서 쉴 수 있으며, 식사와 커피까지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신체활동을 마음껏 하고 아이의 체력도 쪽 빼놓을 수가 있다. 실내니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상관없다. 그러니 이렇게 비가 오는 3일 연휴의 둘째 날인 오늘 이 동네 부모들이 죄다 여기로 몰려드는 게 당연했다.


대기가 있다고 그냥 다시 돌아갈 순 없었으므로 쇼핑몰 안에서 여기저기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시간을 때웠다. 카페도 가고 오락실도 가고 내일 둘째 백일상에 올릴 과일도 샀다. 돌아다니기도 지쳐서 도너츠를 하나 사서 차에서 먹고 있을 무렵 드디어 문자가 왔다. 예상보다 이른 한 시간 반 만에 키즈카페 입성!


입장 후에 처음 5분 정도는 우물쭈물하는 첫째를 데리고 다니며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고 그 뒤론 내 역할은 점점 없어졌다. 첫째는 옆에 따라다니기도 벅찰 만큼 쉴 새 없이 돌아다니고 처음 보는 애한테 몇 살인지 물어서 5살이면 같이 놀기도 했다. 혹시 몰라서 주변을 맴돌다가 더 이상 관여할 필요가 없겠다 싶어 아이가 멀찍이 보이는 곳에서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하며 쉴 수 있었다. 중간중간 시야에 보이지 않으면 어디 있나 찾아갔는데 매번 잘 놀고 있었다. 아주 가끔 나를 찾아와서 물을 먹고는 다시 갔다.


사실 아내와 나는 어젯밤에 최근 첫째가 떼를 많이 쓰고 행동 조절 능력이 떨어진 것이 동생이 태어난 뒤의 퇴행 반응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나는 오늘 그 생각을 지울 수 있었다. 거의 1년 전에 이곳에 왔을 때보다 모든 면에서 월등히 성장한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몰라 구석에 앉아있지도, 방방이를 타는 무리에 끼지 못해 겉돌지도, 볼풀에서 공을 던져서 맞히는 게임 화면에만 몰두해 거기에만 앉아있지도 않았다. 입장한 지 2시간 반이 지났을 때쯤 여전히 노느라 무아지경에 빠진 아이에게 가서 저녁을 먹자고 하니까 시계를 보더니 7시 50분에 먹겠다고 한다. 안된다고 할 이유도 딱히 없어서 그러라고 했다.


결국 저녁식사까지 야무지게 하고 나오니까 8시 반이 되어 있었다. 노느라 체력을 쏙 빼놔서 밥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나오면서 계산을 하니까 총 4시간에 밥값까지 해서 추가 요금이 2만 4천 원이 나왔다. 처음에 들어갈 때 낸 돈을 합치면 거의 5만 원 돈을 썼지만 그래도 이 정도 뽕 뽑았으면 아깝지는 않다. 나는 그 사이 일기도 다 썼고 오늘 첫째는 분명 일찍 잘 테니 아내와 맥주 한 잔 하면서 여유로운 밤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역시 사람이 가장 돈을 기꺼이 지불하는 대상은 시간과 자유다.


그나저나 키즈카페라는 곳을 생각해낸 사람은 누굴까? 어쨌든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키즈카페가 세계화된다면 아마 그분은 노벨 평화상을 받을 것이다. 키즈카페 사장님들 번창하세요. 키즈카페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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