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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바스 컬처뉴스 Sep 08. 2017

히딩크는 감독이 아니라
축구협회 회장으로 모셔라

Art & Culture - 펜바스 컬처뉴스

물론 축구협회 때문에 '촛불'을 드는 것은 해외토픽에나 나올법한 희대의 사건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 팬들은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히딩크 감독을 모셔오고, 적폐 축구협회를 청산해달라'는 청원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축구협회는 이러한 팬들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스코틀랜드 선수 출신으로 리버풀의 전설적인 감독인 빌 쉔클리 (1913-1981)은 그의 업적에 걸맞은 명언을 하나 남겼다. "어떤 사람들은 축구가 삶과 죽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단연컨대, 축구는 그 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다" FIFA는 그 어떠한 국제기구와도 견줄만한 규모를 가진 세계 최대 스포츠협회이며, 디디에 드록바라는 아프리카의 축구 스타는 혼자서의 힘으로 전쟁을 막아섰던 적이 있다. 2002년 월드컵이 없었다면 광화문에서 누가 촛불을 들 생각이나 했을까? 그러니까 축구가 대한민국 현대사를 바꿔 놓았다는 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며, 빌 쉔클리의 말에는 어느 정도 무게감이 생기는 것이다.


사진출처: JTBC


최근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최종예선을 통해 보여준 모습은 실망 그 자체였다. 신태용 감독은 TV 출연까지 감행하며 '월드컵 진출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공격이 실종된 경기 내용을 해명했다. 월드컵 진출을 위해 유효슈팅 수를 줄였다는 논리가 어떻게 성립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지지 않는 경기를 했어야 했다'라는 말이 정말 명쾌한 해답이었을까? 만약 시리아가 마지막 경기에서 이란을 상대로 한 골을 더 넣었더라면 우리는 '지지 않는 경기'를 하고서도 자력 진출에 실패했을 텐데, 그때도 TV에나와 똑같이 말할 수 있었을까?


신태용 감독 개인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고작 2 경기를 치른 감독에 대해서의 평가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팬들이 진짜 화가 나는 것은 어쩌다 한국 축구가 비기고도 헹가래를 펼쳐야 하는 지점까지 추락했느냐는 것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모두가 해냈다고' 9회 연속 월드컵 진출을 자축했지만 이를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을 차가움 그 자체였다. 월드컵 16강, 8강을 외쳐야 할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진출 여부를 놓고 흔들리는 모습이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일까? 어째서 한국 축구는이토록 제자리걸음, 아니 퇴보를 거듭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단순히 2002년의 향수를 갖고 '히딩크 매직'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시스템의 총체적인 개편인 것이다. 대한민국 축구의 큰 획을 그은 박지성, 지금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한 손흥민 모두 이 대한민국 시스템 밖에서 성장한 이들이다. 이들이 선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한축구협회는 유소년 육성 시스템, K리그 활성화, 국가대표팀 운영은 물론 심지어 상암 월드컵경기장 잔디 관리까지 실패했다. 잔디 하나 똑바로 관리하지 못하는 협회가 도대체 무슨 변명거리가 그토록 많다는 말인가?


팬들의 눈은 높아졌다. 단순히 축구 실력에 대한 기대감뿐만 아니라 행정과 소통 등 모든 면에 있어서 축구에 대한 지식이 협회랑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높아졌다. 이제는 협회의 언론플레이까지 모두 꿰뚫어 보고 있다. 그런 와중에 김호곤 부회장의 '불쾌한' 발언은 팬들의 분노에 정점을 찍었다.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히딩크 감독설에 "불쾌하고, 기가 차다"라고 표현했다. 팬들의 반응은 예상 그대로였다. "감히 국민 따위가 축구협회를 불쾌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어쩌면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은 히딩크 감독의 감독 부임이 아닌 대한축구협회 회장 부임일지도 모른다. 대한축구협회는 지식이 바닥났고, 시스템의 방향성을 잃었으며, 이제는 소통하는 법 또한 잃었다. 이제는 선수와 감독이 아니라 누구의 잘못 때문에 한국 축구가 퇴보하였는지가 매우 분명해졌다. 다시 말해, 축구협회는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기술적으로, 행정적으로, 사업적으로 모두 실패하고 있으며 그 결과 자질 있는 선수들과 젊은 감독은 그저 희생양이 되어 총알받이를 하고 있는 듯보인다.


FIFA 또한 오랫동안 집권했던 블래터 회장이 물러난 뒤 새로운 시작을 선보이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각종 부패 스캔들의 여파가 남아있지만, 표면적으로는 대대적인 변화를 겪는 중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히딩크 감독과 같은 지식과 경험으로 무장한 은퇴한 외부의 명장이 행정적인 변화를 지휘하는 것이다. 축구 팬들 누구도 당장 2018년 월드컵에서 성적을 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팬들이 정말 보고 싶은 것은 단지 변화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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