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실패에 건배
화요일이 투표일이었고 4일에 걸쳐 개표를 했다.
토요일 점심준비를 하는데
길에서 탄성이 터져나왔고
지나가던 차들이 클락션을 울리기 시작했다.
얼른 리프레쉬 버튼을 눌렀더니
바이든이 당선되었다는 뉴스가 올라왔다.
나를 가장 먼저 찾아온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지치지도 않고 우리를 학대해오던
마구잡이 폭력에서
드디어 벗어난다는 생각을 하니
기쁘고 또 마음이 놓였다.
이제 우리는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대당하는 아이들과 가족들이
폭력가장이 잡혀갈때
비로서야 숨을 내쉬며 안심하는 그 장면처럼.
세계최강대국 민주주의의 선구자라 불리는
미국의 국민이 21세기에 느끼는 마음이
이런것일 줄 누가 알았을까?
4년전 트럼프가 당선될때만 해도
설마 이게 꿈인가? 전국민 몰카인가??
기가 막혔지만 우리는 탄식하며 그를 받아들였다.
민주주의는 그런거니까.
남편은 그날 두 눈에서 눈물을 떨구며 울었다.
나보다도 훨씬 일찍 미국에 이민을 와서
미국인으로 살고 있던 그에게는
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현실이었다.
그리고 지난 4년간 미국 국민과
거주자들은 대통령이라는 자로부터
말도 안되는 거짓말, 따돌림, 우기기,
책임회피, 속임수등의 일진 짓거리에
조리돌림을 당했다.
사실상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미국만
대표한다고 하기에는 영향력이 커서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봐야한다.
트럼프가 한참 선거운동을 할때쯤
캘리포냐에 살고 있던 우리가족은
에어비앤비로 뉴욕에 여행을 왔었는데
빨래를 하려고 찾은 빨래방에서
남편과 어떤 할머니 사이 작은 시비가 붙었다.
누가 봐도 여기서 자라난게 틀림없는
영어 악센트를 가진 남편에게 백인 할머니가
"Welcome to America" 라고 등뒤에서 외쳤다.
결국 큰 싸움으로 번졌고
다혈질인 남편을 바깥으로 밀어내야 했다.
다인종 도시인 샌프란시스코, 뉴욕 위주로
생활을 해왔던 우리는 이런 일들을 이전에는
별로 겪은적이 없었다.
트럼프 등장 후 그들은 내 눈 앞에
내 귓가에 내 동네 길거리에
점차적으로 번져나기 시작했다.
인종차별을 당해서 억울했다기 보다는
험악하게 변해가는 현실에 탄식하고 화가 났다.
사람들이 미웠고 인간의 착한 본성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트럼프가 동화속 나쁜 마법사처럼 등장해
세상에 풀어놓은 독약은
미친듯이 번식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먹었다.
사람들은 그 어느때보다 심하게 편을 갈라 싸우기 시작했다.
백인대 유색인종, 여성대 남성, 성소수자대 이성애자
쪼개질대로 쪼개져서 서로를 격렬하게 미워했다.
폭력이 난무했고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나도 폭력으로 무장하는 수 밖에
방법이 없어보이기 시작했다.
대통령 당선 발표 후
길에 나갔더니
사람들이 모두 웃고 있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도
웃는 얼굴이 적나라하게 보일 정도로
활짝 웃는다.
길에서 마주치는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고
손을 흔들고 기쁨을 감추지 않는다.
내 마음속 어두운 구름처럼 자리잡았던 미움이
걷혀지는 기분이 들었다.
2020년 태어나서 가장 끔찍했던 한 해.
마지막에 동화책처럼 희망을 선물해주어 고맙다.
미움은 아무것도 이길 수 없고
인간의 기본적 품위를 지킬 수 있는
미래를 살 것이라는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