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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요 Apr 05. 2023

고칠 수 없는 글자

책상머리상념 #1.

타자기는 키보드와 달라서, 오타가 나면 지울 수 없다. 백스페이스키가 있지만 그건 오타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오타가 난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밖에 하지 못한다.


그래서 타자기로 긴 글을 쓰려면 숙련된 노련함과 정말 많은 집중이 필요하다.


A4용지 반절 이상의 긴 글을 정성을 다해 쓰다가 아차, 오타가 났다. 분주하던 손이 멈칫. 타각타각 끊임없이 치던 타자소리가 멈추고 책상 위에 정적이 흐른다. ...새 종이를 넣고 다시 쓸까?


오타가 난 대로 두기로 한다. 다시 철컥철컥 종이 위에 글자를 찍어나간다. 이 한 장을 끝까지 완성하기로 한다.


고칠 수 없는 그 글자를 들여다보기를 그만하고, 그 다음 문장을 잘 쓰는데 집중한다.


띵- 철컥. 종이의 끝에 다다라 울리는 작은 종소리와 함께 마지막 문장을 완성하고, 타자기에서 종이를 빼고, 긴 글을 감상했다.


오타 없이 깨끗한 한 장을 완성했으면 좋았을걸하는 아쉬움과, 그러나 애정을 담아 써내려간 문장들의 아름다움에 소중히 그 한 장을 갈무리한다.


다음엔 뭘 써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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