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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요 Jun 18. 2019

콘트라베이스와 함께 취미음악 10년

이것은 콘트라베이스라는, 흔치않은 악기를 10년동안 하며 쌓은 이야기

나는 콘트라베이스를 오케스트라에서 10년째 연주하고 있다. 그러나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고, 본업이 따로 있는 아마추어 음악가이다. 악기를 취미, 혹은 취미 그 이상으로 10년간 이어오면서 받았던 질문들을 정리해보았다. 


연주하다 생긴 에피소드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음악을 취미로 꾸준히 오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꿀팁을 조금씩 풀어보고자 한다. 


오케스트라 프로필 B컷사진. 벌써 5년전

#1. 언제부터 악기를?

5살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고2때까지 피아노 학원에 다녔는데, 오랫동안 피아노를 그만두지 않고 재밌게 친 이유는 "진도나 실력에 연연하지 않고 즐기면서 치게 해주면 좋겠다"고 학원 선생님에게 당부한 엄마 덕분이었다. 그래서 피아노를 곧잘 치긴 하지만 7년 배운만큼 뛰어난 실력은 아니다. 테크닉은 별로지만 절대음감과 약간의 작곡센스를 얻었다.


★절대!★ 진도에 연연하지 않기를 바란다. "체르니 30까지 치게 해주세요"는 정말 아무 쓸모가 없다. 교본 빨리 나간다고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니고, 전공할게 아니라면 기교를 늘리기보다 감수성과 음악을 즐기는 법을 키우는게 좋다. 클래식 말고 재즈나 밴드음악을 해보고싶다면, 실용음악학원에서 배우자. 코드진행을 배울 수 있다.


#2. 콘트라베이스는 어쩌다가?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들어갔다. 혼자하는 음악이 아닌 여럿이서 만드는 음악이 하고싶었다. 피아노는 오케스트라 편성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악기를 배워야 했는데, 배우고싶었던 바이올린이나 첼로는 이미 사람이 많았다. 그러던 중 한 선배가 아래와 같이 제안을 했다.


"너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아무도 안 쓰는 악기가 한 대 있는데 이 악기를 한다면


✔️학교악기를 쓰면 되니 개인적으로 악기를 살 필요가 없다.

✔️레슨선생님을 오늘 바로 연결해줄 수 있다.

✔️신입단원은 수습을 거쳐야하지만 이번해 연주회에 바로 세워주겠다. 

✔️흔치 않은 악기라 다른 학교로 객원다니며 네트워킹 할 수 있다."


라는 말에 '그럼 해보겠다'하니, 구석에 누워있는 커다란 무언가를 가리키며 저것이라 했다. 무시무시한 덩치(195cm)에 잠시 움찔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해볼 기회가 없는 악기란 생각이 들었다. 바이올린이나 첼로는 학원도 많고 레슨선생님들도 많지만 콘트라베이스는 아니니까.

그렇게 시작한 것이 벌써 10년째 하고 있다. 그 동안 4개의 오케스트라를 거쳤고, 해본 곡 수를 세는 것도 이젠 그만뒀다(사실 도중에 까먹었다). 어쩌다 우연히 시작한 악기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다.

요즘은 클래식에 국한되지않고 재즈 베이스, 베이스 기타까지 넓히고 있다. 

콘트라베이스는 클래식과 재즈에도 사용되고 있다. 같은 악기로 연주하지만 클래식은 주로 활을 사용하고, 재즈는 손으로 뜯는 피치카토 주법을 사용한다. 클래식은 정해진 악보를 보며 연주하지만, 재즈는 코드를 보고 즉흥적으로 연주한다. 한 악기로 두 가지 음악을 할 수 있다니! 


게다가 콘트라베이스를 가로로 눕히면 베이스 기타와 같다. 사내 밴드에 키보드로 합류했지만, 베이스 주자가 없어서 얼떨결에 야매로(...) 베이스기타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세로로 연주하는 것과 가로로 연주하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어쿠스틱과 전자음악의 차이도 컸다. 어찌저찌 밴드공연을 해냈지만, 생각보다 베이스기타만의 테크닉이 굉장히 다양해서 정식으로 배워볼까 생각 중이다.


참 여러모로 팔색조같은 악기다. #베이스만세


#3. 질문은 아니지만 콘트라베이스 관련 에피소드들

에피소드 1) 선배의 제안 그 이후...

아, 그 선배가 제안했던 내용은 대체로 맞았으나 학교 바깥으로 왕성한 연주활동을 시작하면서 나는 결국 내 개인악기를 샀다. 나중에 "나한테 맞는 악기 고르기"에 대해 다루며 추가하겠지만, 악기별로 가지고 있는 가격대가 다르다. 베이스는 연주용으로 쓸만한 악기의 가격대가 다른 현악기에 비해 높지 않은 편...은 무슨 나한텐 비쌌다. 참고로 내 악기 이름은 동동이(콘트라베이스, 29세). 학교 악기 이름이 금동이&은동이였기 때문에.


선배가 말했던 다른 학교로 객원가는건, 저 덩치를 가지고 다니는게 힘들 뿐만 아니라 뒷풀이에 그 큰 악기를 가져갈 수 없어 네트워킹에 아주 불리했다(모든 인간관계 역사는 뒷풀이에서 이뤄지므로...) 게다가 주차비+기름값이 너무 많이 나와 몇 번 하다 지갑에 위기가 와서 그만뒀다. 가난한 대학생 탕진잼.


에피소드 2) 활동했던 오케스트라들

예술의 전당과 롯데 콘서트홀에서 종종 연주한다.

위와같은 이유로  탕진할 가치가 있는 재밌고 도전적인 곡을 하거나, 주차가 지원되고 연습실에 악기가 있는 오케스트라에 정착해 오래 활동을 이어갔으니, 금난새 선생님이 지휘자로 있었던 <한국 대학생 연합 오케스트라>와 지금의 <코레일 심포니 오케스트라>다.


도쿄로 교환유학을 간 1년 동안에도 오케스트라를 했는데, 그 때 활동했던 <와세다대학교 교향악단>은 아마추어인데도 100년의 역사를 가진데다 2년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전용 홀에 초청을 받아 연주하고 독일 순회연주를 하더라(...) 역시 덕후의 나라였다.


다음 글에서는 한번 다양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들에 대한 이야기도 해볼까 한다.


에피소드 3) XXX로 객원간 이야기

탕진하는 와중에 레슨선생님이 다양한 유급객원자리를 소개해주셔서 레슨비와 악기 구입비용을 마련할 수 있었다. 주로 종교단체에서 행사가 많았는데, 교회는 물론 <한국SGI>라는 남묘호랭개교(?!)의, 전국지부가 모이는 행사에서도 연주해봤다. 커다란 불단 앞에서 수백명이 '남묘호랭개교x무한'을 주문처럼 반복해 외는 풍경에 충격. 꽤 유명한 사람들도 신도로 있어서 2번 충격. 페이를 세게줘서 3번 충격.


음악이라는 것이 종교에서 크게 발전한 만큼, 종교를 가지고 있다면 악기를 접할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은 것같다(나는 무교지만) 밴드, 오케스트라, 합창단(은 악기가 아니지만) 등등...종교인이라면 가까이에서 기회를 찾아보도록!


에피소드 4 // 콘트라베이스로 방송출연한 이야기

대학교 4학년, 취업이 안되던 반백수였던 시절 <언제나 칸타레>라는 방송에 출연했다. <남자의 자격>의 오케스트라 버전이라고 보면 되는데 헨리, 박명수, 오취리, 샘 헤밍턴, 오상진, EXID하니 등등과 함께 촬영했다. 안타깝게도(혹은 다행히도) 내가 출연한 시즌 1에서는 베이스파트에 연예인들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의 분량이 극도로 적었다. 얻은건 출연비와 흑역사와 연예인들의 사인을 받은 악보.


이외에도 <시크릿 가든>이라는 시대를 풍미했던(?) 드라마에도 엑스트라 출연을 했다. 송년파티장에서 두 주인공의 키스씬이 나오는 장면에 뒤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악단 역할을 했다.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촬영을 했으나... 우리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슬픈 이야기. 


<뮤직뱅크>에 스트링세션으로도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국가적인 재난이 있어서 방송이 취소되는 바람에 뮤직뱅크 무대는 못 밟아보았다.


이래저래 제대로 된 출연은 못했으나, 방송촬영 현장을 엿볼 수 있었던 여러모로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처럼 악기를 통해, 본업에서는 하지 못할 다양한 경험들을 쌓고있다.

앞으로 Q&A를 통해 이런 작은 이야기 보따리들을 하나씩 풀어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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