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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아탄 Nov 27. 2022

멘사 아이큐테스트의 함정

멘사 회원도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굿 윌 헌팅은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 중 하나다.


재능을 숨겨왔던 천재가 진가를 보일 때 느껴지는 대리만족, 흠잡을 데 없는 연기력의 주연배우들, 그리고 드라마적 요소까지 빠뜨리지 않은 탄탄한 스토리라인까지.

아카데미에서 남우조연상, 각본상 등 N관왕을 한 이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가끔 TV에서 방영을 해줄 때면 어김없이 끝까지 다 보게되는 그런 영화다.


이 영화엔 과거의 상처 때문에 '자신이 천재인 줄 모르고 살아가는' 한 청소부 청년, 윌 헌팅이 등장한다. 나는 왠지 모르게 윌의 부족한 모습 이면의 천재성을 볼 때마다 대리만족을 느낀다. 기대치 없는 범인이 비범인으로 밝혀지는 스토리는 흔한 클리셰이긴 하나, 그냥 이런 부류의 천재가 등장하는 영화에 유독 끌리고 흥미를 느끼는 편이다.


영화 '굿 윌 헌팅'의 한장면. 청소부 윌(맷 데이먼)이 수학 난제를 몰래(?) 풀어버린다.




멘사회원 = 천재 ?



맷 데이먼이 연기한 '윌 헌팅'은 수학, 법률, 철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지적으로 중무장한 천재다. 모든 천재가 그렇듯 기억력도 엄청나서 한번 본 책은 머릿속에 그대로 저장해버릴 만큼 두뇌 용량이 어마무시하다.


하버드생과 논쟁을 벌여도 전혀 뒤쳐지지 않는 지적 능력과 그에 걸맞은 자신감과 위트까지 선보이는 윌 헌팅. 그의 성격적 결함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매력있는 천재의 부류인데,

난 어릴 때부터 이런 천재성을 동경해왔고 지금도 그렇다.

그냥 부러운 정도를 넘어서 천재들의 반전미에서 대리만족과 통쾌함을 즐긴다.




그런데 웬걸,

내가 멘사 회원이 된 후

이 동경은 산산조각났다. 



2년 전쯤,

상위 2% 안에 드는 지적 능력을 가지는 것이 회원의 조건이라는 멘사 아이큐 테스트를 통과했다.  IQ가 찍힌 테스트 결과표를 받아보고 처음엔 뛸듯이 기뻤는데, 천재들의 집단이라는 타이틀을 드디어 나도 갖게 됐다는 기쁨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멘사 통과한다고 다 천재가 아니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흔히 매스컴에 그려지는 천재는

① 멀티태스킹에도 능하고
② 분야를 가리지 않고 습득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③ 책 한권까진 아니어도 한 페이지 정도는 손쉽게 외우곤 하는데


일단 나는 그런 부류의 천재가 아니었다.

① 멀티태스킹 해보려다 둘 다 놓치고
② 특정 분야는 아무리 봐도 이해가 잘 되지 않으며
③ 책 한 페이지는 커녕 책 한줄도 외우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멘사 테스트 전엔 그러려니 했는데,

멘사 회원이 된 이후엔 오히려 멘붕에 빠지는 딜레마가 발생했다.


대체 내가 봤던 멘사 아이큐 테스트는 뭐지? 듣보 테스트였나?

국제공인이 아니라 어디 이름모를 재단에서 운영하는 소위 짝퉁 테스트였나?

혹시 하는 마음에 멘사코리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제대로 된 공인 테스트인지를 두어번 더 확인까지 했었다.



멘사테스트 결과지의 일부 발췌. IQ점수와 퍼센트가 나온다. Percentile 99% 는 상위 1%라는 의미.



근데 다시봐도 제대로된 테스트가 맞았다.


뭐가 문제였을까?

난 멘사 회원인데 왜 천재가 아닌것일까? 

그 단서를 멘사 아이큐 테스트의 방식에서 찾을 수 있었다.











멘사 기준은 천재와 거리가 멀다.



위에서 언급했듯, 멘사는 표준화된 지능 검사에서 일반 인구의 상위 2% 안에 드는 지적 능력만을 가입 조건으로 하는 고지능 단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표준화된(Standardized Test)' 이라는 부분.

'표준화'는 '객관화'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데, 그 이유로 멘사 아이큐 테스트의 모든 문제는 특정 언어를 몰라도 풀 수 있도록 만들어져있다. 테스트를 보는 사람의 출생지와 인종, 학력, 문화적 배경 등 지적능력 외의 변수를 최대한 배제한 테스트라는 의미이다.

즉, 한국의 민수가 테스트할 때와 미국의 제임스가 테스트할 때, 그리고 일본의 다나까상이 테스트할 때의 결과값은 오로지 그들의 지능의 차이만 보여줄 뿐, 다른 요소들에 의한 영향이 제로에 가깝도록 설계된 것이다.  


그 다음으로 주목할 부분은 '지적 능력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

멘사 아이큐 테스트는 지적 능력인 IQ(intelligence quotient)을 테스트하는 여러 방식 중 FRT(Figure Reasoning Test) 라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FRT의 전신은 레이븐 매트릭스 테스트(RPM;Raven’s Progressive Matrics)인데, 이는 J.C.Raven이 1938년 당시 미 해군 장교들의 지적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만든 심리 테스트가 그 기원이다.


FRT 외의 IQ 테스트 방식에는 대표적으로 '웩슬러(Wechsler scale of intelligence)' 방식이 있는데 FRT보다 조금 더 다양한 영역(언어적/비언어적)의 검사를 하며, 대상연령을 역시 다양화했다는 특징이 있다.

이런 이유로 웩슬러 방식은 어린 아이들의 지적 능력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많이 활용되고, 맘카페에서도 종종 언급되곤 한다. '우리 아이 웩슬러 상위 0.3% 나왔는데 이거 좋은건가요?' 같은 식으로.

※ 참고로 멘사 테스트는 현재 만 19세 이상만 응시가 가능하다.


그리고 FRT 방식의 멘사 테스트는 한번 획득한 점수가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크게 바뀌지 않는 특성이 있지만 웩슬러 테스트는 후천적으로 학습능력을 키워 결과값을 높일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 즉, 멘사 테스트는 선천적 지적능력을, 웩슬러 테스트는 후천적으로 계발된 지적능력까지를 테스트하는 목적이라 구분할 수 있다.


다시 멘사 테스트로 돌아와서,

FRT는 그 의미를 번역하면 도형추론에 가까운데 이게 무슨 말이냐면, 말 그대로 도형을 몇개 깔아놓고 그 도형들 사이의 규칙성을 찾아내 그 다음에 올 도형으로 가장 적합한 것을 고르는 방식이다.


아래의 이미지는 멘사 테스트의 문제라고 떠도는 대표적인 유형인데,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언젠가 한번쯤은 봤을 것이다. 난이도로 보건대 전체 수십 개의 문항 중 초반에 해당하는 문제 수준으로 보인다.

사실 멘사 테스트는, 중반까지는 "이게 정말 멘사테스트 맞아?" 싶을 정도로 한문제 푸는 데 몇 초 안걸리는 쉬운 문제들로 구성되어있다. 하지만 중반 이후로 넘어갈수록 난이도가 급격히 상승하며 시간에 쫓기게 되고 심지어 몇 문제는 못푸는 불상사가 생기는게 보통이다. 시간을 아무리 줘도 못풀만한 문제도 더러 있는 것은 함정.


한 줄에 세모/네모/동그라미가 각각 1개씩 들어있어야 하는 규칙성이 발견된다. 정답은 E.동그라미




따라서 멘사 테스트의 기준을 통과해 멘사 회원이 되었다는 건 '도형추론'에 대해서는 일정수준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지, 이 사람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인슈타인 급의 천재'라는 것은 아닌 것이다.




물론 천재를 바라보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표준화된 테스트'를 통해 IQ가 상위 2% 이내로 나온 것이니 그정도면 천재라고 인정하는 사람도 있고,

멘사 테스트는 수많은 지적 능력의 영역 (ex. 암기력, 수리력, 언어능력, 독해력, 예술적 능력 등) 중 하나의 능력만을 인정받은 것 뿐이라며 그 의미를 축소하는 사람도 있다.  


개중에는 멘사 아이큐 테스트가 테스트의 본질을 잃고 응시료로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상업단체일 뿐이라고 폄훼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도 멘사회원인데 테스트해보니 너무 쉽고 별거 없더라 등의 말을 덧붙이며 유세 혹은 거드름 비슷한걸 떠는 케이스 말이다.

멘사 테스트에 사용되는 FRT 방식이 표준지능검사 10가지 중 실제 지능과 가장 상관도가 높다는 것은 이미 학계에서 검증된 사실인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까지 어그로를 끄는 것. 차라리 "멘사회원이어도 사회생활하는데 이점 하나 없더라" 정도의 푸념 수준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은 있다.


뭐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의 기준은 존중해주고자 하지만, 개인적으로 멘사 테스트가 '사기성 짙은, 변별력 없는, 돈벌이용 테스트'는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전 테스트의 난이도가 인터넷에 떠도는 모의테스트를 훨씬 상회하는데다가, 이 테스트에 사용되는 방식인 레이븐스 매트릭스(현 FRT)가 학계의 검증을 거쳐 국제 공인으로 자리잡았다는 측면에선 '검사의 신뢰도가 어느정도 보장된다'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멘사 테스트의 방식이 실제 지능을 가장 잘 대변하는 테스트 방식에라는 점에서 위로(?)가 되긴 한다.



아무튼,

처음엔 호기심으로, 내심 나도 천재였길 바라며 응시한 멘사 아이큐 테스트로 인해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을 더 갖게 됐다.


한때 즐겨보단 문제적 남자 같은 프로그램에서 '멘사=천재' 라는 이미지에 너무 자극받아서 그런지, 멘사 테스트 언젠가 한번 봐야지 했던 게 그 시작이 된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천재를 동경하던 나는, 스스로도 천재가 되고싶었나보다.


하지만 멘사 테스트 통과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현실이 됐는데도 막상 나의 지적 부족함에 매우 자주 맞닥뜨릴 때의 딜레마는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이다.



다시봐도 '이거 어떻게 풀었더라' 싶은, 레이븐스 테스트의 후반부 문제를 공유하며 글을 마친다.

다음번엔 멘사 테스트 시험장에서 겪은 썰을 풀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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