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Croquis- Sunhang Lee Jazz Quartet
벌써 14년 전이다. 피아니스트 이선행과의 인연은 지인의 소개로 시작되었다. 이러한 개인적인 인연이 그녀의 음악을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낭만적으로 기억하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성품은 첫 앨범의 이름인 'Croquis'가 의미하는 바처럼 군더더기 없이 명료하고 진솔하며, 이는 수록곡 'Winter'에서 느껴지는 차분하고 사색적인 정서와도 맥을 같이 한다.
하모니카 연주자 이레의 Romatic Song , 강웅 기타리스트의 'Winter' 등 비디오 아카이브 촬영에 직접 동참하면서 이선행의 음악을 가까이에서 경험했다. 이 짧은 협업의 시간은 단순한 리스너였던 나를 함께하는 동료로 변화시켰으며, 그 결과 이 아티스트의 음악에 더욱 깊은 애착을 갖게 된 이유가 되었다. 화려한 기교 대신 본질적인 감정선에 집중하는 작곡가의 이러한 태도는 곧 앨범 전체의 깊이를 형성하는 핵심이다. '크로키'는 작곡가 이선행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 음악적 자화상이며, 듣는 이에게 가장 순수한 형태로 감정을 전달하는 통로이다.
재즈에서 '쿼텟(Quartet)'은 네 명의 연주자가 이루는 앙상블을 의미하며, 리듬 섹션과 리드 악기 하나로 구성되어 예술적 깊이를 담아내는 편성이다. 이선행 재즈 쿼텟의 1집 'Croquis'는 피아노(이선행), 기타(강웅), 베이스(정중화), 드럼(임주찬)의 편성으로, 기타를 리드 악기로 사용하여 앨범 전체에 따뜻하고 섬세한 서정미를 불어넣는 것이 특징이다. 작곡을 전공하고 대중음악 영역에서 활동했던 이선행은 뉴욕에서 T. S. Monk 자선음악회 참여, '달팡스' 밴드 활동 등 폭넓은 경험을 쌓은 후 귀국하였다.(현재는 다시 뉴욕으로 이주) 재즈 편곡집 출간 및 재즈밴드 '펄스' 활동을 이어가며 왕성한 활동을 펼친 그녀는 재즈 음악계의 신선한 얼굴로 평가되었다. 특히 유재하의 음악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아 음악인의 길을 결심하였으며, Four Play, Bee Gees, Stevie Wonder 등의 음악을 양분으로 삼았다. 재즈에는 피아니스트 Bill Evans를 통해 입문하였다고 말하는 그녀의 앨범에는 그를 추억하는 곡 'For Evans'를 수록하고 있다. 이 앨범은 재즈의 바탕 위에 펑키, 라틴, 클래식의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한국 대중음악과 팝의 영향까지 더한 11곡의 자작곡과 한 곡의 Hymn 편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타이틀곡 'California'는 라틴의 빠른 보사노바 리듬과 싱코페이션 멜로디가 특징이며, 첫 곡인 'Croquis'는 건반 위를 빠르게 스케치하듯 즉흥적으로 작곡된 펑키한 그루브의 곡이다.
앨범 'Croquis'는 작곡가인 피아니스트 이선행의 섬세한 음악적 비전을 중심으로 국내 정상급의 연주자들이 함께했다. 콘트라베이시스트 정중화는 한국 재즈계의 거장 정성조의 아들로서 깊은 음악적 유산을 지니고 있으며, 현재 서울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연주자이다. 트럼펫 연주자로 활발하게 활동하지만 트럼본 베이스도 연주한다. 또한, 월간 '재즈피플' 라이징 스타로 선정되었던 기타리스트 강웅은 활발한 연주 활동뿐만 아니라 재즈 라디오 DJ로도 활동하고 있다. 드러머 임주찬은 고교 시절부터 그 실력과 천재성을 인정받았으며 현재는 호원대학교 실용음악과 드럼파트 전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러한 탄탄한 뮤지션들이 이선행의 음악에 큰 영감과 에너지를 실어주었다.
이선행 재즈 쿼텟의 'Croquis' 앨범은 보다 내밀하고 진실한 시선으로 자신의 삶과 가족을 바라보며 소망과 사랑, 그리고 감사를 담은 노래이다. 어른들을 위한 한 편의 성장영화와도 같은 이 앨범은 4계절이 바뀌는 동안 우리가 잊고 지낸 소중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비록 대중적인 성공이나 폭발적인 주목을 받지는 못했을지라도, '크로키'는 그 진정한 가치를 아는 재즈 팬들 사이에서 오랜 시간 회자되는 '숨겨진 보석'과 같다. 이선행의 섬세한 피아노 아래, 강웅의 따뜻한 기타, 정중화의 묵직하고 깊이 있는 베이스, 그리고 임주찬의 정교한 드럼이 만들어내는 앙상블은 듣는 이에게 가장 편안하면서도 사색적인 시간을 선사한다. 이 '크로키'는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을 한국 재즈의 아름다운 단면이자 진정한 가치를 아는 이들에게만 허락된 선물이다. 겨울이 시작되는 요즘 같은 날 'Winter'를 추천한다.
https://youtu.be/XSf5msWvtCU?si=3dPmjNwaiEJDikkw
https://youtu.be/sj02OzWAtvc?si=f4iwMtLEi3WhLv57
Croquis · Sunhang Lee
https://youtu.be/ZaSijtfBT9M?si=HPxz1YRfC3-8Us0W